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프리카 문학 세션, 조용히 시작합니다.

<보이지 않는 세계들> 아시아, 중남미, 중동 이후 네 번째 세션

by H 에이치

나는 무언가를 진득하게 해낸 기억이 없다. 천성적으로 호기심이 많아 눈길이 닿는 대로 궁금해하고, 지나치면 잊었다. 그때그때 눈앞에 나타난 것들에 감탄하다 다시 걷고, 새로운 풍경에 또 경탄하고 다시 걷고, 그렇게 즉시 사랑에 빠지고 즉시 헤어 나오며 살았다. 무언가를 움켜쥐고 오래도록 아끼는 일은 내 삶의 방식과는 먼 것으로 여겼다. 그런 점에서 내게 <보이지 않는 세계들> 북클럽이 귀하다. 놓고 싶지 않은 것을 함께 만들어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로 오늘 글을 시작한다.


2022년, 때로 어깨를 톡톡 두드려주며 같은 길을 걸어주는 동행자들을 만났다. <보이지 않는 세계들>의 책을 읽어보자는 하나의 집념을 가진 사람들과 지역을 고르고 책을 추렸다. 서로를 발등에 떨어진 불 삼아 2주에 한 권씩의 책을 읽으며 일요일 아침에 모여 책 이야기를 했다. 아시아 문학을 시작으로 중남미 문학을 읽고, 작년에는 중동을 읽었다.


올해는 아프리카 문학을 읽어보려 한다. 어김없이 열음님과 이런저런 독서가들의 서재와 서점을 뒤져 책 목록을 만들어냈다. 읽어보지 않은 책들 중에서 '읽어봄직한' 책을 골라내는 일은 우스운 일이다. 특히나 읽어낸 이가 적은 책들은 빈약한 소개글에 기반한 어슴푸레한 인상, 동물적 감각에 의존해 읽을지 말지를 결정해야 한다. 언제나처럼 책 선정에 대한 확신은 없다. 다만 같이 읽을 사람들에 가만히 기댈 볼뿐이다.


그리하여 (열음님이) 만들어낸 책과 일정들.

KakaoTalk_20250828_183720529.jpg Copyright ⓒ - 이열음


이번 책들의 키워드들.

#독재 #신식민주의 #민중 #가부장제 #여성주의 #정체성 #인간과짐승 #역사와설화 #풍자 #반란군 #수탈 #아파르트헤이트 #인간다움 #폭력 #속죄


열음님, 대욱님과 종로의 두부집에서 순두부를 호록이며 모임에 대해 이야기했다. 신기하게도 이번에는 당장의 아프리카 세션보다 이 세션 이후의 이야기를 더 많이 나누었다. 눈앞의 날들보다 더 훗날에 해내고 싶은 프로젝트들에 대해 떠들다가 문득 우리가 이 모임에 가진 애정이 얼마나 듬뿍인지 느꼈다.


몇 년간 모임을 이어오다보니 같이 읽고자 하는 사람들이 꽤 되었다. 아쉽지만 별도의 멤버 모집은 생략하게 되었다. 어느 때보다 얌전히, 모임을 시작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언어적 고립감과 노스탤지어, 「프랑스어의 실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