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경주에서 열릴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조심스레 흘러나오는 이야기 중 하나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참석 가능성입니다. 현실적으로는 제도적·외교적 장벽이 높지만, 외교 무대에서 “불가능한 초청은 없다, 다만 그 대가가 무엇인가가 문제일 뿐”이라는 말이 있듯, 국제정치의 상상력을 열어두고 시나리오를 그려볼 필요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북한은 APEC 회원국이 아니기 때문에 정식 참석은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방법은 ‘특별 게스트’나 ‘옵서버’ 형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는 미국, 일본, 호주 등 기존 회원국의 반발이 따라붙습니다. 특히 미국의 태도가 결정적입니다. 워싱턴이 북한의 국제 정상 무대 등장을 ‘정상국가화’로 해석해 꺼릴 가능성이 크지만, 역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재선용 이벤트로 활용하려 든다면 판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중국 역시 변수가 됩니다. 베이징은 북한을 국제무대에 세움으로써 워싱턴과의 협상 지렛대로 삼을 수 있습니다. 한국이 의장국으로서 이를 중재한다면, 북한은 ‘경제 협력 파트너’라는 간판 아래 무대에 서는 그림을 연출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는 군사나 핵 문제가 아닌, 디지털 격차 해소, 보건, 식량, 기후 변화 같은 저위험 의제를 전면에 내세울 때 가능성이 열립니다.
또 다른 가능성은 사이드라인 이벤트입니다. 즉, 본 회의가 아니라 ‘한반도 특별세션’ 같은 별도 프로그램을 마련해 남·북·미·중이 함께 머리를 맞대는 방식입니다. 이렇게 하면 북한의 등장은 상징적이되, 공식 정상회의의 성격은 흐리지 않는 절충점이 될 수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김 위원장을 불러내어 “역사적 장면”을 연출하는 빅 이벤트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시나리오에는 항상 양날의 검이 존재합니다. 북한의 참석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돌파구가 될 수도 있지만, 동시에 APEC 의제가 북핵 문제로 빨려 들어가면서 원래 논의해야 할 경제협력이 뒷전으로 밀릴 위험도 있습니다.
결국 김정은 위원장의 참석 여부는 한국이 미·중·북을 동시에 설득할 수 있는 외교적 레버리지를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한 인물의 참석 문제가 아니라, 한국이 아시아·태평양 질서 속에서 어떤 균형점을 잡아내느냐의 시험대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