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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열음 Dec 10. 2022

폐허 속 까마귀 가면


     어째서 나는 늘 이런 식일까. 오늘 오후 4시에 면접을 보기로 했다. 면접 장소까지는 버스로 약 40분 정도가 걸린다. 지금 시간은 오후 3시 21분, 나는 이제 막 집을 나서려는 참이다. 지각 확정이었다. 면접에 지각이라니. 눈을 질끈 감고 택시를 불렀다. 택시비가 결제됐다는 알림이 들어왔다. 통장 잔고를 떠올리지 않으려고 애썼다.


     택시를 부른 지 5분도 되지 않아 택시가 도착했다. 나는 기사님께 인사하며 택시에 올라타 제일 먼저 4시 전에 도착할 수 있을지 물었다. 기사님은 차체에 부착된 핸드폰 화면을 가리키면서 그럼요, 하고 말했다. 화면 속 도착 예상 시간은 3시 51분이었다.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긴 한숨을 내쉬며 좌석에 몸을 묻었다. 긴장이 풀렸는지 피로감이 몰려왔다. 무거운 눈꺼풀을 들었다 놓으면서 창밖을 바라봤다. 익숙한 동네 풍경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잠깐 눈을 붙여도 괜찮을 것 같았다. 늦지 않게 도착한다고 했고, 지금 무척 졸리니까 - 합리화하면서 눈을 끔뻑이는데 차창으로 무언가 휙 지나갔다. 순간 눈이 번쩍 뜨이며 몰려오던 잠이 싹 달아났다. 등받이에 기댄 상체를 일으켜 차창으로 얼굴을 바싹 붙였다.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방금 창밖을 휙 지나간 것은 까마귀였다. 그것도 보통의 까마귀가 아니라 내가 타고 있는 택시를 덮고도 남을 만큼 아주 큰 까마귀였다.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문에 바싹 붙어 밖을 확인했는데 거대 까마귀는 보이지 않았다. 내가 잘못 봤다던가 이미 저만치 날아가 버렸다던가 경우의 수는 많았지만 이제 거대 까마귀는 문제가 되지 못했다. 헉. 내가 숨을 삼키는 동시에 택시가 멈췄다.


-기사님…길을 잘못 든 것 같은데요…


길을 잘못 든 정도가 아니었다. 폐허. 바깥은 폐허였다. 모든 건물이 무너져 그 잔해가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부서진 콘크리트 덩어리에서 철근이 비져나온 모양이 무시무시했다. 원형을 떠올리기 어려울 정도로 엉망이 된 잔해 사이를 빠르게 훑어봤다. 사람은 물론 까마귀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불과 1분 전만 해도 창밖으로 내가 잘 아는 우리 동네의 풍경이 지나가고 있었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에 머리가 느리게 굴러갔다. 엉망이 된 도시, 사람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삭막한 풍경. 마치 아포칼립스 영화 속에 들어온 것 같았다. 그러다 문득 앞좌석이 이상하리만치 조용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사님,


창에서 눈을 떼 앞좌석으로 고개를 돌렸을 땐, 아무도 없었다. 소용없다는 걸 알면서도 앞좌석과 내 옆자리까지 차 안을 샅샅이 훑었다. 도착 예상 시간을 알려주면서 운전하던 사람이 운전 도중에 사라졌을 리 없었다. 택시가 멈춘 이후에 문을 여닫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 말 그대로 증발이었다. 이곳에 혼자 남겨졌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손목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3시 43분이었다. 시간을 보자 오후 4시에 있을 면접이 생각났다. 동시에 허탈한 웃음이 샜다. 바깥이 폐허가 된 마당에 면접이 무슨 소용일까. 그렇다면 지금 당장 내가 가야 할 곳은 딱 하나였다. 집. 집으로 가자. 핸드폰을 켰다. 혹시나 하는 기대를 품고 전화를 걸어봤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인터넷도 되지 않아 지도를 볼 수도 없었다. 바깥의 사정이 많이 바뀌어서 지도를 띄운다고 한들 소용없었을 것이다. 핸드백에 핸드폰을 집어넣고 핸드백의 끈을 어깨에 둘러멨다. 손안의 끈을 세게 쥔 채 바깥을 바라봤다. 운전면허를 미리 따 뒀어야 했다고, 생각하면서 문을 열었다. 후읍, 후 - 공기가 나쁘지 않았다. 긴 숨을 내쉬면서 문을 닫았다. 먼 곳을 내다보며 방향을 가늠하는데 뒤에서 차 소리가 났다. 고개를 홱 돌려 돌아보니 택시가 혼자 출발하고 있었다.


