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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크 Sep 23. 2024

좋아하는 것들을 더 좋아하자

여름, 신호등과 버스.

덥다는 말보다 뜨겁다는 말이 더 익숙하게 나오는 계절의 대낮에,

자주 가는 카페에 앉아 에어컨을 산소호흡기처럼 의지하며 여름은 도무지 정을 붙일 수 없는 끔찍한 계절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둘째동생에게 전화가 왔고, 몇 마디를 나누다 동생은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을 꺼냈다.

"형, 생각해보니까 형은 정말 고생이 많았는데 고생했다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없었던 것 같아. 그래서 더 지치고 힘들었을 것 같더라고. 고생했다고 말해주고 싶었어"

내가 오랫동안 다닌 교회를 떠나게 된 뒤, 몇 년이 지나 '형이 다니던 교회에 다녀보고 싶어'라고 말하고 교회를 다니더니 갖가지 경험을 한 동생이 내게 건네는 말이었다.

보상, 위로, 이해와 같은 것들을 조금이라도 바라면 상처입는 일들이 매번 벌어졌기에 그것들을 바라지 않는 연습들을 해왔고, 그래서 교회를 떠날 때에도 무엇 하나 바라지 않고 떠났다. 아니, 무언가 내심 바라고 있었을까. 어쩌면 교회를 떠나던 그 순간에 가장 듣고 싶었을 말을,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해나가고 있는 동생의 약간은 결연한 목소리가 전해준다는 것이 묘한 쌉싸름을 주었다. 조금 더 마음을 벌거벗기면, 꽤나 울컥했다.


"나야 뭐, 그냥 했지. 그래도 이렇게 알아주고 고생했단 들으니까 마음이 좋네. 고맙다"

2층인 카페 테라스에서 건너편 차도를 바라보며 짧은 횡단보도 신호등의 깜박임을 5번, 학교를 마친 아이들을 태운 버스 8대를 눈에 담은 것 같다. 목소리와 생각을 섞었던 통화는 신호등과 버스를 거쳐 밥 잘 챙겨먹고, 항상 건강 챙기고, 운전 조심하고, 용돈 필요하면 얘기하라는 안부가 섞이며 끊어졌다. 

예전엔 대단한 작품들과 대단한 사람들만 보며 많은 것을 느끼고 얻어야 된다는 생각으로 시선을 바깥에만 돌렸는데, 시선에 조금 힘을 풀고 나니까 요즘엔 곁을 지켜주는 사람들을 보며 참 많은 것들을 느끼고 얻게 된다. 나도 그들에게 많은 것들을 주고 있는 걸까.


마음과 머리에서는 한결 기분 좋은 바람이 느껴졌다. 맘 같아선 여름도 좋아하게 됐다는 글을 끼워넣을까도 했는데, 거짓말이라도 여름은 여전히 정을 붙일 수 없다. 나이를 먹을수록 싫은 것들이 분명해진다는 게 조금은 부담스럽다. 좋아하는 것들을 더 좋아하자. 통화를 마치고 노트에 그렇게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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