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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하고 편하게 살기로 한다.

너무 오래살면 어떡하나…

by morgen

청양, 공주, 서울의 동서남북, 독일 에르딩, 영국 런던, 오스트리아 짤즈부르크, 독일 뉘른베르그, 다시 에르딩, 서울, 대전. 내가 살아온 도시들이다. 정말 떠돌이로 살아왔다. 작년 2024년까지만 해도 독일 에르딩과 서울과 대전 집을 여행하듯이 오가며 지냈다.

아주 작은 집에도 살아봤고, 3층집, 대형 복층아파트, 운동장처럼 넓은 집, 원룸, 집 전시장을 돌아다니듯 여기저기 이집저집 떠돌며 보낸 세월이다. 가장 확실한 건, 평균수명을 따지자면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의 1/10 정도의 시간이 내게 남아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보다 짧을 수도, 혹은 더 길 수도 있겠지만.

어머니는 70 넘어서부터 특별한 무얼하려면 “내가 내년에도 또 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니까”, 먼 나들이를 가려면 “내가 내년에 갈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니까”, 그래서 조금 무리하면서라도 행하신다는 말씀을 하셨었다. 그리고…… 95세에 돌아가셨다. 나도 “잘 마무리해야지.”를 20년동안 되뇌이며 살아남을 지 모를 일이다.

일생을-인생을 정리하는 시기에 들어오면 그 때가 되었다는 마음의 준비를 하게된다. “아직은…” “뭘 벌써부터?” “나중에“라는 꼬리표가 따라 붙지만 어쨌든 비켜갈 수 없는 길이다.


요즘은 서울 오피스텔에 머물며 이곳을 비울 준비를 하고 있다. 2005년, 신축 건물에 첫입주하여 지금까지 있었으니 20년이다. 내내 여기 거주한 것은 아니고, 가끔 아니 자주 드나들던 곳이다. 옆지기의 서재로, 나의 북아트 작업실로 사용하다가 12년 전 지방으로 이사한 후로는 가끔 숙소로 사용하는 곳이다.

작은 복층 원룸. 창밖으로 아침에 해뜨는 하늘이 발갛게 보이는 곳, 봄이면 벚꽃으로 온통 하얗게 뒤덮인 남산이 훤히 보이는 곳이다. 이 작은 원룸이 가장 편한 안식처가 된다. 살림집에서는 소파에 앉아 편히 쉬고 있어도 눈앞에 일거리가 보이고, 일없이 쉬는 시간이 마음 편하지 않은데, 이 원룸에서는 아무것도 할 일이 없다. 밥도 안하고, 빨래도 안한다. 청소는 가끔 슬쩍 하는 척. 주부에겐 천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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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원룸이지만 복층이라 방학이면 손녀들을 몰고와 며칠 씩 묵곤한다. 병원에 가는 핑계로 며칠 묵고, 친구 만나러 와서 며칠 묵고, 해외 여행 드나들 때 여기 들러서 또 며칠 묵고, 참 편리하게 사용했다. 이제는 완전히 철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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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손녀들과 유럽여행을 떠나기 하루 전. 인천공항에 가기 위해 하루 묵었었다..


작년부터 우리 부부는 이사 작전(?)을 펼쳤다. 오랫동안 유지하던 독일 살림집에서 완전히 철수하고, 올해엔 이곳 오피스텔을 비우고, 현재 거주하고 있는 살림집도 옮길 계획이다. 새로 옮겨갈 집을 '내 생애 마지막 집'이라고 생각하는데, 인생이 어찌 뜻대로만 되는 것이던가. 알 수 없다.

집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여러 생각들을 해왔지만, 노인네들이 계획하고 실행하기에는 이렇게 더디다. 왜 그럴까? 지방도시로 이사한지 12년이 지났는데, 서울에 거처가 없어진다는 것이 왠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심하기가 어려웠다. 참 바보같이... 서울이 뭐라고.

그러나 이젠 용기를 낸다. 나는 이제 한 집에만 머물 것이다.




2025년 10월30일, 서울 오피스텔에서 완전 철수했다. 2005년에 입주했던 곳이다.

Erding집에서는 작년, 2024년 8월에 완전 철수했다. 1994년 8월17일에 첫 발을 디딘 독일의 거주지 Erding이다. 브런치 북 “독일생활 에피소드”에 여러 글들을 발행했다.

2022년 여름방학 때 유럽여행을 하며, Erding집 마당에서 뛰노는 손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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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중에도, 여행중에도 공부는 손놓으면 안되는 딱한 손녀들. 햇볕에 빨래를 한가득 널어놓으면 마음은 부자가 된 느낌. Erding집, 2022년.


2025년 11월6일, ‘생의 마지막 집’이라 칭하며 마지막 이사를 했다. 집을 반으로 줄이고, 짐도 반으로 줄였다. 옮기고보니 남은 짐의 반을 또 줄여야 할 것같다.

