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개월을 만삭으로 치는 쌍둥이 임신은,
36주 만에 제왕절개로 출산이 이루어졌다.
딸이 2.5킬로, 아들이 2.4킬로. 순서대로 나왔고,
얼마나 얼마나 예쁘던지.
신생아실의 다른 아기들보다 한 주먹은 더 작았지만,
그래서인지 더 애틋하고, 더 귀하게 느껴졌다.
무탈하게, 아무 이상 없이 건강하게 태어나준 두 아이가
그저 기특하고, 대견하기만 했다.
그리고 그만큼 잘 키워내고 출산해 낸 나 자신도
스스로에게는 참 기특하고 대견하게 느껴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순간 어쩌면 남편에게 그 말을 듣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정말 고생했어.”
“기특하고, 대견해.”
남편에 대한 모든 감정적 기대를 이미 다 접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던가 보다.
남편도 아이들을 좋아했다.
분명히 기뻐했던 것 같다.
하지만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사람답게,
아기들을 들여다보며 혼자 웃는 표정을 보며
그저 ‘기쁜가 보구나’ 하고 헤아릴 수 있을 뿐이었다.
출산이라는 중요한 경험 속에서
내가 느낀 기쁨과 감동을
남편과 함께 나누지 못했다는 사실은,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기쁨과 감동을 공유하지 못한 채,
각자의 방식으로 그 순간을 지나갔다는 점이
이후 관계 전반에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친정 근처 산후조리원에서 2주간의 조리를 마친 뒤,
쌍둥이 신생아를 데리고 집으로 내려왔다.
도움을 줄 가족이 없는 상황에서,
약 두 달간 산후도우미의 도움을 받으며 육아를 시작했다.
그 기간 동안에는 산후도우미가 있어
비교적 안정적으로 신생아들을 돌볼 수 있었다.
두 아기에게 모유 수유를 하겠다는 의지가 있었지만,
모유의 양이 충분하지 않아
이삼주 뒤부터는 자연스럽게 분유를 병행하게 되었다.
두 아이는 번갈아 깨어 배고픔을 호소했고,
낮에는 산후도우미의 지원으로 수월했지만,
밤에는 혼자서 두 아이의 수유 시간을 맞추기 위해
꼬박 밤을 새우는 날이 많았다.
남편도 그 시기에는 최선을 다해 육아에 동참했다.
산후도우미가 퇴근한 저녁 이후 시간에는
적극적으로 아이들을 돌보며 함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숙한 두 부모가 두 명의 신생아를
돌보는 일은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나는 아이들을 키우고 있었지만,
나 자신을 돌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 시절엔 몰랐다.
그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