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말 풍선 속의 철학 - 리히텐슈타인과 롤랑 바르트

by morgen

3부 언어와 기호의 관계

<그림 속 철학, 철학 속 그림>에 업로드된 이미지는 인정된 퍼블릭 도메인이거나, 공정 이용(fair use)에 따라 저작권을 존중하는 공식 미술관 사이트 링크입니다.


11화. 롤랑 바르트와 로이 리히텐슈타인

언어와 이미지는 언제나 긴장 관계에 있다. 단어는 대상을 가리키는 것 같지만 사실은 끝없는 해석을 열어두며, 이미지는 눈앞의 현실을 보여주는 듯하지만 오히려 수많은 기호의 층위를 불러온다. 언어와 기호를 탐구한 철학자 롤랑 바르트와, 만화의 언어를 미술관으로 끌어온 로이 리히텐슈타인은 서로 다른 영역에 서 있었지만, 결국 같은 질문을 던졌다. “우리가 보고 읽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바르트 - 기호의 덫을 드러내다

롤랑 바르트의 작업은 늘 기호가 어떻게 의미를 만들어내고, 또 어떻게 사회적 신화로 굳어지는지를 해체하는 데 있었다. <신화론>에서 그는 신문 기사, 광고, 잡지 표지 같은 일상적 텍스트를 해부하며, 그 안에서 “자연스럽다” 여겨지는 의미가 사실은 특정한 문화와 이데올로기에 의해 만들어진 것임을 드러냈다. “신화는 세계를 설명하지 않고, 단지 정당화할 뿐이다”라는 그의 말처럼, 기호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시각을 ‘자연’처럼 위장한다. 바르트는 그의 저서 <현대의 신화>에서 기호는 끊임없이 신화를 만들어낸다고 피력한다.

<현대의 신화> 이화여자대학교 기호학연구소 옮김. 2002. 동문선

“자명한 것으로 포장된 진술 속에 숨겨져 있다고 생각되는 이데올로기적 오용을 다시금 포착" 3쪽.

“통계적으로 신화는 우파의 신화이다. 우파에서 신화는 본질적이다. 매우 알차고, 빛나고, 팽창적이고, 수다스러운 그 신화는 끊임없이 만들어진다." 324쪽.

"신화의 목적은 바로 세계를 고정시키는 것" 333쪽.


리히텐슈타인- 팝아트 POP ART

1950년대 중반 영국과 1950년대 후반 미국에서 등장한 팝아트는 1960년대에 절정에 달했다. 젊은 예술가들은 미술 학교에서 배운 것과 미술관에서 본 것들이 자신의 삶이나 일상에서 보는 것들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생각했다. 대신 그들은 할리우드 영화, 광고, 제품 포장, 대중음악, 만화책과 같은 이미지들을 활용했다.


그림 1. url을 클릭하여 이미지를 정당하게 감상하세요. 공정 이용(fair use) 작품입니다.

https://www.tate.org.uk/art/artworks/lichtenstein-whaam-t00897

로이 리히텐슈타인 <와암! Whaam!> 1963. 캔버스에 아크릴과 오일곁들인 마그나.

172.7×406.4cm. 테이트 모던, 런던, 영국


전쟁의 신화

<와암!>의 시대적 배경은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 깊이 개입할 위기에 처해 있었고, 계속되는 냉전의 위협에 압도당했을 당시, 전국적으로 반전 정서가 고조되고 있었다.

<와암!>은 1962년 인기 DC 코믹북 시리즈 "올-아메리칸 맨 오브 워(All-American Men of War)" 의 한 장면에서 따왔다. 전투기가 미사일을 발사해 적기를 폭파하는 장면은 원래 전쟁 만화 속 한 컷이다. 폭력에 대한 우리의 무감각함이나 할리우드식 전쟁 낭만주의를 비판하는 것일까? 아니면 빠른 속도의 액션과 '팝아트' 미학을 찬양하는 것일까?

폭발 장면에 대한 무감각한 묘사는 뉴스에서 흔히 보는 폭력에 대한 우리의 정서적 무관심을 그대로 보여준다. 폭력적인 주제와 냉정한 상업적 스타일이라는 이중성은 작품을 궁극적으로 불분명하게 만들고, 판단은 감상자의 생각에 맡긴다. 바로 롤랑 바르트의 이론과 맞물린다.

<와암!>은 바르트의 분석을 시각적으로 증명하는 듯하다. 리히텐슈타인은 그 이미지를 확대해 두 개의 캔버스에 나란히 걸었다. 강렬한 원색, 굵은 윤곽선, 인쇄망점까지 충실히 재현된 장면은 미술관의 작품이면서 동시에 싸구려 전쟁 만화의 언어를 벗어나지 않는다. 관람자는 묻는다. “이것은 전쟁의 영웅적 장면인가, 아니면 소비되는 기호의 신화인가?” 바르트가 말한 ‘신화의 정당화’는 이 그림 속에서 폭로된다. 전쟁은 현실이 아니라 이미지로 소비되고 있었던 것이다.

작품은 대중적 이미지를 냉정하게 차용한 것으로, 명확한 시각적 표현으로 대량 생산 방식을 암시하지만, 실제로는 리히텐슈타인은 <와암!>과 같은 그림을 손으로 꼼꼼하게 그렸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morgen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삶의 미술관> <조선과 서양의 풍속화, 시대의 거울> 출간작가. 북아트강사. 미술관 도슨트경력.

341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1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9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11화르네 마그리트와 미셀 푸코 - 언어와 이미지의 균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