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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책을 읽다

<빛이 보이지 않을 땐 잠시 눈을 감고 기다리면 돼>

책리뷰

by morgen

<빛이 보이지 않을 땐 잠시 눈을 감고 기다리면 돼> #9지음. 2025. 시너지북스.


오랜만에 감성에세이를 읽었다.

요즘 벽돌책을 연달아 읽고 있는중 ‘감성’은 나와 전혀 관계없는 단어가 되었다. 가슴 바닥이 푸석푸석 말라가고 있었다. 브런치에서 촉촉히 적셔줄 샘물을 찾았다. 출간 작가들 책을 몇권 구해 읽는다.


브런치에서 제목 글자수를 제한한 때문에 제목을 다 쓰지도 못하는 책이다. <빛이 보이지 않을 땐 잠시 눈을 감고 기다리면 돼>. 저자 이름을 알고는 있지만 출간된 책에 작가 이름이 “#9”로 되어있으니 내가 이름을 밝힐 일은 아니다.


책은 에세이집으로 돼있으나 시집이라고 해도 될 것같다.

“흔들림, 이별, 미련, 나와 마주하기, 절정, 회복, 빛”을 제목으로 7개의 챕터로 구성되었다. 이 제목들을 훑으며 나는 까마득히 먼 옛날, 문학의 언저리에 서성이고 있던 나를 만났다. 반 세기도 훨씬 더 전에 백일장의 글제나 동인지의 글 제목들이 연상된 것이다. 당시의 글제들, 예를 들면 “길, 문, 기다림, 그리움, 강, 산, 고향, 벗…” 이런 것들이 새롭게 떠올랐다.

지금과는 다른 세상이었다. 단순했지만 감정은 충만했던 그 시절…

#9 작가의 책을 펼치며 나뉘어진 각 챕터들의 제목에 괜히 마음이 설레기 시작했다. 감정을 흠뻑 적셔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사랑”이라는 챕터는 없지만, 이 제목들은 모두 다 사랑에서 비롯된 것 아닌가. 글 곳곳에 “사랑”이 콕콕 박혀있다. 다소곳이 숨어있는 사랑은 제쳐놓고 고개 바짝 쳐들고 나랑 눈맞춤하는 “사랑”만 뽑아본다. 건성건성 넘어갔는데도 여기 옮겨질 문장들이 제법 많다.


“사랑은 외로움을 내미는 일이 아니라 나를 지키며 그 사람의 곁에 서는 일이다” p.22

“사랑은 끝내 도달하지 못한 마음들이 가장 깊은 곳애 남기고 간 익명의 흔적이었다.“ p.32

“사랑은 바라보는 일이 아니라 그 고통 속으로 함께 무너지는 일이었다. p.52

“사랑은 이해가 아니라 기다림이라고 믿었다. 모두를 이해하지 못해도 그 곁에 남는 것” p.63

“진정한 사랑은 상처를 덮지 않고 그 상처를 함께 바라보려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p.74

“사랑은 끝나는 순간에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끝난 후에야 비로소 울리는 파동이었다.” p.90

“사랑은 함께 웃는 사람이 아니라 끝까지 남겠다고 한 사람과 그렇게 완성된다.“ p.132

“사랑은 가장 차가운 순간에도 끝까지 곁에 있겠다는 마음이 마침내 도달하는 자리다.” p.143


감성 에세이를 읽는 일이 우리에게 어떤 변화를 줄까? 몇 가지 지식을 더 얻는 보탬도 아니다. 문제를 해결할 답을 주지도 않는다. 굳이 '우리'라고 할 것 없이 '나'의 이야기를 해보자.

감성 에세이가 나에게 끼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스테디 책보다는 읽기가 편하다. 훌훌 책장이 잘도 넘어간다. 그렇다고 쉬운 읽기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제 자리를 지키고 있던 활자가 갑자기 톡 튀어올라 나를 낚아챈다. 그것의 힘이 어찌나 쎈지 나를 깊은 수렁 속에 빠트리기도 한다. 하늘로 붕 띄워 올리기도 한다. 마법의 양탄자가 되어 나를 태우고 느리게 또는 빠른 속도로 어디론가 떠난다. 어디로? 그 길조차 잊어버려 가물가물한 먼 옛길로 싣고 가기도 하고, 생전에 단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먼 미래로 끌고 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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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감정은 전염성이 매우 강하다. 나처럼 면역이 약한 사람은 그 전염병에 잘 걸린다. 작가의 감정이 내게로 옮겨와 작가가 쏟아놓은 눈물의 글에 덩달아 눈물을 흘리고, 작가의 까르르 웃음소리를 담은 글이 나를 빙그레 미소짓게 만든다. 작가가 노란 은행잎을 그려놓으면 나는 그 배경에 선 빨간 단풍나무까지 볼 수도 있다. 작가가 떠난 연인을 그려놓으면 읽는 나는 작가의 연인을 몇 번쯤은 만났던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작가가 이별을 읊으면 내 가슴이 철렁하는 소리까지 내며 안타까워하고, 작가가 사랑의 환희를 노래하면 나는 봄날의 첫 꽃을 발견한 마음이 된다.

결혼식 하객으로 가서 젊음을 되찾고, 장례식에 조문가서 인생을 돌아보는 것처럼, 남이 써놓은 에세이를 읽으며 그 글에 내 인생을 반추해보는 것은 참 귀한 독서의 시간이다. 이러니 가끔은 감성 에세이를 읽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가 진정으로 사랑을 알게 되는 순간은 그 사랑이 찬란할 때가 아니라 모든 빛이 꺼진 뒤 어두운 방 안에 홀로 남은 그림자와 마주할 때다." 160쪽.

