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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마그리트와 미셀 푸코 - 언어와 이미지의 균열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by morgen

2부 실존주의적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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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르네 마그리트와 미셀 푸코 - 언어와 이미지의 균열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어느 날 벽에 걸린 그림 앞에 멈춰 선다. 파이프의 형태가 분명하게 그려져 있다. 그 아래에는 도발적인 문장이 적혀 있다. Ceci n’est pas une pipe. ―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 <이미지의 배반>(La Trahison des images, 1929)은 보는 사람을 혼란에 빠트린다. 눈앞의 그림은 분명 파이프지만, 동시에 파이프가 아니라는 역설.

이 간단한 문장은 언어와 이미지, 사물과 표상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보는 것은 ‘실제 파이프’가 아니라 파이프의 그림일 뿐이다. 마그리트는 그림과 사물 사이의 간극을 드러내며, 우리가 너무나 당연시해온 시각적 인식의 신뢰를 흔든다.


언어와 이미지의 균열

철학자 미셸 푸코는 1973년 강연집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에서 마그리트의 그림을 집요하게 분석한다. 푸코에 따르면, 이 문장은 단순한 장난이 아니라 언어와 이미지의 불일치를 드러내는 선언이다. 우리가 보는 것은 실제 파이프가 아니라 파이프의 그림일 뿐이고, 우리가 읽는 문장은 사물이 아니라 사물을 가리키는 기호일 뿐이다.

푸코는 언어와 이미지가 결코 하나로 합치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림은 사물을 닮아 있지만 동일하지 않고, 언어는 사물을 지시하지만 결코 그 자체가 되지 못한다. 언어와 이미지가 서로를 설명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각자 고유한 질서 속에 있어 언제나 어긋난다. <이미지의 배반>은 바로 이 틈새를 노출시키는 장치다.

미셸 푸코는 저서 <말과 사물>에서도 언어와 사물(대상) 사이의 관계가 결코 직접적이지 않으며, 특정 시대의 에피스테메―즉 지식의 조건과 규칙―에 의해 중재된다고 말한다. 마그리트의 <이미지의 배반>이 보여주는 것도 바로 그 간극이다. 화면 속 파이프는 ‘사물’이 아니라 ‘파이프라는 기호’일 뿐이며, 언어(“파이프”) 또한 실제 사물과 동일하지 않다. 푸코가 지적하듯 언어와 사물의 관계는 고정된 대응이 아니라 역사적 구성물이며, 마그리트의 그림은 그것을 시각적으로 극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다. 두 작업은 모두 우리가 ‘자명하다’고 생각하는 표상과 실재의 관계를 전복시키며, 언어와 이미지가 단순히 세계를 거울처럼 반영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림 1. url을 클릭하여 이미지를 정당하게 감상하세요. 공정 이용(fair use) 작품입니다.

https://www.lacma.org/art/exhibition/magritte-and-contemporary-art-treachery-images

르네 마그리트 <이미지의 배반> 1929.

캔버스에 유채 60.33×81.12cm. LACMA(로스엔젤리스 카운티 미술관), LA

© C. Herscovici/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표상의 배반

마그리트는 ‘보이는 것’과 ‘말해지는 것’ 사이의 거리를 끊임없이 드러냈다. 그림은 확신을 주는 것이 아니라, 확신을 의심하게 하는 장치였다. 푸코가 지적했듯, 마그리트는 '언어와 사물이 결코 합치하지 않는 공간'을 열어젖힌다.

이는 단순히 예술적 실험을 넘어 인식론적 도전이다. 인간은 언어와 이미지라는 매개를 통해 세계를 파악한다고 믿지만, 그 사이에는 언제나 넘을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한다. 우리가 ‘파이프’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그 단어와 그림의 조합일 뿐, 실제로 연기에 불을 붙일 수 있는 파이프는 아니다.

마그리트의 예술은 늘 불일치의 공간에서 움직인다. 일상적 사물을 낯설게 배치하거나 불가능한 상황으로 전도시켜, 우리가 당연하게 믿는 지각을 흔들어 놓는다.


그림 1-1 url을 클릭하여 이미지를 정당하게 감상하세요. 공정 이용(fair use) 작품입니다.

https://www.artic.edu/artworks/119129/the-tune-and-also-the-words

르네 마그리트 <대기(공기)와 노래> 1964. 종이에 흑연과 과슈, 36.2 × 54.8cm

© 2018 C. Herscovici, 런던 / Artists Rights Society(ARS), 뉴욕


이 그림에 대해 수지 개블릭은 <르네 마그리트>책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만약 우스꽝스러운 테두리에 의해 '담뱃대의 이미지'로서 규정된 것을 좀더 자세히 관찰한다면 마그리트가 역설 공식의 테두리 밖으로 벗어났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담뱃대는 이미지가 아니라 마치 실제의 3차원적인 오브제인 것처럼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고 담뱃대에서 내뿜어지는 연기는 '진짜' 연기인 것처럼 테두리 밖으로 향하고 있다! 그러나 존재와 재현은 같은 것이 아니고, 오브제가 그 이미지와 같은 기능을 행하는 것도 아니다." 1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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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미술관> <조선과 서양의 풍속화, 시대의 거울> 출간작가. 북아트강사. 미술관 도슨트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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