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자동차를 다뤘던 영화 중에 전기차를 소재로 한 영화를 찾는 건 쉬운 편은 아니었다. 전기차라고 해서 내연기관 차량들에는 없는 첨단 사양이 배타적으로 적용가능한 것도 아니라서 영화의 소재로 활용하기에는 영화적 효과가 그리 크지는 않아서일까?
이번에 다뤄볼 영화로 '업그레이드'를 골랐지만 역시나 영화의 전개를 위해 활용된 소재는 자율주행 전기차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 그레이가 아무리 시대는 변해도 내연기관 차량의 수요가 있을 것이라는 기억에 남는 대사가 있어 전기차를 위한 영화로 '업그레이드'를 다루게 됐다. 더욱 재밌던 건 미래에도 내연기관을 즐기는 일부 부유층 때문에 여전히 장사가 된다는 인사이트였다.
※ 영화를 안 보신 분들을 위해 이하 영화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되어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그레이는 최첨단 기술로 가득한 자동차 생태계에서 부유층을 위해서 내연기관 차량을 튜닝하거나 정비를 하는 메카닉으로 그려진다. 그런 그가 - 영화적 의도였는지 알 수는 없지만 - 최신 자율주행 전기차를 타고 이동하다가 불의의 사고로 중추신경 부상을 당해 결국 인공신경망에 의존해 살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피상적으로 보자면 아마도 전기차, 자율주행 등 신기술에 대해 안티 시각을 가진 제작진의 은유적 표현으로 지어낸 결말 같아 보인다.
그렇지만 영화 전체를 꿰뚫고 있는 신기술 및 미래 자동차에 대한 분석 및 전망은 여전히 돋보인다. 영화에서 그려진 미래를 뒷받침이라도 하듯 시장분석 전문기관인 블룸버그 에너지는 '40년이 되어도 내연기관이 차지하는 비중이 50%이나 차지해서 연료전지 포함 전기차와 내연기관 차량이 양분할 것이라고 전망했고, KPMG가 전세계 임원들에게 조사한 리포트에 따르면 미래에 대세가 될 차종이 어느 것이냐는 질문에는 답변이 갈려서 어느 하나에도 치우치지 않았다고 한다.
전기차냐 내연차냐, 소비자 선호도로 따진다면 둘 중 어느 하나가 먼 미래에 대세가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웬만한 전기차라면 수퍼카에 뒤지지 않는 짜릿한 -흔히 제로백이라고 하는- 가속 성능, 그리고 반전 있는 정숙성에 한 표를 던질 수도 있지만, 영화 업그레이드에서 부유층 호사가들이 말하는 것처럼 엔진의 진동과 관성에 대한 향수로 기존 내연기관 차량에 한 표를 던질 수도 있다는 것도 개인 취향의 문제인 것 같다. 반면, 전기차 배터리 기술의 한계로 인한 충전이나 주행거리 문제 등은 아직까지 해결이 필요한 전기차만의 숙제로 남아있다.
테슬라 모델 X vs. 포르쉐 아벤타도르 Drag race
그렇지만 아마 영화에서처럼 먼 미래에는 내연차량이 지금처럼 자유로운 운행이 허락되지 않아서 정말 부유층만 누리는 취미가 될 수도 있다. 바로 내연차량에 대한 국가별 규제 이야기인데, 거짓말 같겠지만 이미 현실에서도 조짐이 보이고 있는데, 런던시만 해도 전기차를 제외한 모든 차량에 8파운드의 혼잡통행료를 징수하고 주차료도 부과한다. 노르웨이 같은 경우는 한술 더 떠서 '25년에 내연차량의 전면적인 판매금지를 선언했다.
할리우드가 먼 미래를 배경으로 내연차량이 무정부주의를 상징하는 저항의 수단이 되는 SF영화를 제작해도 흥미로울 것 같다. 어마어마한 세금을 피하기 위해 고출력 가솔린 엔진을 암암리에 개조하고 거래하며, 내연차량 운행금지 구역임에도 과태료를 무시하며 폭주하는 반달리즘은 충분히 개연성 있는 소재가 될 것 같다. 미래 사회, 각국 정부의 정책에는 더 이상 내연차량에 대한 자비는 없는 것일까?
