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만남 이후 H와 룸메이트는 지금까지는 서로 많은 말을 섞지 않았다. 서로 성격이 맞지 않았다기보다는 다른 이유들이 많았다.
우선 H와 룸메이트는 서로를 의식하고 있었다. H는 감정적으로 아쉬운 이야기는 아끼고 있었다. 당당함만큼이나 측은한 구석이 있었고 그리고 그런 약한 구석을 숨기는 게 H에게도 보였다.
또 두 사람은 각자 활동하는 시간대가 달랐다. H는 코치가 지시하는 대로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룸메이트는 규칙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H는 이런 룸메이트를 100% 이해할 수는 없었다. 아니, 그보다도 이런 룸메이트를 수용하는 선수촌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부러웠다. 신분이나 본분에 얽매이지 않는 삶의 방식은 다시 태어나도 H의 것은 아닌 것 같았다.
H는 잠시 경기 생각을 하다가 잠에 빠졌다. 잠든 지 얼마나 지났을까... 비염 때문인지, H는 숨 쉬는 게 답답해지자 반쯤은 잠이 든 상태에서 방안의 인기척을 느꼈다. 새벽 몇 시쯤 인지도 보이지 않았지만, 커튼 사이로 새어 나온 달빛에 잠시 드러난 룸메이트 정강이 쪽 세 겹의 삼각형 문양의 문신이 드러났다.
그렇지만 H는 티를 내지 않으려고 했다. 그리고는 요즘 들어 종종 잠에서 깨는 이유가 비염 때문만은 아니었던 거 같아 살짝 짜증이 났다.
'제발.. 조옴..'
다음날, 그 다음날도 룸메이트는 항상 그 시간대에 일어나 망설임 없이 옷을 챙겨 방을 나설 때마다 H는 느낄 수 있었다. H도 이제는 숙면을 위한 작은 바람 차원에서 탈피해 이제는 룸메이트가 매일 꼭두새벽에 일어나 무엇을 하러 가는지가 궁금해졌다. 그래도 H는 룸메이트를 따라나서는 것은 조금도 염두하지 않고 있었다. H는 다음날 경기를 위해서 평소 수면을 적잖게 챙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