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무게에 서명하며
내 안은
오랫동안 조용했다.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창고처럼
감정들은 먼지를 뒤집어쓰고
누워 있었다.
그런 나를
깨운 건 무너짐이었다.
신호탄이 된 건
사춘기 딸과의 관계였다.
나는 회복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감정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슬픔은 글이 되었고
비교는 문장이 되었으며
수치심은 쉼표로 숨을 돌렸다.
틈틈이 쓴 글을 정돈하면서
나는 조금씩 나를 회복했다.
그때 알았다.
이 글은 단지 기록이 아니라
나의 존재를 증명하는 서명이었다.
나에게 저작권은
내 글을 지켜주는 서명이자
내가 살아낸 감정의 무게를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인정하는 서명이었다.
살면서 우리는
여러 번의 서명을 한다.
커피 한 잔을 살 때
밥 한 끼를 나눌 때
작은 영수증 위에 서명을 한다.
또는 누군가를 돕기 위해
기꺼이 서명을 남기기도 했다.
나는 바랐다.
내가 써 내려간 이 글이
그런 서명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삶을 살아냈다는 것,
감정을 지나왔다는 것,
누군가에게 조용한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는
한 줄의 진심을 남기고 싶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조용히, 글로
서명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