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지금 나는 그렇다.
치열했다.
13년 동안 한 직장을 다녔다.
주간 보고, 월간 보고, 분기 보고, 연간 보고, 데일리 보고까지…
수많은 보고서 속에서 “잘했어요”라는 말도들었고,
때로는 회의실에서 니 탓 내 탓만 하다가
정작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르게 지나간 회의도 있었고,
나지막하게 다시 보고하겠습니다. 밤을 지새기도 했다.
그래도 돌아보면
참 괜찮은 직장생활이었다.
어떤 이는 나를 ‘레전드’라 불렀고,
어떤 때는 ‘진격의 거인’이라고도 했다.
(추진력이 좋다는 뜻으로 나는 이해했다.)
이직 제안도 받았고,
매년 인센티브도 놓치지 않았다.
그 시간 속에서 함께했던 동료들이 있었다.
지금은 모두 다른 곳에서 일하지만,
어느 날 우리는 다시 그 자리에 모였다.
마치 그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그런데 이상했다.
그날의 공기, 그 모임은 어딘가 찜찜했다.
‘왜 우리는 여전히 과거의 고충을 이야기하고 있는 걸까?’
’왜 이렇게 무료하게 느껴지는 걸까?‘
말은 오가는데, 본질은 놓친 것 같았다.
회의가 깨졌던 날처럼, 니 탓 내 탓만 하다가
정작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르게 된 느낌이었다.
그날 나는 말하고 있었지만,
내 입술만 움직이고 머리는 지루함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함께 있었던 친구와 통화를 했다.
“그날 좀 그랬지? 나도 그랬어.”
우린 그렇게 말하며 공기를 공유했다.
그날의 대화는 회상이 아니라 퇴보처럼 느껴졌다고.
누가 잘못한 게 아니라, 그냥 그랬던 거다.
그래서 요즘은
사람을 만나고, 모임에 나서는 일이 조금 더 신중해졌다.
(‘귀찮다’는 건 아니고)
지금은 그저 나에게 집중하고 싶은 시간이다.
‘밥 한번 먹자’,
‘우리 언제 한번 보자’ 같은 말조차
내뱉고 싶지 않다.
나는 지금
남보다 나를 더 많이 만나야 한다.
타인의 이해를 구하기 전에
내가 나를 이해하지 못한 게 아직 많다.
그리고 오늘도,
나는 나와 잘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