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고, 나는 처음으로 나의 밑바닥을 마주했다
늘 괜찮은 척, 다 큰 어른처럼 살아왔지만
딸이라는 이름 앞에서
나는 매일 무너졌고, 다시 배웠다.
너는 나의 가면을 벗겨냈고,
나의 부족함과 미성숙을 비추어주었다.
너로 인해 나는
내 인격의 나이와 마주할 수 있었다.
어쩌면
엄마인 내가
너보다 더 어린 존재였는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말한다.
친구 같은 딸, 친구 같은 엄마라고.
그 말은 아마
엄마가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준다는 뜻일 테지만,
나에게는 조금 다르다.
친구 같은 딸이라는 건,
너라는 아이가
엄마인 나의 눈높이에 맞춰
내 마음을 들여다봐 주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는 뜻이겠다.
그러니까 나에게는,
내가 너의 엄마라서 고마운 것이 아니라,
네가 나의 딸이어서 고맙다는 말이다.
#딸을 키우며, 나를 만나다
생각해 보면, 딸을 키우는 일이 나를 치유의 길로 이끌었다.
처음에는 자꾸만 반복되는 감정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어 상담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 상담의 자리에서 나는 내 딸의 모습 속에 오마주된 어린 시절의 나를 마주하게 되었다.
너와 나를 구분하지 못한 채
내 민낯을 알지 못하고 딸을 대했던 순간들
그 모든 장면들이, 사실은
부끄러움을 숨기기 위해 애써 쌓아 올린
나의 방어이자 외면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외면하지 않기로 했다.
우울과 심리치료를 통해 삶의 무게를 정직하게 바라보기로 했고,
감정을 억누르기보다 꺼내어 마주하고,
반응이 아닌 선택으로 살아가는 연습을 하고 있다.
딸을 위해서.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기다려온 ‘나’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