"멈춘다는 건 끝이 아니라는 걸/ 흐르지 않는다고 마음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라는 걸/ 바람도/ 강물도/ 사람도/ 언젠가 다시 흐르기 위해 잠시 멈춰 있을 뿐이다/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 당신은 이미 가야 할 길 위에 있으니까" 188쪽.

"모든 것은 흘러갔다. 흩날리던 꽃잎은 바람에 씻겨 사라지고 창밖의 빛은 저물어 방 안에 희미한 어둠만이 남았다." 228쪽 (소리내어 느리게 읽어보니 왠지 랭보의 시를 읊는 느낌이다.)

"사랑이 끝난 자리에서 비로소 삶은 묻는다 '너는 너에게로 향할 준비가 되었느냐고'" 260쪽

"경기도 시안. 이팝나무 아래에서 그녀의 유골함을 안고 서 있었다. 흩날리는 이팝꽃잎들이 내 눈물처럼 흘러내렸다. 277쪽.

내가 사는 도시에서는 해마다 이팝나무 꽃이 피면 축제가 열린다. 내년 봄에 이팝꽃이 피면 나는 이 시구절을 생각하게 될 것같다. 작가의 아픔이 마치 내가 베인듯 아릿하다. 책을 덮을 때 쯤에 작가는 끝까지 따라와 주는 독자들에게 따뜻한 위안을 주는 것을 잊지 않는다. 물론 독자를 위한 위안만은 아니다. 작가 스스로 자신을 어루만지고 쓰다듬으며 서서히 온기를 올리고 있다. 상실의 아픔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은 작가, 끝내 자신을 선택한 작가, 그의 감성에 덩달아 빠져들며 스테디 북에 짓눌려 긴장했던 가슴이 편안하게 펴졌다. 앗, 내 가슴, 아직 완전히 사막화되지는 않았구나! 눈물도 남아있고, 체온도 따뜻하네.

이래서 가끔은 아주 감성적인, 감정을 촉촉히 적셔줄 글을 읽어야한다.


나는 끝내 나를 선택했다

모든 빛이 꺼지고

모든 문이 닫히고

모든 이름이 지워져도

마지막까지 남아

나를 기다리던 단 한 사람.


사라지지 않는 사람

포기하지 않는 사람

어둠을 견디는 사람

그 사람은 바로

나였다


빛은 멀리서 오는 게 아니라

끝내 나를 포기하지 않은

내 안에서 피어났다

-책의 뒷 표지 글


독자는 작가의 사정을 잘 모른다. '소설'은 논픽션이라 여기고 즐겁게 또는 아프게 읽는다. 픽션과 논픽션이 어우러지는 자전적 소설도 있다. 팩션이라고 하던가, 그런 소설은 글을 통하여 작가에게 더욱 가까이 접근할 수 있다.

'에세이'는 꾸밈없는 진정성에 공감한다. 작가의 깊은 사유에 감동한다.

'시'는 어떤가? 구절구절 마다 작가의 마음이 스며있다. 짙게, 연하게, 잘 그라데이션된 배경으로 작가의 마음이 깔려있다. 눈 밝은 독자는 배경색깔을 잘 볼 수 있다. 그 빛을 따라 작가에게 조금 다가간다.

#9 작가를 나는 모른다. 그의 글을 통하여 어림짐작을 해 볼 뿐이다. 그는 어떤 사람일까? 지독한 이별을 겪은 사람일까? "잠시 눈을 감고" 빛을 기다리고 있을까? 이미 그는 빛 속에 들어가 있을까? 그가 글을 쓸 때와 세상에 그 글을 내놓은 후의 상황이 같은지 다른지도 독자는 모른다. 다만 그의 작은 목소리를 들을 뿐이다.

"빛이 보이지 않을 땐 잠시 눈을 감고 기다리면 돼"



나는 브런치북에 연재하는 미술과 철학, 책리뷰, 주로 이런 글을 쓰고 있다. 테마가 정해지면 쓰기 쉬운 글이다. 나의 새로운 이론을 증명할 논문도 아니고, 이미 알려진 여러 이야기들을 수합하여 엮을 뿐이다. 옆지기는 내가 글을 빨리 쓴다고 놀랍다고 한다. 이미 준비된 자료를 엮을 뿐이니까 그렇지. 그동안 읽어둔 책이 많으니까 쉽지.

옆지기는 소설을 쓴다. 고민하여 창작해놓은 에피소드를 지워버리고, 다시 새로운 스토리를 만들어내고... 나는 그의 소설 쓰기에 놀란다. 어떻게 그런 이야기들을 만들어내느냐고. 그것이 바로 창작아닌가! 내가 쓰는 글은 창작이 아닌데 말이다.

아침이면 브런치 작가들의 글을 읽으며 그들의 깊고 넓은 사유에 놀라고, 작법에 감탄하고, 내용에 공감하고, 그렇게 쓰지 못하는 나를 한심하게 여길 때가 많다. 작은 욕망이, 큰 욕망이라하면 안될 것 같아서, 아주 작은 꿈이 있다면 나도 창작을 하고싶다는 꿈이다. "창작"의 범위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 그것조차 알 지 못하는 나이지만...


브런치작가의 출간책 몇 권을 들여놨다. 나의 연재글이 뜨는 사이사이에 그 책들에 대한 리뷰를 쓸 생각이다. 에세이 작가들, 시인들, 동화작가들을 아주 위대하게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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