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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무모한 돌파구

by 소소라온

남편과 더 이상 깊은 감정을 나누지 않기로 했을 때,

나는 무너지는 대신 잠잠해졌다.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도 없어.

그렇게 다독이며,

더 이상 모욕당할 꺼리들을 만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관계를 당장 끝낼 수 있었던 건 아니었다.
끝이라는 단어는 늘 막막했고,
모든 걸 놓아버리기엔 아직 내가 해보지 않은 것들이 남아 있었다.

그중 하나가, ‘가족을 만들어보는 것’이었다.


동반자라는 느낌은 없었지만,

그래도 그는 성실했고,

내버려두면 해를 끼치는 사람은 아니라고

애써 되뇌었다.

상처는 깊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나을지도 모른다고,

무뎌지기도 하는 게 마음이라고,

스스로를 도닥였다.


아마도,

내가 붙잡고 싶었던 마지막 희망이

‘아이’였던 것 같다.

내 안의 허전함을 채울 존재.
내가 사랑을 줄 수 있고,

또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존재.
그 아이가 있다면,

내 삶이 덜 공허하고, 덜 외롭지 않을까.
아이가 생기면 달라지기도 한다는데...

그와의 관계 역시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지금 와서 돌아보면,

참 아프고도, 무모한 희망이었다.


그렇게 나는 임신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미 결혼한 지 3년 지난 시점이었다.

난임 전문 병원을 찾았고,

몇 가지 검사를 거쳐.

약물치료가 필요하다는 설명을 들었다.
치료는 배란유도제로 시작되었고,

운이 좋게도 시도한 지 오래지 않아

임신에 성공했다.


임신을 확인했을 때,

나는 우선은 그저 기뻤다.


무너진 마음 위로 새살이 돋는 듯한 기분이었다.
두 달쯤 뒤, 초음파를 보러 갔던 날,
의사는 조심스레 말했다.


“심장 소리가... 두 개 들리네요.”


쌍둥이였다.

다태아 가능성에 대한 설명은 들었지만,

설마 정말 내게 그런 일이 일어날 줄은 몰랐다.
원래도 아이들을 좋아하던 나에게,

한 번에 두 생명이 찾아온 것은

믿기 어려운 축복이었다.

내가 품은 이 생명들이 무사히 자라,

언젠가 내 품에 안기게 될 거라는 사실이,

그때는 정말 기적처럼 느껴졌다.


그때 나는 서른셋이었다.

요즘 같으면 늦은 나이도 아니었지만,

내게는 이미 조금은 조심스러운 시기처럼 느껴졌다.

체구도 작아 유산 위험에 대한 고지도 받았고,

입덧이 심해지자 직장은 휴직을 결정했다.


입덧은 견디기 힘들었지만,

모든 고통이 기꺼웠다.


어렵게 얻은 아기들이 너무 소중했고,
그 아이들을 만나기 위한 고통이라면,

어떤 것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임신 오육 개월쯤 지나자 배가 급격히 불러왔다.
누워서 자는 것도 점점 힘들어졌지만,

불쑥불쑥 느껴지는 발길질과 손길질 하나하나가

나를 매일 웃게 했다.


그 시절,

남편과의 관계는 상대적으로 평온했던 것 같다.
감정을 기대하지 않으면,

일상은 충돌 없이 흘렀다.


병원 진료에는 대부분 동행했고,

내가 먹고 싶은 것이 있다 말하면

주저하지 않고 함께해 주었다.

그는 여전히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나는 그런 그의 방식에

더이상 상처받지 않기로 했다.

대신, 갈등을 피하는 법을 익혔다.
그의 무심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나 자신을 조용히 보호했다.


무엇보다도,

아기들에게 흔들리는 나를 보이고 싶지 않았다.
남편과 싸우고, 울고, 무너지는 나를

이 작은 생명들이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다.


감정은 분명 태아에게도 전해질 거라 믿었기에,
나는 애써 평온한 얼굴을 하고,

내 안에서 조용히 단단해졌다.


그 평온을 유지하는 방법은 단순했다.


내 기쁨과 슬픔을 나누지 않는 것이었다.

아니, 공유하더라도 그의 반응에

더는 상처받지 않기로 마음먹는 것.

감정을 나누지 않으면, 충돌도 없었다.
피상적인 대화 위에 조용한 일상을 얹으면,

갈등을 피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두 아이를 품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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