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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점코치 모니카 Oct 13. 2021

101호, 102호에 살자는 엄마.

新소녀가장 4

남편의 공부 때문에 결혼 후 호주에서 5년 동안 살게 되었다. 귀국을 2년 정도 앞두었을 때 식당을 하던 엄마와 통화 중에 엄마는 2년 정도 후에 은퇴하실 거라고 하셨다. 엄마 나름대로 노후계획이 있으신 듯했다. 


태생이 파이팅이 넘치는 성격을 가진 나는 느릿느릿하고 여유로운 호주가 싫었다. 남들은 지상낙원이라고 부르는 그 나라가 늘 지루하고 따분하게만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평생 한국에서 살기를 원했는데 딸을 낳고 보니 혼혈아인 딸이 한국에서 잘 자랄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남편과 연애하던 시절 명동역에서 양공주 소리를 들었던 나는 국제커플이나 다문화가정이 한국에서 사는 데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귀국 6개월 전에 탄생한 딸아이가 초등학교에 갈 나이가 되면 다시 호주로 돌아가기로 계획하고 고향 소도시 인근 광역시에 남편이 구직을 시작했다. (그런데 웬걸. 막상 귀국하고 보니 '슈퍼맨이 돌아왔다.' 나 '비정상회담' 같은 외국인들이나 다문화가정이 나오는 예능들이 큰 인기를 끌면서 다문화가정에 상당히 우호적인 트렌드가 형성되어 있었다.) 


친정부모님과 언니, 남동생이 살고 있는 고향 지역은 외국인이 극히 드문 소도시이기에 호주인 남편이 생활하는데 불편함이 있을 것 같아서 친정과 차로 1시간 걸리는 광역시에 남편이 직장을 구했다. 평생 호주에서 살지도 모르는데 한국에 사는 동안이라도 친정부모님께 외손녀를 자주 볼 수 있게 해드리고 싶었다.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시던 친정부모님은 우리 딸을 엄청 예뻐하셨다. 우리 가족이 귀국한 뒤로 거의 매주 주말 우리 집에 오셔서 외손녀를 보고 가셨고 5년 만에 귀국한 나를 외국인 취급하며 자꾸 무언가를 도와주시려고 하고 챙기시려고 하셨다. 


이 모습만 보면 우리 부모님이 원래 자식들을 살갑게 챙기는 성향이고 나와 우리 부모님이 원래도 엄청 자주 연락하고 왕래를 하는 사이였던 것처럼 보이지만 전혀 사실이 아니다. 


서울로 대학을 가서 스무 살 때부터 혼자 살았고 기숙사가 없던 학교라 입학 때 엄마가 하숙방을 함께 구해주셨고, 그다음에 서울에 오신 것이 대학교 졸업식이었다. 


직장 생활 중에도 서울 땅에서 이사를 몇 번이나 다녔는데도 단 한 번도 친정부모님이 나의 집을 방문하신 적이 없었다. 우스갯소리로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연락두절이 되어도 엄마 아빠는 내 집이 어딘지 몰라서 나를 못 찾을 거라고 한 적도 있다.


무뚝뚝한 경상도 사람들이라 서로 전화도 잘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으면 2주에 한 번, 별일 없으면 한 달에 한 번 정도 부모님과 통화를 했다. 


내가 20대 일 때는 친정부모님이 경제적으로 너무 힘드셨을 때다. 시간적 경제적 정신적 모든 면에서 전혀 여유가 없으셨던 걸 잘 알기에 그 시절 우리 가족의 처지를 오롯이 이해했고 나는 나대로 그 시간을 잘 견뎠기에 아무렇지 않다. 


그런데 문제는 이제 와서 좀 살만해졌다고 갑자기 살갑게 구는 친정부모님이 나에게는 상당히 당황스럽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부모님의 갑작스러운 거리 좁힘에 맞장구를 쳐주기에는 지난 세월 동안 나는 너무나 건조하고 독립적인 성향이 되어버렸다. 


정착한 광역시 내에서 첫 이사를 할 때도 이삿짐센터는 예약을 했느냐, 가구는 무얼 살 거냐며 전에 없던 참견을 하시기 시작하셨다. 몇 번 마뜩잖은 내색을 했는데도 계속 그러시기에 


"언제부터 그렇게 딸을 살갑게 챙겼다고 안 하던 간섭을 하시냐고. 스무 살 아기 때도 혼자서 다 한 걸 이제 와서 엄마 도움이 필요할 것 같냐고!" 


기어이 내 입에서 독설이 한번 쏟아지고 나서야 예전 제 위치로 돌아가셨다. 


우리 딸이 돌 즈음이 되자 엄마는 어느 날 갑자기 이제 당신이 딸을 돌봐줄 테니 다시 취직도 하고 너는 너 하고 싶은 일 다 하고 살라고 했다. 인심을 쓰듯이 당신이 '전적으로' 애를 봐주시겠다고 했다.


