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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ire Oct 22. 2021

다시 수험생이 되었다.


 내 나이 서른 여섯, 다시 수험생이 되었다. 디데이는 2021년 11월 24일 수요일. 시험의 이름은 RAD 발레 국제시험. 맞다. 발레에 진심인 내가 고민 끝에 발레로 시험까지 보게 되었다. 초급반 클래스 순서가 몸에 익으면서 일주일에 한번 정도 더 발레 클래스를 듣고 싶어졌다. 평일에 하는 작품반 클래스를 들어볼까 생각하던 중이었다. 초급반을 오래 듣긴 했어도, 어려운 프로그램은 잘 못 따라가는데 작품 반이 가당키나 한가 고민하던 중에 학원에서 RAD 시험반을 모집한다는 문자를 받았다. 클래스 시간이나 요일도 딱 좋은 시간이었다. 운명처럼 그렇게 RAD 시험을 만났다. 


 RAD는 영국 왕립발레 아카데미(Royal Academy of Dance)로 영국 왕실에서 인정한 비영리 발레 단체다. 올바른 무용 교육 및 훈련을 위한 사업들을 하는 단체로, 발레 교사를 양성해내는 프로그램 및 시험을 개발하기도 하며, 발레 전공자 혹은 발레 수강생들을 위해 매년 국제적인 발레시험을 실시한다. 어떻게 시험을 보는지 궁금한 분들을 위해 잠시 설명해 보자면, 시험은 RAD에서 정한 등급에 따라 발레의 다양한 동작을 습득한 뒤에 파견 시험 감독관 선생님 앞에서 동작들을 시연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바 워크 동작 5가지, 센터 워크 동작 9가지, 댄스 프로그램 2~3가지로 생각보다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여러 나라에서 동시에 치러는 시험이기 때문에 동작에 짜인 순서를 꼭 지켜야 하고, 시험 응시에 필요한 복장까지 준비해야 한다. 아직 우리 나라에서는 그리 유명하지 않은 것 같다. 시험을 준비하기 이전에 앞서 검색을 해봤는데, 검색결과가 다양하지 않았다. 발레 학원에서 홍보를 위해 올려둔 포스팅 몇 개가 전부였을 뿐이었다. 


 당연하지만 ‘시험’이기 때문에 점수가 나오고, 합격/불합격 여부가 결정된다. 순서를 제대로 숙지하면서 정확한 동작을 구현해야 하기 때문에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지난 5월부터 나 이외에 2명의 수강생, 총 3명이 함께 시험 준비 클래스를 듣기 시작했고 우리는 매주 2번씩 초겨울의 발레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발레'시험'을 준비하면서 이제까지 몰랐던 발레의 세계에 초대된 듯한 느낌이 든다. 


 요즘처럼 삶에 생기가 도는 것도 참 오랜만이다. 엄마로서의 삶을 시작하면서 인생의 큰 이벤트는 거의 아이 위주였는데, 오랜만에 내가 중심이 되는 이벤트가 생기는 것이 이렇게나 반가울 수가 없다. 누군가의 엄마가 아닌 나 자신으로 다시 세상에 한발 내딛는 기분이다. 거창하지만 지금은 그렇다. 시험 날짜가 정해진 날, 식탁에 놓여진 달력에 가장 눈에 띄는 색연필로 큰 별표를 그려 넣었다. '이 날이 나의 디데이야'하고 마음 속에도 새겨넣었다. 여전히 엄마로서의 생활은 바쁘게 돌아가고 있지만, 일주일에 몇 시간 만큼은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주어진 것이 감사하다. ‘시험’이라는 것이 억지로 통과해야 하는 어려운 관문이라고만 느껴졌던 지난 시절과는 달리 나의 노력이 누군가에게 보여진다는 것, 그리고 그에 대한 평가가 매겨진다는 것이 이렇게 기분 좋은 일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점수의 높고 낮음이나 시험 통과의 여부를 떠나 오랜만에 몰두할 수 있는 대상이 생겼다는 것 자체가 감사하다.


 이 관문을 통과하면 실력도 성장해있겠지. 이번 겨울이 지나고 내년 봄에는 꿈에 그리던 토슈즈를 신고 중급 클래스로 올라갈 수 있을지 기대해본다.  한 단계 너머를 도전한다는 것이 학업성취향상에 이렇게 도움이 될 수 있다. 일단은 눈앞에 놓인 이 기분 좋은 테스트를 즐겁게 즐기는 것부터 시작하자. 다시 녹화된 영상을 틀고 순서를 외우기 시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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