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정국이 다시 한 번 혼란에 빠졌습니다. 사퇴했던 총리가 며칠 만에 재임명되고, 대통령은 “안정을 위한 결정”이라 설명하지만 국민의 반응은 싸늘합니다. 이 장면은 단지 한 나라의 정치 해프닝이 아닙니다. 오늘날 유럽 전반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한 징후, 바로 ‘절차의 피로(Fatigue of Procedure)’라는 깊은 병의 일면입니다.
절차의 피로란, 민주주의의 형식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그 절차가 더 이상 결정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상태를 뜻합니다. 의회는 열리고 표결은 진행되지만, 실질적인 합의는 사라졌습니다. 정당은 타협보다는 생존을, 정치인은 책임보다는 안전을 선택합니다. 그 결과 국가는 결정을 미루는 기계가 되고, 시민들은 그 피로한 움직임을 지켜보며 정치로부터 멀어집니다.
오늘의 유럽은 바로 이 피로 속에서 흔들리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마크롱 정부는 더 이상 개혁의 에너지를 내지 못한 채, 체제의 균열을 늦추기 위한 ‘관리 정치’에 머물고 있습니다. 독일은 연정 내부의 조율이 예산 결정시한 보다 길어지고, 이탈리아와 네덜란드에서는 정부가 해마다 붕괴와 재구성을 반복합니다. 모두가 절차를 지키지만, 아무도 결정을 내리지 않습니다.
정치가 지쳐간다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피로는 분노보다 훨씬 느리게 체제를 마비시킵니다. 폭력이나 혁명이 아니라, 무기력과 반복이 민주주의를 침식합니다. 합의의 기술이 사라진 자리를 대신 채우는 것은 극단의 언어와 거리의 함성뿐입니다.
헨리 키신저는 “질서의 붕괴는 제도의 무너짐이 아니라, 제도가 더 이상 결정을 내릴 수 없을 때 시작된다”고 말했습니다. 지금 유럽은 바로 그 경계에 서 있습니다. 제도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결정을 내릴 힘을 잃었습니다. 정치가 ‘시간을 버는 기술’만으로 유지되는 한, 그 시간은 언젠가 체제의 소멸로 되돌아올 것입니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일은 절차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절차가 다시 결정을 낳을 수 있도록 숨을 불어넣는 일입니다. 유럽이 다시 합의의 정치를 회복할 수 있을지, 아니면 피로 속에서 새로운 극단으로 치달을지는 앞으로 10년의 운명을 가를 문제입니다.
오늘의 프랑스가 보여주는 장면은 그래서 한 나라의 위기가 아니라, 문명 전체의 피로를 비추는 거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