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떼는 말이야...

정말 맛있는 라떼 카페 추천함

by Young Ham

대학을 졸업한 그 해 봄, 공항까지 마중나온 친구의 눈가는 붉어졌다. 그 전 몇 달간, 자식을 모두 타지로 떠나보내야 하는 모정은 따뜻한 밥상을 내어 주면서도 눈물에 흥건히 고인 듯 슬픔이 전해져 왔다. 같이 있어도 가슴이 아리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비행기를 타고 이륙하는 순간, 이별의 슬픔은 멀어지는 고국의 모습만큼 빠르게 사그라들고, 난생 처음 경험하는 구름위의 하늘 그리고 그 너머에 펼쳐질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와 흥분에 휩싸였다. 내 앞에 펼쳐질 삶에 대해서 어떤 예상도, 계획도 없었지만, 새로운 세상에 던져진다는 것 자체가, 혹은 한국을 떠나 까마득하게 부유해 보이던 미국이라는 나라로 이민을 간다는 사실이 이미 모든 것을 이룬 듯 벅차게 느껴졌던 1990년이었다.


미국령 괌의 공항은 아담했다. 이민국 직원의 몇마디는 살이 떨리듯 무서웠다. 공항을 나오니 까무잡잡하게 탄 아버지와 우리 엄마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고 못생긴 새엄마가 마중나와 있었다. 열대지방의 습하고 더운 날씨가 특유의 냄새와 함께 훅- 하고 들어왔다. 이제 막 알을 까고 나온 병아리에게는 모든 것이 그저 신기한 세상이었다. 그리고 비로소 스스로 생존해야 하는 세상이기도 했다.


아버지를 따라 공사판에서 헬퍼로 일을 시작했다. 새벽에 아버지의 낡은 고물 밴 옆자리에서 때로는 피곤에 덜깬 잠을 달래며, 때로는 한국에서는 단 한 개도 제대로 먹어보지 못했던 바나나를 마음껏 먹으며 그때 그때 달라지는 현장으로 출근했다. 공사장 청소를 하고, 자재를 옮기고, 그 밖에 할 수 있는 일은 뭐든 다 했다. 열대의 태양은 수건을 목덜미에 두르고 있지 않으면, 이미 탄 피부를 또다시 벌겋게 태울 정도로 뜨거웠다.


그 땅아래 박힌 약 10미터 깊이의 쇠파이프에는 인부들이 대소변을 보기도 하고, 쓰레기를 버리기도 해서 오물이 차 있었는데 제거해야만 했다. 온갖 궁리와 시도 끝에 결국 사람이 내려가서 제거할 수 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며칠간의 준비 후, 나는 도르래에 달린 발판에 서서 쇠파이프 안으로 내려졌다. 직경 1미터 남짓의 파이프는 어깨가 간신히 들어갈 정도의 넓이여서 그 안은 어둡고 악취가 진동하고 참기 힘들 정도로 더웠다. 바닥에 닿자 위에서는 발판을 회수하고 기억자로 꺽인 삽 같은 것을 내려보내 주었다. 수직자세에서 팔을 움크리고 선 채 삽을 바닥에 내려 발가락을 꼬물거려서 오물을 삽위에 조금씩 밀어 넣었다. 파이프 안에는 공기가 희박해서 위에서 에어 컴프레서로 공기를 불어 넣어 주었다. 조심한다고 해도 일하다 보면 어깨가 쇠파이프에 쓸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삽이 차면 줄을 당겨서 오물은 내 얼굴 앞을 지나 밖으로 나갔다. 극한의 환경은 오물의 내용물 따 따위에 신경 쓰는 것을 막아 주었다. 두어시간쯤 작업한 후 도르래에 올라타고 밖으로 나오면 열대의 뜨겁던 공기조차 고국의 가을날씨처럼 시원하게 느껴졌다. 그곳에서 접한 체리 콜라는 여전히 신기한 맛이었다.


점심시간에는 물에 말은 밥을 간단히 먹고 문틈으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옆 건물의 화단에 가서 종이 박스를 깔고 낮잠을 청했다. 어느날은 그 건물의 직원이 반쯤 먹다 남은 케잌 같은 것을 줬는데 맛있었다. 그 빵의 이름이 머핀이었다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일주일쯤 작업하고 나니 마침내 파이프의 오물을 대부분 제거할 수 있었다. 공사장에서는 그곳에 파이프를 박고 엘리베이터를 설치한다고 했다. 그 현장은 괌 법원건물 공사였다.


당시 괌의 해변은 일본계 호텔이 전성기를 이루던 때라 일이 많았다. 타일공사나 자잘하게 수리해야 하는 공사는 항상 있었다. 어느 날은 호텔 수영장 둘레에 깨진 시멘트를 수리하는 공사를 맡았다. 불과 몇 미터 떨어진 곳이었지만 파라솔과 벤치가 놓인 수영장과 내가 일하는 곳은 서로 다른 세계였다. 그곳에는 시원한 그늘 아래서 일본에서 관광 온 예쁜 여성들이 남국의 휴가를 즐기고 있었고 나는 뙤약볕아래서 치열한 생존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세계는 저임금 노동자로 이민생활을 시작한 가난한 청춘에게는 언감생심 다가가지 못할 다른 세상이었다. 일하는 간간이 머리위에 낮게 비행기가 지나가고는 했다. 괌은 작은 섬이라 사실 어느곳에서나 비행기를 볼 수 있었다. 저 비행기를 타면 반나절이면 엄마가 있는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고는 했지만, 떠나온 자리는 하루하루 멀어져 갔다.


