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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을 시간으로 바라본다는 것

by 최정식

세상은 보통 공간으로 이해됩니다. “어디에 있다”, “무엇을 소유한다”, “어떤 자리에 오른다”는 식으로 인간의 삶은 좌표 위에 고정되어 측정됩니다. 그러나 세계를 공간으로만 바라보면, 삶은 멈춰버립니다. 인간은 머물고, 사물은 굳어지고, 의미는 무색하게 됩니다.


그러나 세계를 시간의 관점에서 보면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같은 장소도 ‘지나가는 빛의 각도’와 ‘그 안에서 흐르는 사람들의 감정’에 따라 다른 얼굴을 드러냅니다. 시간은 공간을 단순한 배경에서 살아 있는 과정으로 바꾸어놓습니다. 즉, ‘공간을 시간 개념으로 만든다’는 말은 세상을 정지된 형태로 보지 않고, 흐름 속에서 새롭게 생성되는 세계로 인식한다는 뜻입니다.


이 변화의 핵심에는 ‘생성(生成, becoming)’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생성은 단순한 변화가 아닙니다. 그것은 존재가 시간 속에서 자신을 새롭게 만들어가는 살아 있는 운동입니다. 인간 역시 그 속에서 끊임없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나와 같지 않으며, 오늘의 나는 내일의 나로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 관점을 받아들이면, 삶의 불안은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옵니다. 자리를 지키지 못하는 불안이 아니라, 새로운 나로 되어가야 하는 시간의 호출로 느껴집니다. 머무는 것보다 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자각입니다. 공간의 세계에서는 “나는 여기에 있다”고 말하지만, 시간의 세계에서는 “나는 되어가고 있다”고 말합니다.


세상이 점점 불확실해지고, 기준이 사라진 시대일수록 이 시간적 사유가 필요합니다. 존재를 공간의 고정된 형태로 보려는 순간 우리는 이미 낡은 세계에 갇힙니다. 하지만 존재를 생성으로, 나 자신을 되어가는 존재로 이해한다면, 불안 속에서도 방향과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공간은 배치된 세계를 말하지만, 시간은 만들어가는 세계를 이야기합니다. ‘공간을 시간으로 만든다’는 것은, 결국 세상을 여정으로 다시 사는 법을 배우는 일입니다. 그때 비로소 삶은 좌표가 아니라 서사가 되고, 인간은 위치가 아니라 흐름 그 자체로 존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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