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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만들어내는 가치를 헐값에 팔지 맙시다

by 세일즈해커 럭키

1. 작년에 이어 KAIST IMBA 셰르파 프로그램의 B2B영업 멘토로 활동하고 있다. 다음은 지난 일요일에 한 창업 기업과의 멘토링 일화다. 편의상 Y사로 표기한다.

2. Y사는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의 주거문제 해결을 돕는 회사다.
-지난 2024년 말 법무부 통계 기준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약 260만명이며, 한국어가 낯선 이들에게 공인중개사를 통해 부동산 계약을 진행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일 터.
-Y사는 광고 대행, 통역 등의 역할을 수행하며 부동산과 체류 외국인 사이의 문제를 해결한다.

3. 문제는 수익모델이다.
-Y사에게 수익이 발생하는 시점은 공인중개사가 체류외국인을 만나 집을 보여주고 계약을 체결했을 때 발생한다.
-수수료는 건 당 20만원 수준. 이게 왜 문제란 말인가? 실상을 들여다보면 이렇다.

4. 첫번째 문제: 계약의 과정에 관여하지 못한다.
-Y사의 역할은 광고, 통역을 통해 공인중개사 사장님 앞에 체류외국인을 데려오는 것까지이다.
-집을 보여주는 시점부터 계약서에 서명하는 과정까지 Y사는 일절 관여하지 못한다.
-기껏 손님을 모셔와도 공인중개사가 제대로 세일즈를 하지 못하면, 광고비고 통역 품이고 모두 공중에 날아가는 셈이다. 즉, 비용 회수를 못한다.

5. 두번째 문제: 영업생산성이 떨어진다.
-영업생산성 공식은 다음과 같다: [# x $ x % / L = 영업기회의 수 x 영업기회의 가치 x 전환율 / 리드타임].
-본 공식에 빗대어 현재 수익모델을 분석해보면, 영업기회의 수는 광고비에 비례하여 만들어낼 수 있지만 계약 전환율을 통제할 수 없고(세일즈는 Y사가 아닌 공인중개사가 한다), 계약 건 당 얻는 수수료가 최대 20만원인 것에 비해 리드타임이 2개월이 넘어갈 정도로 길다.
-긴 리드타임은 영업이 만들어내는 모든 가치를 집어삼키는 괴물같은 존재다. 20만원 수준의 Deal value라면 아무리 길어도 1-2주내로 <붕어빵 찍어내듯이> 매출을 만들어야 화사가 생존할 수 있다. 초기 창업팀이 조금이나마 시행착오를 덜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다음과 같이 조언했다.

6. "대표님, 우리가 만들어내는 가치를 헐값에 팔지 맙시다"

1️⃣ 만약, 공인중개사 앞에 체류외국인을 데려다 앉혀주는 것만으로도 돈을 벌 수 있다면 어떨까요? 이렇게 생각해보죠. 공인중개사 분들은 '오늘은 왜 이렇게 손님이 없나' 먼 산만 바라보고 있었는데 대표님 덕분에 하늘에서 뚝 영업기회가 떨어진 셈입니다. 옆 공인중개사무소는 파리만 날리고 있는데 대표님 덕분에 새로 계약을 만들어낼 수 있는 '미팅 기회'를 얻게 된거죠.

2️⃣여기부터 시작해보는 겁니다. Y사도 회사고, 공인중개사무소도 어엿한 회사니 B2B거래라 할 수 있죠. B2B에서 '고객 DB'의 개 당 가치는 B2C보다 큽니다. 일례로, B2B에서는 고급 DB(리드) 하나 당 100만원이 넘는 가격에 거래되기도 해요. 우리는 그 DB를 파는 겁니다. 그것도 "빨리 집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시급성까지 갖춘 체류 외국인이라는 고급 DB를요. 우리가 만들어내는 가치를 헐값에 팔아서는 안되요. 우리는 분명 가치를 만들어내고 있고, 가치를 만들어내는 그 시점부터 돈을 벌어야 합니다.

3️⃣만약 이런 조건으로 공인중개사무소와 계약을 맺을 수 있다면, 우리는 영업생산성을 극도로 향상시킬 수 있게 됩니다. 그들의 계약 성사여부가 중요하지 않으니 리드타임은 아주 짧아질 것이고, 많은 수의 영업 기회를 높은 전환율로 만들 수 있겠죠. 유일한 Trade-off는 수수료일겁니다. 예전처럼 20만원을 받긴 어렵겠죠. 그러나 적게는 5만원 ~ 많게는 10만원까지 받을 수 있다면? 기존과 완벽하게 다른 게임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만약 처음부터 이 수익모델을 만들 수 없다면, 처음에는 기존 거래조건으로 진행하다가 신뢰가 쌓인 특정 시점에 다시 거래조건을 제안해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4️⃣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조언은 바둑의 훈수같은 겁니다. 훈수이기에 잘 보이는 것도 있지만, 달리 말하면 <훈수에 불과한 것>이기도 합니다. 훈수에 귀를 열되, 직접 고객을 만나 알게된 사실을 대표님 직접 판단하고 결정해야 합니다. 결국 회사라는 배의 선장은 대표님이고, 키를 쥐고 있는 사람도 대표님이니까요.

7. 만들어내는 가치를 헐값에 파는 경우가 비단 Y사 대표님뿐일까.
-급여를 받는 개인부터 심지어 상장사까지, 만들어내는 가치 대비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에 값어치가 매겨지는 경우를 수도 없이 많이 보게되는 요즘이다.
-그 불합리의 사슬을 끊어내는 첫 번째 행동은 '실제로는 가치가 발생하고 있었지만, 미처 인지하고 있지 못헀던 부분을 발견하는 것'부터이다.
-우리는 분명, 어느 부분에선가 가치를 만들어내고 있다.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가치를 결코 저평가하지 말길. 가치 인식의 주체는 나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잊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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