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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예술은 사라지지 않는다> 리뷰

by 유연한프로젝트

한때 예술은 예술가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아니면 부자들을 위한 취미 생활의 한 부분이라고 오해했던 적도 있다. 그러나 예술은 자신의 감정이나 사상을 미적 형태로 표현하고 전달하는 인간의 활동이며, 특별한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닌 일과 삶을 꾸려나가는 일반적인 우리를 위한 것이라는 것을 최근에 깨닫게 되었다.


초등학생 때 이후로 그림을 그려 본 적이 없는 나는 조카 소율이가 태어난 후 소율이와 함께 색연필로 그림 그리는 시간이 참 좋아졌다. 여전히 색감도 없고 표현력도 부족하지만, 그래서 고작 내가 그리는 그림은 나무, 꽃, 하늘이 전부지만 내가 생각하는 나무, 꽃, 하늘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 자체가 너무나 재미있는 경험이다. 나의 예술적인 감각이 깨어나는 시간이라고 해야하나.


미술관, 박물관 같이 탁트인 넓은 공간 자체를 좋아하다가, 점차 전시를 찾아가서 보고, 도슨트 해설을 들으며 자연스럽게 예술에 대한 관심이 깊어지기 시작했다. 낯선 도시로 떠나기 전 여행 에세이나 여행 블로그를 찾아보는 것처럼 예술을 좀 더 알고 싶어서 예술 분야 책들을 찾아 보기 시작했다.


그 시작 즈음에 읽었던 책이 윤혜정 작가의 <나의 사적인 예술가들>이다. <필름2.0>과 <보그> 에디터로 활동했던 작가의 글은 참 쉽고 친절하게 이 시대의 예술가를 소개한다. 지금은 국제갤러리 이사로 재직하며 다양한 매체에서 강연을 하고 있는 작가의 책에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낯선 예술가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예술 거장‘의 내면세계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고 유명한 디자이너, 소설가, 음악가, 그리고 영화감독과 배우 등과 나눈 이야기는 내가 생각하던 예술의 범위를 훨씬 넓게 만들어줬다.

이번 책 <어떤 예술은 사라지지 않는다>에서는 ’장소성‘과 ’시간성‘이 혼재되어 좀 더 깊이있는 작가의 예술과 예술계에 대한 고찰이 드러난다.


지난해 서울국제건축영화제에서 ’화양연화를 위하여: M+ 그리고 홍콩‘ 게스트 토크 시간 인상 깊었던 발표를 들었던 정다영 큐레이터님이 2025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총감독을 맡았다는 소식에, 1895년 시작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비엔날레인 베니스 비엔날레에 나는 이제서야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얼마 전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조스가 760억원을 들여 초호화 결혼식을 올릴 정도로 아름다운 도시 베니스를 비엔날레가 열리는 기간에 꼭 한 번 가보고 싶어졌다.


아직은 어렵게만 느껴지는 현대미술은 정보와 경험, 안목과 실천력이 곧 능력이라고 한다. 따라서 어떤 전시를 보는 것과 보지 않는 것은 천지차라고. 절망의 시대일수록 예술은 할 말이 많아진다고 한다. 현대의 예술은 세상을 가늠하는 바로미터이자 해독제 역할을 요구받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베니스에서는 현재 가장 중요하거나 시급하다고 공인된 담론들이 들끓으며 그 강렬한 예술적 열기는 베니스에서만 체험할 수 있다고 하니 베니스 비엔날레가 더욱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얼마 전 <K-POP 원론> 북토크에서 노마 히데키 작가가 추천한 이우환의 예술론이 펼쳐진 ’양의의 표현‘을 아직 읽지 못했는데, 반갑게도 이 책 한 챕터를 이우환 작가 이야기가 차지하고 있다. 무려 ’고흐가 사랑한 도시‘ 프랑스 남부 도시 아를에 이우환 미술관이 있다고 한다. 아를에서 고흐의 ’노란 카페‘에 가지 않아도 될 만큼 이우환의 작품들로 충분하다는 작가의 말이 호기심을 자아낸다.


제목이 의미하는 ’사라지지 않는 예술‘은 언젠가 머물렀던 시공간, 환호하거나 절망스러웠거나 뭉클했던 우리 자신의 숱한 순간을 의미하기도 한다. 일상에서 예술을 놓지 않으려는 삶을 살면 우리 삶도 좀 더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예술을 경험한다는 것은 그 시간을 기억하면서 삶의 흐름을 나의 방식대로, 속도대로 돌려놓겠다는 의지라는 작가의 말이 가슴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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