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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ㅠ Sep 01. 2024

침묵을 지키는 운동

운동은 침묵과 생각을 동시에 제공한다.

고등학교 때 이후 한 10년 만에 본 러닝머신

2024년 8월 26일 월요일
월차 내고 병원 가는 날이었다. 약 타러 가는 날. 평소에는 멀쩡한 몸이지만 가끔씩 뇌에 문제가 생겨서 픽 하고 쓰러질 때가 4번 정도 있었다. 처음에 이런 일이 생겼을 때는 우연히 발생한 해프닝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반복 현상이 3번이나 있었다. 일용직 할 때 최초로 한 번, 공장 일 할 때 한 번, 중소 회사 입사 후 각각 1번씩. 입사 한지 얼마 안 된 두 회사는 바로 퇴사 조치가 내려져서 일부의 돈만 받고, 내 쫓겨났다. 이렇게는 살 수 없다는 생각으로 집 주변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받아보자 결심했다. 뇌파 검사, 피검사, 소변 검사 등이 진행되고 의사의 소견은 뇌전증으로 결론 났다. 뇌전증은 경련과 의식장애를 동반한 발작 증세 라고 한다. 물론 나는 쓰러질 당시에 아무 기억이 없기에 어떤 육체와 정신의 상태로 쓰러졌는지 알 수 없었다. 당시 주변인들의 말로는 몸을 파르르 떨며 경련과 눈동자의 초점이 없었다고 말했었다. 그런 얘기 들어보면 의사의 진단과 동일하게 나는 뇌전증이 맞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병원 다닌 지도 한 2년 정도 된 것 같다. 지금은 약을 꾸준히 먹으면서 동일한 증세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참으로 다행이다.

병원 진료를 마치고, 코인노래방에서 노래 6곡으로 시원하게 소리 지르고 집으로 돌아왔다.

같이 사는 엄마는 곧 시골로 이사 갈 거라고 말하며 원래대로는 8월 말에 아빠가 있는 시골로 내려가기로 했으나 아빠가 지금은 여유가 없다며 9월에 내려오라고 했다고 엄마한테 들었다. 그래서 엄마는 9월 추석에 내려가서 시골에서 아빠와 같이 살 거라고 했다. 약 받으러 두 달에 한번 정도 서울 집에 온다나. 아무튼. 엄마는 누나와 같이 헬스장 다니던 곳이 있었는데 나는 엄마한테 헬스권을 양도해 달라고 했다. 어차피 시골 가면 못 쓰고, 돈 낭비 하는 건데 아깝잖아? 그리고 운동하면 나의 건강에도 도움 될 테니 말이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다시 엄마와 함께 헬스장으로 가서 양도계약서를 쓰고 8월 27일부터 내년 3월까지 내가 쓰게 되었다. 그다음 날은 야근으로 안 갔고, 29일 수요일에 정시 퇴근으로 헬스장에 고객으로 첫 방문 했다. 한두 달은 가볍게 러닝머신으로 땀을 빼자 라는 계획이었다. 헬스장 어플에는 120명 있다고 쓰여 있는데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헬스장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러닝머신 빈자리를 찾아 운동을 시작했다.




첫날 90분 달성


러닝머신에 TV기능이 있다는데 아무리 리모컨을 눌러도 안 켜진다.

그래서 포기하고 나는 내 핸드폰으로 유튜브를 켰다. 평소에 보는 게임 유튜버, 축구 유튜버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한 영상이 끝날 때마다 1단씩 올렸다. 5분, 10분, 30분... 그렇게 점진적으로 달리기 영역인 9단까지 올라왔다. 처음에는 같은 장소에서 반복된 행동으로 굉장히 지루 할 줄 알아서 헬스를 시작하지 않으려고 했던 이유기도 한데 이렇게 영상 하나하나씩 보며 킬링 타임하니 어느새 90분이 되어 있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땀으로 샤워되어 있었다. 러닝 끝나고 걷는데 내 발이 내 발 같지 않았다. 거짓말 같지만 정말이다. 상체와 하체가 분리된 것 같은 기분. 운동이 되었다는 증거겠지. 곧바로 샤워 수건을 챙기고 머리와 온몸 구석구석 깨끗이 닦았다. 운동 끝나니 너무 배고프다. 집 가서 따끈한 햇반에 고추참치 캔을 따서 맛있게 비벼 먹었다. 원래 나는 식욕이 그렇게 왕성한 사람은 아니다. 밖에서는 생존을 위해 먹을 뿐이고, 집에서는 군것질을 그리 자주 하지 않는다. 물론 맛있는 거 먹으면 좋긴 한데 굳이 내가 스스로 맛집을 찾으러 다니지는 않는. 타인이 맛집 가자고 하면 맛있다 하는 스타일. 그런데 이렇게 밥이 맛있었나? 싶을 정도로 우걱우걱 한 입에 가득 밥알을 넣었다. 밥알 하나하나, 참치 하나하나 이렇게 혀에서 소중한 맛이 나다니. 이 것이 운동의 효과구나.

누나한테 러닝 90분 인증하니 너무 무리하지 말고 한 시간만 하라고 카톡으로 답장 왔다...




현대사회로 접어들면서 컴퓨터 및 스마트폰의 보급화로 사람들이 운동에서 멀어지고 있다.

한국사회의 우리 중시 문화로 사람들은 끊임없이 알맹이 없는 휘발성 대화들을 하며 사람에게서 지치고 있다. 그런 세상 속에서 운동이 좋은 이유는 침묵을 지키고, 체력 증진, 건강 증진, 엔도르핀 상승, 땀 배출 등등 긍정적인 이유가 매우 많다.

회사에서는 수다스러운 사람이 꼭 한 명씩은 있다. 사실 나보다 그런 사람들이 헬스를 하면 참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침묵을 유지하고 나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 하는 시간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100세 시대라고 하는데 늙어서 무언가 하려는 것은 매우 어렵다. 뇌가 굳어서 유연하고 말랑한 뇌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만약 50대 60대였다면 헬스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미 늙은 몸이 무슨 건강 해질 수 있겠어하며 부정적인 생각을 했었을 것이다. 타인이 나를 쳐다보면 어떡하나, 나에게 집중되는 시선이 싫어 라고 하면서 말이다.

학교에서는 체육 시간을 오히려 줄이고 있고, 사회인이 되면 일/집 일/집당연해진다. 홈트레이닝도 좋지만 운동은 밖에서 땀을 흘리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몸에 쌓여 있는 노폐물들을 배출하여 안에 독소를 빼내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대소변 배출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결정적으로 운동을 통해 나의 몸에 새로운 감각을 익히는 것이다. 내가 이런 자세도 가능하구나, 나의 한계는 이렇구나, 필자처럼 하체가 분리된 느낌을 경험할 수도 있고, 체감하기 가장 좋은 것이 운동이다. 인간은 신체적 한계가 각기 다르다. 나의 한계를 아는 것도 중요하고, 이것을 뛰어넘기 위한 노력을 하는 자세는 삶의 이유가 된다. 누군가는 남들보다 점프력이 엄청 높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유연성이 좋아서 남들이 못하는 포즈를 취할 수 있다. 이것이 나의 장점이 되며 새로움을 발견하고 긍정의 힘을 생성한다. 몸의 대화를 통한 침묵하는 자세로 자신의 한계를 체험하며 겸손함과 노력의 상징이 된다.


나의 몸을 아는 것이 곧 나를 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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