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그늘에서 벗어나다.
92년생 김대희, 만 32살
엄마의 그늘에서 벗어나다.
2024년 8월 1일. 엄마와 누나와 나는 가족회의를 했다.
회의라는 게 거창 한 것은 아니고, 사실 이 이야기는 몇 년 전부터 쭉 누나와 내가 자주 하던 이야기이다.
엄마는 나이가 많아져서 더 이상 경제 활동을 하기 어렵다. 아빠는 시골에 있고, 엄마와 함께 하기를 원한다. 누나와 나는 경제활동을 왕성하게 해야 하는 나이대임으로 서울에 남아야 한다. 친구들도 다 여기 있고 말이다. 그러한 이유들로 인해 엄마는 9월 초에 시골로 내려갔다.
나는 지금 살고 있는 서울 집을 대출로 구매했고, 근로소득으로 착실하게 대출금을 갚아 나가고 있다. 지금까지 대출금 갚은 걸로는 화장실까지는 내 것 같다. 서울에는 나와 누나만 남았지만, 누나는 사실상 남자친구와 거의 같이 있기 때문에 집에 거의 없다. 그래서 난 30대에 첫 홀로서기 생활을 하게 되었다. 회사에서 나와 비슷한 나이대의 직원들이 지방에서 올라와서 혼자 서울살이 하는 사람들이 몇몇 있다.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1인 가구의 장단점들에 대해서 많이 들었다. 가족 눈치, 스트레스 안 봐서 좋다 같은 장점. 외롭다는 단점. 이제 나도 그것들을 조금씩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TV를 보면서 엄마에게 리모컨을 주지 않아도 되는 것. 넓은 방을 혼자 쓸 수 있다는 것. 주말에 돈 아끼며 식사할 수 있다는 것. 매우 고요하다는 것.
보통 주말이 되면 엄마는 나와 무언가를 하는 것을 좋아한다. 외부활동이든 내부활동이든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축구 관람 하러 간다고 하면 같이 보자고 하면서 나에게 돈을 주고 연석 구매 하라고 했던 적도 있었다.
경기 전에 맹꽁이 버스를 타고 하늘공원으로 올라가 드넓은 서울 풍경을 보는 재미도 있었고, 경기장에 입장해 많은 골을 터트리고 FC서울이 기분 좋게 이기고, 경기장 주변 공원 매점에서 도시락을 사서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이제는 더 이상 이런 경험을 하는 일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조금은 쓸쓸하다.
엄마는 시골로 내려가고 나에게 일주일에 한두 번씩 전화를 준다. 회사는 잘 갔니, 밥은 먹었니 같은 평범한 일상 이야기. 그리고 엄마가 지속적으로 먹어야 하는 약이 있어서 세 달에 한번 정도는 서울에 올라올 거라고 한다. 아빠랑 싸우지 말고 조심히 올라오라고 말했다.
아빠는 내가 학생 시절 주말이 되면 혼자 어디 가기 바빴다. 그게 사람을 만나건 경마장을 가건 말이다. 그래서 아빠와의 추억은 사실 거의 없다. 그래서 집에 남아 있는 엄마, 누나, 나는 셋이서 잘 똘똘 뭉쳐서 이것저것 추억을 많이 남겼다. 아빠는 가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심은 커녕 솔로 플레이를 좋아하는 독불장군. 지금 엄마가 시골에 갔다고 해도 딱히 지금의 아빠의 성격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 아빠가 시골로 갔을 때도 좋은 기억이 없어서 그리 나에게 타격은 없었는데, 엄마가 가고 나니 갑자기 공허해졌다. 부디 아빠가 엄마를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괴롭히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엄마는 원체 신체능력이 그리 좋지 않은데 자꾸 지금도 이용해 먹으려고만 한다. 농사가 쉬운 일이 절대 아닌데..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으면 좀 유해져야 하는데 아빠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어서 더더욱 부정적인 마음만 커진다...
원하던 원하지 않던 가족의 해체는 당연히 존재한다. 시기의 차이일 뿐. 그게 나에게 지금 온 것이고 말이다.
마치 지금의 나는 그룹 활동 하던 아이돌이 7년 계약기간을 마치고, 솔로 활동으로 홀로서기를 시작하는 아티스트 같은 기분이다. 그래서 새로운 생각과 도전으로 긍정적인 마음과 추억을 공유하던 동료들이 사라졌다는 좌절감과 불안함의 부정적인 마음이 교차한다.
가끔 뉴스를 보면 고독사 하는 사람이 나이대를 불문하고 점진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리고 여자보다 남자가 고독사 하는 비율이 더 높았다. 그런 정보들을 접하면서 나도 오랜 시간 혼자 있다 보면 고독사의 위험도 분명 존재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이라는 것이 서로의 행복감을 채우는 부분도 있지만, 인간은 고령이 될수록 체력, 정신력이 약해져 혼자서 자유롭게 독립적인 행동을 할 수 없고, 고독사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 생긴 계약 제도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당장 우리 집에서 동거할 여자친구나 결혼할 사람이 있는 게 아니니 혼자 있는 시간이 더 길어진다. 한국은 남성이 경제력이 뒷받침이 돼야 연애, 결혼을 할 수 있기에 아직은 나에게는 무리이다. 나의 앞배경(돈, 집, 얼굴)만 보지 않고 나의 뒷배경(긍정, 신뢰, 신용)까지의 마음을 볼 수 있는 이성과 결혼할 수 있다면 정말 좋을텐데 말이다. 만약 내가 퇴사했다고 할 때 "그럼 돈은 누가 벌어" 바가지 긁은 소리 보단 "수고 많았어. 많이 힘들었구나" 하면서 어깨를 토닥여 줄 수는 그런 사람. 남자는 단순해서 그 한마디에 큰 울림을 얻는다. 하지만 아직은 없으니 나에게 아낌없는 투자와 저축이 필요하다. 언젠가는 좋은날이 오겠지..
이런 저런 많은 고민을 들어주던 엄마의 그늘이 그리운 하루다.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