-아니, 잠깐…!


택시는 내 손이 닿기 전에 부아앙 굉음을 내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순간 일어난 먼지바람에 입가를 가리고 콜록대다 몇 걸음 물러났다. 기침 때문에 고인 눈물을 닦아내며 앞을 바라봤을 때 택시는 이미 보이지 않았다. 운전석이 비어있는 것을 몇 번이고 확인했다. 그러니 빈 차가 혼자 달려 나간 거라고 봐야 했는데 이때쯤 나는 상황을 이해하길 포기했다. 집으로 가는 것을 생각하기에도 벅찼다.


     나는 우선 택시가 달려 나간 방향과 반대로 걸었다. 그리고 택시에서 봤던 풍경과 바닥에 널브러진 잔해 사이에 공통점을 찾으려고 애썼다. 표지판이나 간판을 찾는다면 가장 좋겠지만, 잘 보이지 않았다.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확신하지 못하는 채로 계속 걸었다.

한참 걷다 보니 눈에 익은 프랜차이즈의 간판이 보였다. 안타깝게도 가장 중요한 지점의 이름이 없었다. P지점이라고 적혀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아쉬워하며 걸음을 떼려다 이상한 느낌에 간판을 다시 살폈다. 간판은 부서진 이후 오래 방치됐던 것 같았다. 간판의 천이나 내부를 고정하기 위한 금속 틀이 전부 손만 대면 바스러질 것처럼 낡아 있었다. 머릿속에 물음표가 가득 찼다. 조금 더 자세하게 살펴볼 겸 허리를 숙였는데 멀지 않은 곳에서 거대한 현수막이 펄럭이는 소리와 함께 머리 위로 그림자가 졌다. 무슨 일인지 확인하기도 전에 억센 힘에 붙들려 허공으로 떠올랐다. 입에서 비명이 샜다. 나는 비명을 멈출 줄도 모르고 악을 쓰면서 고개를 들었다.

까마귀.

비명이 멎었다. 나는 따끔거리는 목 너머로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내렸다. 발아래로 폐허가 지나가고 있었다. 구석구석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부숴놓은 모양새였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까마귀가 나를 내려놓은 곳은 거대한 둥지였다. 까마귀는 잡아 먹힐까 봐 얼어붙은 나를 본체만체하더니 다시 휙 날아가 버렸다. 나는 까마귀가 날아가는 것을 지켜보다가 둥지를 둘러봤다. 둥지는 텅 비어 있었다. 새끼 까마귀에게 먹이를 주기 위해 나를 사냥한 건 아닌 것 같았다. 나는 둥지의 나뭇가지와 철근을 잡고, 밟고 겨우 기어 올라가 둥지 밖을 내다봤다. 둥지는 무너진 건물의 잔해 위에 지어져 있었는데 다행히 그리 높지 않았다. 나는 까마귀가 오지 않는지 다시 한번 주변을 확인하고 조심조심 둥지의 밖으로 넘어갔다. 어릴 때 철봉을 게을리한 것을 반성하면서 죽을힘을 다해 철근과 나뭇가지를 잡았다. 겨우 다 내려와 둥지의 끝에 매달려 발 디딜 곳을 찾아봤지만 마땅치 않았다. 눈을 질끈 감고 손을 놓으면서 개중 제일 평평한 자리를 향해 몸을 날렸다. 몸을 웅크려 머리를 보호한 덕에 크게 다치지 않았지만 등과 어깨가 너무 아팠다. 앓는 소리를 내면서 건물 더미를 헤쳐 나갈 길을 모색했다.