엄벙덤벙 드나들며 제대로 잘하지도 못했던 살림에서 벗어날 희망에 부풀어있다. 역시 제대로 잘 하지도 못했던 ’살림 외의 일들‘에 집중하며 즐겁게 살기로 한다.


여행짐을 싸는 일에는 일급 선수인 우리식구다. 여행가방 몇 개에 두 노인네 입을 옷이 있다. 양복과 겨울코트가 아니라면 트렁크 2개쯤 줄어들었을 것이다.

책은 책장 밖에 나돌지 않도록 하려고 결심했었는데 실패했다. 500여권을 중고서점에서 가져갔고, 옆지기의 사무실에 다섯 상자쯤 보관했다. 1천여권이 이 작은 집으로 함께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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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책 서점에서 가져간 책들. 보관 가치있는 묵은 책들이 제법 여러 권 있었는데... 아쉽다.


애착이 많았던 그릇들은 아름다운 가게에 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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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금 영수증을 발급받았다. 세액공제가 된다. (나는 봉급생활자가 아니라 며느리 앞으로.)

화분의 큰 나무들- 나의 욕심 때문에 실내 화분에 갇혀 살던 큰 나무들은 안락사시켰다. 여러곳에 입양 문의를 했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실내에서 20여년 살아온 식물들이 마당에서는 겨울을 못 이길 것이고, 실내에 들여놓기로는 너무 큰 화분이다. 이사중에 가장 아픈 이별이다. 작은 화분은 여러개 들고왔다.

딸은 내 마음을 다 들여다본 듯 안타까워하며 제가 몇 개는 가져가겠다고 했다.

"너는 가져가면 다 죽이면서?"

"그래도 내가 가져가서 죽는 건 자연사고, 엄마가 내다 버리면 살생이잖아."

(딸아, 살생이기는 하다만 살해는 아니고 안락사시켰다. 화분에서 연명하느라고 고생깨나 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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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오기 전, 먼저 살던 집 베란다 정원.(브런치 북에 '베란다 정원' 이야기를 발행했었다.)


이사온 작은 집에서의 삶은 생활 방식이 많이 바뀌는 여생이 될 것이다.

가족들 모이면 맛집에 가서 사먹기로 한다. 그릇이 필요없어진다. 술의 종류에 따라 갖춘 크리스탈들도 쓸 일이 없다. 향기를 가두는 꼬냑잔도, 노벨상 시상식 파티 테이블에 오르는 와인잔도, 그냥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나무 화분에 집착하지 않기로 한다. 늙은 우리의 기분전환이 될 생화바구니를 자주 바꿔놓기로 한다. 돈 아끼지 말고 꽃을 사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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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고백. 외국어 욕심이 좀 과했었다. 하면 될 줄 알았다. 노력하면 다 될 줄 알았다. 녹음테이프 사용, CD 사용 시절에 사서 가끔 들여다보던 옛 외국어공부 자료들과 이별을 했다. 여러 번 이사를 하던 중에도 "할거야. 해야지" 되뇌이면서 버리지 못했었는데, 이제 손을 놓았다. 겨우 길 안내표와 식당 메뉴판 몇 개 읽을 정도로 만족하고. 초면에, 이후라도 만나면 예의상 그 나라 말로 인사를 할 줄 아는 정도.


시력이 허락할 때까지 책읽고, 이명과 싸우며 음악듣고, 입맛 잃기 전에 맛있는 것 먹고, 사진보면서 홀딱 반한 곳에 찾아가서 온몸으로 감상하고, 힘에 겨운 노동(가사노동이지만)은 한 명에게라도 일자리 창출해주고, 돈 아끼지 않고 그냥 그렇게 편하고 즐겁게 살기로 한다. 아니, 이런 부르주아같은 생각을…!

이렇게 살다가 5년 안에도 안죽으면 어떡하지? 10년도 더 살면 어떡하지?


멋! 멋이 무언지 잘 모르겠다만, 어쨌든 나는 생의 마지막을 멋지게 살고자 한다.

나눔으로 내가 즐거움을 얻고, 잘 받음으로써 남에게 즐거움을 주면서 편안하고 느리게 살아갈 것이다.




나는 나의 구독자들, 내글에 좋아요를 눌러주신 구독자들의 브런치 글을 제대로 읽는다. 한 2주일 정도, 이사준비로 생활의 질서가 무너져서 브런치를 잠시 멈췄었다. 이사 온 집의 짐 정리는 아직 멀었지만, 틈나는 대로 다시 브런치 이웃들의 글들을 잘 챙겨 읽을 것이다. 그리고 좀 여유가 생기면 내 생의 마지막 집으로 작정한 이 작은 집에 대한 소개도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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