우리 부부는 애초에 어떤 환경에서도 자식들을 '전적으로' 돌보는 '주양육자'는 나와 남편이 되도록 하자고 합의하고 첫째를 출산했다. 내가 다시 일을 하게 되어도 일정 시간 동안 몸이 메이는 직장으로 다시 돌아가기보다는 보육기관의 도움만으로 '주양육자' 역할을 여전히 유지할 수 있는 프리랜서로 일할 생각이었다. 


아이들이 집에 돌아오면 늘 엄마나 아빠 둘 중에 한 명이 아이들을 맞아주고 배달음식을 시켜먹더라도 내 손으로 시켜서 아이들과 매일 함께 저녁을 먹는 가정을 이루는 것이 우리 부부가 그리는 가정의 방향성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엄마가 아무도 요구한 적도 없는 황혼육아를 자처하셨다. 임시숙소를 떠나 아파트로 이사도 했으니 엄마가 우리 집에 입주해서 같이 살면서 딸을 돌봐주시겠다고 했다. 전적으로.

 

"네 친구 현정이도 엄마가 같이 살면서 애 봐준다며? 

우리 옆 가게 형님도 장사 그만두고 손녀들 키운다. 딸이 수학 과외를 하는데 그 동네 돈을 정말 끌어모은단다. 형님한테 한 달에 250만 원씩 준다카데."


이 무슨 해괴한 소리인가. 나는 사춘기 10대 중. 고등학생들을 상대로 영어 과외를 할 생각은 추호도 없으며 내 친구 현정이 사례는 친정엄마에게 아이를 절대 맡기지 말아야 한다는, 오히려 우리 엄마 생각에 반하는 교훈을 주는 사례이다. 


아... 엄마한테는 다 계획이 있었구나... 2년 뒤에 식당을 접고 은퇴하겠다던 계획은 사실 나의 귀국 시기와 맞닿은 거였구나. 엄마의 노후대책은 황혼육아였구나... 

소름이 돋았다.


"엄마, 나는 아무한테도 애를 맡길 생각이 없어. 내 아이는 내가 키울 거야."

"왜?? 니, 엄마 못 믿나?"

"아니, 엄마의 양육능력을 믿고 못 믿고의 문제가 아니라 내 애는 내가 키운다고."

"내가 다 키워준다잖아. 니는 니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아라. 공부한 거 안 아깝게 일도 하고 돈도 벌고 니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으라고. 엄마가 애 키워준다고.

"엄마, 나는 직장생활을 다시 할 생각도 없고 영어 과외를 업으로 삼을 생각은 더더욱 없고. 내 애는 내가 키우면서, 내가 알아서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게."

"야는 남들은 엄마한테 애 키워달라고 애걸복걸을 하는데 키워준다는데도 와 이라노."


엄마는 이제 떼를 쓰는 격이 되었다.


"엄마, 나는 내 딸이 학교 마치고 집에 가면 항상 집에 있는 엄마가 될 거야. 내가 했던 거처럼 애가 열쇠 목에 걸고 혼자 문 따고 들어가서 밥 차려 먹게 집 비우면서 맞벌이는 안 하고 싶다고!"

"내가 같이 살면서 애 혼자 있게 안 한다니까!"

"내가 도대체 왜 엄마랑 같이 살아야 되는데? 나는 아무랑도 같이 못 살아. 혼자 산 세월이 몇 년인데 시엄마든 친정엄마든 누구랑도 나는 같이 못 살아. 나는 내가 일군 내 가정 내 식구 외에는 아무랑도 같이 못 살아."


돌려 말해도 척척 알아들으면 참 좋으련만, 말이 험해야만 소통이 된다.  


그렇게 노후대책과 합가의 꿈을 날려버린 엄마는 이제는 내가 사는 광역시에 식당을 차리고 나와 같은 아파트에 101호, 102호에 살고 싶다고 말씀하신다. 왜 그래야 되냐고 되물으니 네가 원하는 대로 따로 살면서 저녁은 같이 먹고 잠은 각자 집에서 자고 그러면 좋지 않겠냐고 하신다.


뭐가 좋은 건지 나는 전혀 모르겠는데 엄마는 내가 호주에 간다면 호주 코리안타운에 식당을 차린다고 하고 서울에 간다고 하면 서울에 식당을 차리고 살겠다고 말씀하신다. 실제로 행동에 옮기기엔 현실성이 없는 그냥 말이란 걸 아는데도 들을 때마다 기분이 좋지는 않다. 


어릴 때부터 삼 남매 중에 둘째 딸인 내가 엄마랑 제일 친했고 만만했던 딸이긴 하지만, 엄마 표현대로라면 외국 가서 살더니 완전 개인주의에 외국년이 다 되었다는, 이제는 매우 개인적이고 독립적으로 변한 딸임을 본인도 알면서도 왜 저렇게 집착을 하는지 모르겠다.


엄마 말대로 엄마 자식들은 '하나같이 살가운 맛이라고는 없고 말 끝에 항상 짜증만 주렁주렁 달아서 말 붙이기가 겁나는 눈치 보이는 자식들'이라고 하면서도 

그런 나를 엄마는 왜 못 놓는 것일까?




5편에 계속...





사진출처 : https://blog.naver.com/sunnyhomes/220492556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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