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실존주의적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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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바르 뭉크가 1892년 남긴 일기에는 잘 알려진 문장이 있다.
“나는 두 친구와 함께 길을 걷고 있었다. 태양이 지고 있었다. 나는 피로에 지쳐 멈춰 섰다. … 그 순간, 나는 자연을 뚫고 지나가는 무한한 비명을 들었다.”
여기서 탄생한 그림이 바로 <절규>다. 붉게 피 흘리듯 번져나간 하늘, 파도처럼 요동치는 선, 귀를 막은 채 벌어진 입—뭉크는 인간이 시대 속에서 느낀 불안을 압축된 이미지로 기록했다. 단순히 개인의 신경증이 아니라, 19세기 말 유럽 전체가 겪던 실존적 공황의 표현이었다. 신앙이 무너지고, 전통의 기둥이 흔들리며, 과학과 산업의 소음이 영혼의 침묵을 대체하던 시대. 뭉크는 시대의 불안을 붓질로, 색채로, 선의 진동으로 응축했다.
‘신 없는 세계의 불안’을 시각화한 것이다.
뭉크는 1906년 바이마르의 니체 아카이브에서 철학자의 초상을 그렸다. 당시 니체는 이미 정신적 몰락에 빠져 있었지만, 그의 사상은 폭발적 힘을 지니고 유럽 지성계를 흔들고 있었다. 뭉크는 니체의 얼굴에서 승리와 파멸, 생명과 몰락을 동시에 포착하려 했다. 초상 속 니체는 전능한 예언자처럼 보이면서도, 동시에 무너져가는 인간의 초상이다. 모순된 이중성은 뭉크가 평생 화폭 위에 그려온 주제이기도 했다. 그 초상화는 철학자가 남긴 사유의 궤적을 화가의 눈으로 증언한 기록이다. 뭉크에게 니체는 단순한 사상가가 아니라, “삶의 심연을 직시하는 자”의 상징이었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선언했다. 이는 단순한 무신론이 아니라, 서구의 도덕적·종교적 기반이 무너진 시대적 진단이었다. 뭉크는 이 철학을 그림으로 응답했다. <절규>의 인물은 귀를 막고 있지만, 사실은 외부의 소음이 아니라 신 없는 세계의 침묵 속에서 솟아나는 내면의 공허에 괴로워한다.
그림 1.
왼쪽 에드바르 뭉크 <프리드리히 니체> 1906. 캔버스에 유채와 템페라. 201 x 130cm.
뭉크 미술관, 오슬로, 노르웨이
오른쪽; 에드바르 뭉크 <절규> 1910. 프라이머를 바르지 않은 판지에 템페라와 유화. 83.5 x 66 cm.
뭉크 미술관, 오슬로, 노르웨이
<절규>는 니체의 선언 “신은 죽었다”가 회화로 옮겨진 장면처럼 보인다. 신의 부재가 남긴 공허, 공허 속에서 솟아오르는 내면의 비명. 그림 속 인물은 귀를 막고 있지만, 들리는 것은 외부의 소리가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서 터져 나오는 공포다. 인간이 자기 존재의 근거를 상실했을 때 마주하는 허무의 소리다. 니체는 허무를 넘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라고 요구했지만, 뭉크는 허무 자체를 가시화했다. 인간의 고통을 숨기지 않고, 오히려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시대의 진실을 증언했다.
에드바르 뭉크 <절규>
박물관이 소장한 8개 버전 중 4개. 왼쪽부터 1910년 추정 프라이머를 바르지 않은 판지에 템페라와 유화(위의 그림1), 1893년경 크레용 버전, 1895년경 제작된 박물관 소장의 석판화 6개 중 2개, 왼쪽에 있는 작품은 손으로 채색. 국립 박물관-뭉크 미술관, 오슬로, 노르웨이
<절규>는 4점의 버전, 2점의 템페라화, 2점의 드로잉으로, 그중 2점은 그가 소장하고 있었으며 오늘날에도 "뭉크컬렉션"에 소장되어 있다. 얼마나 많은 석판화가 인쇄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인화는 약 30점 정도일 것으로 추정된다.
<절규>는 내용과 형식 모두 여전히 수수께끼다. 배경에 있는 2명의 인물(그림 왼쪽)들은 비록 작지만, 이미지의 열쇠를 쥐고 있는 듯하다. 대화에 몰두하거나 생각에 잠긴 그들은 뒤돌아보지 않고 계속 걸어간다. 그들의 길은 완전히 곧은 길(다리 위)이므로 진행이 예측 가능하다. 그대로 앞으로 곧게 나갈 것이다. 종종 이 인물들처럼 좌우를 살피지 않고 자신이 선택한 길을 따라간다.
한편 위의 그림 왼쪽에서 두번째 푸른색 그림에선 두 사람이 잠시 멈춰서서 흐르는 물을 바라보는 형상이다.
전경의 왜곡된 인물에 대한 해석은 여러가지다. 마치 뭉크가 "멈추고 주변을 둘러볼 때다"라고 말하는 것, 아니, 오히려 소리치는 것 같다.
에드바르트 뭉크의 스케치북에서 발췌: 왼쪽: 절망, 절규 텍스트 버전. 석탄, 유화, 1892년(추정). 오른쪽: 손으로 쓴 텍스트. "나는 두 친구와 함께 길을 걷고 있었다." 수채화, 1930년경. 사진 © 뭉크 뮤제움
스케치는 우아하게 차려입은 남자가 피오르드를 바라보며 우울한 기색을 풍긴다. 훌륭한 이미지이지만, 특별히 상징적인 것은 아니다. 초기 스케치 이후 점차 인물은 익명성과 보편적이면서도 비인간적인 모습으로 변해가다가, 독특한 자세로 관람객을 향해 돌아선다. 최종 모티프의 불특정적인 모습은 나이, 성별, 문화적 배경에 관계없이 누구나 그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알아볼 수 있게 한다. 뭉크가 창조한 이 인물이 외치는 소리는 우리 누구나의 귀에 크게 들릴 것이다. 듣는이마다 모두 제각각 다른 뜻의 외침을 듣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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