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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스리스(priceless)

by 최정식

2025년 10월 19일,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서 벌어진 보석 강탈 사건을 접한 세계 주요 외신들은 도난당한 보석들을 한결같이 “priceless”, 즉 “값으로 매길 수 없는” 보물이라 표현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단어가 단지 ‘매우 비싸다’는 의미를 넘어 역사와 인간의 기억이 응축된 서사적 가치를 담고 있다는 점입니다.


도난당한 보석들에는 제국의 서사가 깃들어 있습니다. 나폴레옹 1세의 황후 마리 루이즈에게 결혼 선물로 증정된 에메랄드 목걸이와 귀걸이, 루이 필리프의 왕비 마리 아멜리와 오르탕스 여왕이 착용했던 사파이어 세트, 그리고 제2제정기의 상징이었던 에우제니 황후의 다이아몬드 티아라와 브로치가 그들입니다. 이 보석들은 단지 금과 보석으로 만들어진 장신구가 아니라, 권력과 사랑, 시대의 미학, 그리고 인간의 욕망이 응축된 결정체였습니다.


언론이 “값으로 매길 수 없다”고 표현한 이유는 명확합니다. 이 보석들은 단순한 귀금속이 아니라, 시간이 응고된 예술품이기 때문입니다. 나폴레옹 제정의 영광, 왕정복고의 상징, 프랑스 문화의 자존심이 그 안에 빛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금전적 가치를 넘어선 ‘프라이스리스(priceless)’라는 말은 결국 그 속에 깃든 인간의 이야기와 기억의 깊이를 뜻하는 것입니다.


보석의 빛은 물리적 반사에서만 나오지 않습니다.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시선, 그 시선 속에 겹겹이 쌓인 기억이야말로 진정한 빛을 만듭니다. 그러므로 이번 사건은 단순히 예술품의 도난이 아니라, 우리 인류가 스스로의 과거를 비춰보던 하나의 거울 조각을 잃은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과연 ‘가치’란 무엇입니까? 우리가 ‘값으로 매길 수 없다’고 말할 때, 그 말 속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시간과 관계, 감정의 무게가 들어 있습니다. ‘프라이스리스’하다는 말은 결국, 인간이 세상과 맺는 관계의 밀도에 대한 고백이기도 합니다.


도난당한 보석들은 언젠가 회수될 수도, 영영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 보석을 통해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잃게 되었는가를 성찰하는 일일 것입니다. 진정한 ‘값으로 매길 수 없는 것’은 보석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빛을 바라보던 인간의 마음과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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