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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짱이 Apr 02. 2022

내가 배운 사랑은

26년 동안 쌓여온 시간들


결혼한 지 26년, 내가 산 인생보다도 더 오랜 시간 서로와 함께 해 온 우리 부모님은 여전히 큰 방에서 한 침대를 쓰신다. 밤이 되어 모두가 잘 준비를 할 때 즈음이면 난 어김없이 큰 방에서 들려오는 엄마 아빠의 도란도란 이야기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에 들었고, 학교를 안가 늦잠을 자는 주말 아침이면 거실에서 아침부터 TV를 보며 열정적으로 수다를 떠는 부모님의 목소리를 알람 삼아 잠에서 깨곤 했다. 서울로 독립을 하기 전까지 20여년 간 부모님과 꼭 붙어 살며 들을 수 있었던, 괜스레 행복해지는 소리들.




내가 중학생일 때, 아빠는 회사를 그만두고 작은 사업을 꾸리셨다. 방송에 출연할 정도로 꽤 잘나가는 공예가로 강의를 다니시던 우리 엄마는 아빠의 사업을 돕기 위해 공예를 그만두고 아빠와 함께 일을 다니기 시작했다. 같은 사무실로 매일같이 함께 출퇴근 하는 것도 어언 10년째. 같이 잠 자고, 같이 밥 먹고, 같이 출근해서 같이 일하고, 같이 퇴근하고, 정말 말그대로 하루종일 붙어 있는데도 자기 전에도 조잘조잘 주말에도 조잘조잘, 둘이 얼마나 할 말이 많은 걸까.


고등학교 때 응원단장을 항상 도맡아 했다는 우리 아빠는 소문난 ‘인싸’였다고 한다. 반면 조용한 성격에 학창시절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 디자인을 전공한 우리 엄마. 우리 아빠는 전형적인 가부장제 경상도 집안에서 5남매 중 장남이었고 우리 엄마는 딸 둘 낳아 애지중지 키우던 집안에서 공주처럼 자란 장녀였다. 당연한 소리겠지만, 신혼 때 그렇게나 많이 싸울 수가 없었다고 한다. 친구에 죽고 못살던 우리 아빠가 연락도 안된 채 어디가서 놀고 있으면 우리 엄마는 모든 연락망을 총동원해 볼링장이며 당구장이며 아빠를 잡으러 쫓아 다니기 바빴고- 난생 처음 겪어보는 시집 살이에 충격을 받은 엄마와, 그게 당연할 줄로만 알고 살았던 아빠가 서로를 쉽게 이해하기는 꽤나 오랜... 무지하게 오랜 시간이 걸렸을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아웅다웅 얼마나 사랑 싸움을 하는지. 아빠가 엄마의 마음을 얻으려 멋진 새 차를 뽑아 매일같이 엄마 회사 앞에서 폼을 잡고 기다렸는데, 결혼을 하고보니 할부였어서 결국 같이 갚았다면서, 사기 결혼이었다며 씩씩 거리는 우리 엄마. 엄마가 그 말을 할 때마다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그래도 결정적으로는 엄마가 따라다녔던 거라고 반박하는 아빠. 똑같은 레퍼토리의 ‘누가 먼저 좋아했나’ 이야기를 몇 번 째 듣는 건지 셀 수도 없지만, 딱히 질리진 않는다.


미스터트롯에 나오는 정동원의 열성팬이 되어 하루종일 노래를 틀어 놓는 우리 엄마를 보며 우리 아빠는 나한테 ‘느이 엄마 완~전히 증신이 나가뿟다’라고 나한테 속닥거렸다. 하지만 아빠는 지난 주말, 정동원 이름으로 연 카페에 엄마를 데려가 쥐가 나도록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돌아오는 길엔 ‘굿즈’까지 한 아름 사줬다는 걸 난 안다. 야심한 새벽에 손흥민이 나오는 축구 경기를 틀어 놓고는 꾸벅꾸벅 조는 아빠를 보며 엄마는 ‘너거 아빠 보지도 않으면서 또 저란다. 쯧쯔...’하며 하소연을 하지만 이따금씩 관심도 없는 축구 경기를 함께 봐주며 지금 뛰고 있는 애는 누구냐고, 괜히 질문을 던지면서 신나서 답해주는 아빠를 바라보는 엄마의 눈빛을 안다.


오랜만에 본가에 내려가서 아빠랑 둘이 시내를 다녀올 일이 있었는데,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우리 아빠는 입이 닳도록 엄마 이야기를 해댔다. 당신은 엄마만큼 똑똑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며, 아무리 새로운 거여도 밤을 새가면서라도 터득해낸다고. 공예일을 할 때도 정말 대단했다고, 우리나라에서 배우는 사람이 많이 있지도 않았는데 매주 서울을 왔다갔다하며 배워 와서는 정말 열심히 일 했었다고, 그러고는 당신 때문에 그 좋아하던 공예를 그만두게 한 게 그렇게 미안하다고. 마음의 빚이 있다고. 언젠가 로또에 당첨이 되면, 가장 먼저 너희 엄마 공방부터 다시 만들어 주고 싶다고 ...




서로 생판 다른 세계에 살던 엄마와 아빠가 만나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가 될 때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들이 겹겹이 쌓여 왔을까. 방 하나 딸린 작고 오래된 빌라에서 신혼을 꾸렸을 그 때부터 IMF로 첫 사업이 부도났을 때, 외할머니가 큰 수술을 했을 때, 친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나와 동생이 태어났을 때, 아파트로 처음 이사했을 때... 내가 미처 헤아릴 수도 없는, 수많은 힘든 일과 기쁜 일을 번갈아 겪어오며 얼마나 더 단단해져 왔을까.


우리 엄마는 늘 능력없는 남편 만나 고생했다고, 너는 꼭 돈 많은 남자한테 시집 가라며 장난 반 진담 반 농담을 던지지만 참 역설적이게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이 가장 중요할 것임을 항상 생각하며 살아가고 싶은 걸.


적어도 내가 배운 사랑은 그런 거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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