정부의 태도를 이렇게 바꾼 건 자동차 회사의 잘못도 컸다고 한다. 이미 환경 규제가 강화된 시점이었지만 해외 및 국내에서 배출가스 시험을 소프트웨어 기술로 조작했던 폭스바겐의 디젤 게이트 이후 각국 정부는 자동차 제조사들을 신뢰하지 못했고 내연차량에 대한 환경규제를 강화하는 한편, 친환경차 위주로 산업구조를 개편하는 추세가 됐다. 결국 전기차로의 전환은 어찌 보면 자업자득이기 때문에 자동차 회사들 입장에서는 대세를 따르는 게 도리 같다.
배출가스 조작사건 참조 이미지
자동차 업계도 그걸 아는 듯 저마다 전기차로의 전면적 전환을 선언하고 나섰다. 또 전기차 시장 블루칩으로 떠오른 테슬라를 견제하는 내연차량의 강자들인 벤츠, BMW, 폭스바겐 등은 한술 더 떠서 제조사별 전기차 라인업 확대를 통한 전면전을 선포했다. 그렇지만 전기차는 엔진과는 달리 Input-Output이 단순한 모터로 움직이는 차종이라 기존의 차별화 경쟁력이었던 주행감, 역동성, 정숙성, 연비 등이 전기차 시대에 차별화 요소로 이어지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왜냐하면 내연차량 시대의 차별화 경쟁력들은 전기차 시대로 넘어가면서 주행거리, 충전속도, 순간출력, 전비 등에게 우선순위를 내주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 눈치챘을 수도 있겠지만, 위의 새로운 차별적 경쟁력들은 대부분 배터리 기술과 관련된 요소들이라 전기차 시대에 자동차 제조사들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해야 한다. 단순히 생각해보면 석유로 움직이던 기계가 전기로 움직이게 되는 것뿐이지만, 경쟁구도가 완전히 달라지는 국면은 자동차 제조사들에게뿐만 아니라 사용자들에게도 위화감을 주곤 한다.
인공신경망을 포함한 첨단미래 기술이 영화 업그레이드에서 안전하지 못한 어떤 것으로 표현되는 그 이면에는 기술적 불안정성뿐만 아니라 이러한 생소함과 위화감이 숨겨져 있다. 자동차도 마찬가지로 익숙한 브랜드와 모델이 아닌 새로운 전기차들의 등장과 시장확대는 기존의 익숙함에서 멀어져 불안하게 하고 기존 내연차량에 대한 향수를 일으켜 돌아가게 만들지도 모른다. 특히나 이제까지 글로벌 자동차 산업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었던 유럽이나 북미에서는 상대적으로 더 불안을 느낄지 모르겠다.
위에 언급한 것처럼 전기차 시대의 차별화 경쟁력은 배터리 기술이 중심이라 세계적인 배터리 기술을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테슬라 배터리 기술인 파나소닉의 일본, 물량 공세로 급성장하는 중국 등 동아시아에게 전기차는 위기라기보다는 기회다. 세계 자동차 시장이 전기차로 개편된다면 그 주도권을 유럽과 북미로부터 가져올 수 있다. 중국은 이러한 패러다임의 이동을 미리 예견하고 자국 내에서 전기차 주도 시장을 성장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중국이 전기차 성장 정책으로 노리는 자동차 산업의 패권은 쉽게 넘어오지 않을텐데, 그 이유는 정말 긍정적으로 예측한 추세인데도 지금부터 20년 뒤인 '40년에야 전기차 비중이 50%라면 전기차가 세계를 지배할 수 없다라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전기차에 대한 안티 시각을 가진 제작진과 달리 비록 필자가 전기차에 긍정적인 전망을 가지고 있지만, 영화에서처럼 그 누군가는 전기차와는 다른 내연기관의 감성을 바랄테고, 또 그 누군가는 그에 대해 돈을 지불할 것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영화 업그레이드는 그렇기때문에 미래를 소름끼치게 예견했다는 면에도 또 다른 측면의 명작이 아닐까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