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는 맞췄지만, 사람은 맞지 않았다
그날이 내 첫 출근 날이었다.
하지만 단지 입사했다는 사실만으로 새로웠던 건 아니다.
나는 ‘쉬지 못한 사람’이었다.
퇴사 후의 여유는커녕,
불안과 실패감, 억울함과 자존감의 붕괴까지
마음 안에 오만가지 감정이 얽혀 있었다.
그 감정들은 이름 붙이기도, 설명하기도 어려워서
종이에 적히지 않는 상태로
내 안을 시커멓게,
그러다 결국은 무채색으로 바꿔놓았다.
그런 시간을 지나고 나서야,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조금 알게 되었다.
‘회사 다니는 걸 꽤 좋아했구나.’
‘사람들과 일하는 게, 혼자 있는 것보다 더 즐거웠구나.’
(딸아이 숙제를 검사하는 것보다도 훨씬.)
퇴사 후엔 소비도 멈춰야 했다.
의외로 그것도 힘들었다.
무언가를 고르고, 기다리고, 받아보는
그 작고 반복적인 일상들조차도
나에게는 꽤 중독성이 있었던 것 같다.
어쨌든, 나는 다시 출근을 했다.
이번에는 감각적인 제품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회사였다.
공예품, 트렌디한 디자인,
쉽게 구매할 수 없는 나라에서 온 오브제들.
예술을 다루는 회사는
예술의 속도로 세상을 대하고 있었다.
빨리 팔 생각도 없었고,
고객을 조급하게 만들지도 않았다.
‘기다리는 소비’라는 개념을
이곳에서는 당연하게 여겼다.
그건 나에게도 꽤 낯설고 신선했다.
그러면서도
그 속도를 존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숫자를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예술적 가치와 별개로
월별 손익계산서를 써야 했고,
현금 흐름표를 정리해야 했고,
그 속도에 맞춰 재무의 속도를 제안해야 했다.
나는 그걸 했다.
예술적인 손끝으로 계산서를 브리핑하면서,
내 역할이 무엇인지 잊지 않으려고 했다.
그렇게 3개월.
나는 다시 퇴사를 결심했다.
예술의 속도가 느려서가 아니었다.
재무제표가 실망스러워서도 아니었다.
문제는…
또 사람이었다.
‘나만 잘 됐으면 좋겠어’,
‘내가 제일 잘 나가’라는 말을
서슴없이 하던 사람들.
모든 성과는 자기 것이고,
모든 책임은 타인의 몫인 듯한 태도.
진한 향수 냄새, 짧은 치마,
그리고 ‘나는 특별해’라는 표정.
그게 그냥…
싫었다.
사실,
관계를 회복하려 애쓰기보다는
‘내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과
매일 함께 있어야 하는 게
훨씬 더 지치는 일이었다.
그리고 꼭 힘들지 않을 것 같은,
그럴싸한 조건의 재입사 제안은
마치 준비된 함정처럼
다시 나를 끌고 가고 있었다.
홧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