붙여가는 관계, 우리 사이의 테이프 한 줄
“몸이 안 좋아서 오늘 학원은 못 가겠어.”
아이는 그렇게 말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중고거래 택배를 포장해 들고 나갔다.
편의점-택배까지는 멀지 않지만,
가벼운 산책은 아니다.
왠지 이상했다.
학원은 못 갈 만큼 아픈데,
택배는 보낼 수 있는 힘은 있나 보다.
처음엔 솔직히 서운했다.
‘엄마 말은 안 듣고, 자기 할 일은 다 하네.’
‘몸이 아픈 건 맞는 걸까? 핑계일까?’
그런 생각이 올라올 무렵,
아이가 툭 내뱉듯 말했다.
“속 안 좋아. 엄마가 뭘 알아.”
그 말 한 마디에 나는 딱 멈췄다.
상처였지만, 동시에 신호였다.
“제발 날 해석하지 말고, 그냥 좀 받아줘.”
그 말 같았다.
사춘기의 말은 거칠지만, 그 안의 감정은 섬세하다.
그걸 애써 설명해주는 대신,
그냥 들여다보고, 기다리고, 가만히 옆에 있는 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일지 모른다.
그리고 문득,
중고거래를 정성스럽게 준비하는 아이의 손길을 떠올렸다.
택배 상자를 테이프로 정갈하게 감고,
시간 맞춰 물건을 보내려 애쓰는 모습.
그건 단순한 거래가 아니라,
‘신뢰를 지키려는 훈련’ 이었다.
아이는 지금 누군가와의 약속을 지키는 법을 배우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 아이와의 신뢰를 지키고 싶다.
감시가 아닌 신뢰의 눈으로,
비난이 아닌 존중의 말로,
아이와 나 사이도 그렇게 하나씩 배워가고 싶다.
택배 상자를 조심스럽게 붙이는 손처럼,
우리의 관계도 그렇게
한 겹씩 붙여가고 싶다.
조금 느려도, 조금 삐뚤어도 괜찮다.
중요한 건, 놓지 않고 붙여가는 마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