휴일이 따로 없는게 노가다의 삶이기는 하지만, 가끔 쉬는 날에는 섬 주변으로 드라이브도 하고, 아버지를 따라 지인들을 만나서 통돼지 바베큐도 하고는 했다. 한인식당에서 처음 먹어본 왕갈비는 환장할 정도로 맛있었다. 처음에는 낫선 고수향에 질색했지만 나중에는 그 맛에 중독되어 버린 베트남 쌀국수는 언제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때로는 일 끝난 저녁에 아버지를 따라 당구테이블이 놓인 로컬바에 가서 맥주 한 캔을 들고 어른들이 만나는 옆자리에 앉아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는 했다. 그때 어떤 한인 아저씨는 미 육군에서 직업군인으로 6년간 일했다는 경력?으로 한인들 사회에서 잘 알려져 있었다. 미군이 주는 밀가루, 껌, 초코렛을 받아 먹은 기억이 있는 우리 아버지와 그 세대에게 미국과 미군은 우상처럼 자리잡은 존재였다.


시간을 빠르게 감아 본토인 캘리포니아주로 이주 한 후에도 청소, 주유소, 웨이터, 바텐더, 대리운전, 그리고 나중에는 심부름센터와 여행사를 하기까지, 이민자의 삶은 척박하고, 가난하고, 무시당하고, 무능력했고, 때떄로 절박했고 절망스러웠다. 그사이 가정이 생겼는데 내 직업과 수입은 여전히 일정치 않았고, 진학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쇼핑몰에서 우연히 미육군 모병소에 호기심 삼아 들렀다가 미군에 오면 가족을 부양하면서, 대학원을 다닐 수 있다는 한국 모병 하사관의 말에 넘어가 적성검사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고 6년짜리 병과에 사인했다. 삶은 때때로 우연하게 보이던 일들이 만나서 새로운 챕터를 열어간다.


나에게 유리한 조건이라는 것은 애당초 없는 가난한 집안의 자식으로 태어나서, 기득권이라는 것은 애당초 없는 이민자의 삶을 거쳐, 네트웍이니 지연이니 학연 등에 전혀 기댈 수 없이, 나에게 가족을 부양할 최소한의 급여와 공부를 할 수 있게 해 준다면 총들고 대신 전쟁터에 갈 용의가 있다며 6년간의 청춘을 바쳤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그렇게 오직 세상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실력으로 승부하는 것만 유일한 성공의 방법이라고 알고 있던 청년은 중년에 접어들면서 70여명의 직원에 100억대의 매출을 바라보는 회사의 대표가 되었다.


그런 삶을 살아온 그의 눈에는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고, 누구나 부러워하는 의사라는 직종에서, 10%의 경쟁자가 더 생긴다고 격렬하게 반대하는 2030 세대 의사들이 철저하게 기득권에 물들어 있고, 이기적이고, 물질적인 집단으로 보여진다. 거기까지는 그들의 자유라고 하더라도, 언젠가는 그들에게 자신의 몸을 맡겨야 한다는 사실을 두렵게 느낀다. 그는 의료정책의 주체는 의사, 정부 뿐만 아니라, 그 서비스를 받는 국민도 포함된다고 믿는다. 그 자신도 기득권자의 반열?에 올라 있지만, 세상에는 이익보다 혹은 이익만큼 중요하게 지켜야 할 가치도 있다고 믿는다.


젊은 의사들의 문제는 비단 그들의 잘못만은 아닐 것이다. 그정도 가치밖에 가르치지 못한 나를 포함한 베이비부머 세대에게도 동일한 분량의 책임이 있다. 내 자식만큼은 어떻게 해서라도 죽어라고 과외 시키고, 좋은 대학, 학과에 진학시켜서 출세를 시켜야겠다는 이들의 천박한 출세지향주의 교육관은 노블리스 오블리제 따위는 명품 가방에 달린 엑세사리정도로 여기는 괴물의 자식이 되어서 날카로운 이빨로 이 시대와 세대를 갈라놓고 있다. 우리 사회에 의사와 판사의 정원을 늘리지 못한다면, 간호사나 교사나 소방관, 경찰관, 나아가서 우리 동네 빵집이나 세탁소의 숫자도 기득권자의 동의 없이는 늘려서는 안된다.


히포크라테스는 이미 2천 500년 전 쯤 이렇게 경고했다.

“내가 이 맹세를 깨트리지 않고 지낸다면, 그 어떤 때라도 모든 이에게 존경을 받으며 , 즐겁게 의술을 펼칠 것이요 인생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하나 내가 이 맹세의 길을 벗어나거나 어긴다면, 그 반대가 나의 몫이 될 것이다.”

이들과 남은 시간을 살아가야 하는 나는, 지금부터 어떤 꿈을 꾸어야 할지 막막해지는 요즈음이다. 아 참 그래서 라떼는 말이야… UC 버클리 대학교 옆 La Strada에서 마시던 라떼가 정말 맛있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