     구르고, 기어 다닌 덕에 온몸이 만신창이였다. 건물 잔해의 뒤에 몸을 숨기고 하늘을 살폈다. 까마귀는 보이지 않았다. 건물 잔해에 몸을 기대고 주저앉았다. 집으로 가야 하는데 방향을 알 수 없었다. 그렇다고 무작정 이곳에 몸을 숨기고 있을 수도 없었다. 어디로든 까마귀에게서 도망쳐야 했다. 하지만 어디로. 막막한 마음에 눈을 감았다 떴다. 세상은 여전히 폐허였고, 나는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택시는 대체 나를 어디로 데려다준 걸까. 이를 악물고 일어났다. 고개를 살짝 빼 다시 하늘을 확인했다. 아무것도 없었다. 몸을 낮추고 최대한 빠르게 몸을 숨길 수 있는 잔해 아래로 이동했다. 잔해의 그림자 아래로 들어가 몸을 숨기고 숨을 골랐다. 옳은 방법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지만 다음으로 넘어갈 자리를 고르기 위해 고개를 뺐다. 그때 무언가 내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헉…!


급하게 숨을 삼키며 몸을 돌렸다. 비명이 튀어나올 뻔했던 내 입 위로 따뜻한 손바닥이 닿았다. 까마귀 - 를 연상시키는 가면을 뒤집어쓴 사람이 서 있었다. 까마귀의 부리를 흉내 낸 반질반질한 플라스틱 같은 게 얼굴의 절반을 가리고 있어서 눈을 볼 수 없었다. 그 위로는 실제 까마귀의 깃털이 이어져 머리부터 목까지 덮고 있었다. 가면이지만 투구에 가까운 물건이었다. 그는 가면의 까마귀 부리 아래로 드러난 얇은 입술 위로 검지를 갖다 댔다. 내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자 내 입을 덮고 있던 손을 거둬갔다. 그리고 입술 앞의 검지를 들어 하늘을 가리켰다. 나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빼 하늘을 올려봤다. 언제 나타난 건지 까마귀가 하늘을 뱅뱅 돌고 있었다. 무언가를 찾는 움직임에 온몸의 솜털이 다 일어나는 것 같았다. 나를 찾고 있나. 숨을 죽이고 까마귀를 지켜봤다. 까마귀는 몇 바퀴 더 하늘을 도는가 싶더니 곧 다른 곳으로 날아가 버렸다. 안도의 숨을 길게 내쉬면서 까마귀 가면을 돌아봤다. 그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에게 묻고 싶은 게 많았다. 당신은 누구고, 이곳은 왜 이렇게 된 건지. 나는 집으로 가고 있는데 혹시 길을 알려줄 수 있는지. 하지만 그 모든 질문을 하기도 전에 까마귀 가면은 내게서 등을 보였다. 나는 서둘러 그의 손을 붙들었다. 까마귀 가면이 나를 돌아봤다. 그는 내가 입을 떼기도 전에 싱긋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엔딩이야.



“손님, 근처 건널목에서 내려드릴까요?”


눈이 번쩍 뜨였다. 주변을 둘러봤다. 달리는 택시 안이었다. 손님? 앞을 바라보니 기사님이 백미러를 통해 나를 보고 있었다. 걱정스러운 눈길에 정신이 들었다. 나는 서둘러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해 달라고 했다. 택시는 다시 침묵에 잠겼고 나는 창밖으로 눈을 돌렸다. 몇 번 와본 적 있는 동네의 풍경이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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