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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무너졌던 날, 내가 짊어진 것들

모든 걸 짊어진 아이였던 나에게

by 앎삶

내가 여섯살 즈음이었을 것이다.

가까운 친척의 보증으로 인해 부모님은 부도를 맞았다. 삶의 안정이라는 것이 단숨에 무너졌고, 그 순간의 장면들이 지금도 선명하다.


기억 속 아버지는 고가의 인테리어와 취미를 즐기던, 여유로운 사람이었다.

어느 날, 낯선 남자들이 우리 집 가구에 채도 낮은 빨강색과 파랑색 스티커를 붙이기 시작했다.

그걸 막으려 울부짖던 엄마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날 이후 나는 부모님을 미워하게 되었다.

무능한 어른들이라고 생각했다.

내 소유 같던 어린 시절의 풍요와 안정을 지켜주지 못한 사람들.

그 부도를 불러온 친척과 여전히 교류하며, 뒤에서는 과거를 탓하는 일관되지 않은 모습에도 화가 났다.

어떤 신뢰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때부터 나는 자주 잠에 들었다.

이 모든 게 꿈이었으면 해서.

기댈 곳이 없다는 생각은 오래도록 나를 따라다녔다.

“내가 무너지면 아무도 대신해주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한 어린 나는, 늘 긴장했고, 두려웠고, 지쳐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자라난 나는 지금, 내 아이를 마주하고 있다.


얼마 전 토요일, 아이가 또 학원을 가지 않았다.

이번에도 데려다줬건만, 1시간 뒤 “엄마 미안해. 오늘은 학원 안 가고 싶었어. 다음 주엔 꼭 갈게”라는 문자가 왔다.

나는 실망했고, 죄책감을 느꼈다.

아이가 자신의 선택에 대해 사과하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했고, 동시에 아쉬움도 남았다.


그래서 이렇게 답장을 보냈다.

“엄마한테 사과할 일이 아니야. 너 스스로 계획한 일은 네가 책임지면 좋겠어. 엄마는 그게 조금 아쉽다. 잘해보자.”


하지만 여전히 마음은 복잡했다.

“내가 잘못 키우고 있는 건 아닐까.”

“혹시 우리 아이도 실패하면 무너질까.”


그 순간, 문득 깨달았다.

나는 내 아이를 바라보면서, 여전히 내 안의 ‘어린 나’를 보고 있다는 걸.

실패를 용납하지 않고, 완벽해야만 사랑받을 수 있으며, 기대면 무너진다는 그 오래된 믿음 말이다.


그 믿음은 내 것이었고, 이제는 조금씩 내려놓고 싶다.

아이도 나도 실패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누군가를 온전히 믿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이제는 나부터 배워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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