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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호 Jun 25. 2020

책으로만 배웠구나?

타인의 부족한 모습을 깎아내리기 위한 도구로 책을 사용하다니

 저는 저 말이 싫습니다.


책으로만 배웠구나? 이 말은 이론만 알고 현실을 잘 모르는 소위 헛똑똑이라 불리는 사람들을 비웃기 위한 말로 주로 사용하지요. 저 또한 그런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을 싫어하고 그런 사람이 되지 않으려 발버둥 치며 살아가는 중입니다.


 저 문장이 자신의 미숙함과 불완전함을 이해해달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에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느 누가 그런 겸손함을 싫다 하겠어요. 허나 저 말이 타인의 부족한 모습을 질타하기 위해 사용될 때에는 심장이 쿵쾅거리며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정수리 끝까지 치밀어 오르는 것을 감추기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별것도 아닌 일에 왜 이렇게 화가 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두 가지 원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첫 번째 이유는 타인의 부족한 모습을 깎아내리려고 하는 모습 자체에 화가 나는 것이었고, 두 번째 이유는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책과 글을 폄훼의 도구로 사용했다는 데에서 오는 모욕감 때문이었어요. 마치 내가 무척이나 존경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여러 사람들 앞에서 망신당하는 모습을 어쩔 수 없이 지켜봐야만 할 때와 비슷한 느낌이랄까요.

 

 저는 타인을 비난하기 위해서 저 문장을 사용하는 사람은 책이나 글의 위대함을 살면서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을 거라 확신합니다. 그래서 저는 책으로만 배웠네? 하며 피식 웃는 사람의 얼굴을 마주할 때 참을 수 없는 불편함을 느끼곤 합니다.

 

 좋은 책과 글은 가히 위대하다는 말이 아깝지 않습니다. 책이라는 물건은 한 사람의 생각의 정수이기도 하며 더욱이 좋은 책은 보통 생각이 아니고 훌륭한 생각의 진액이기 때문이지요. 물론 비판적으로 책을 읽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수준 이하의 책들도 아주 많습니다. 허나 대부분의 책은 적어도 한 가지 이상의 배울 점이 반드시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책 한 권을 읽고 인생이 바뀐 사람들의 이야기를 우리는 이미 많이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자기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들을 인터뷰할 때는 "당신의 인생에 영향을 미친 책은 무엇인가요?"같은 질문이 항상 빠지지 않지요.


 사람의 인생에 영향을 미치는 강력한 제3의 존재로 책만큼 많이 언급되는 것은 없습니다. 책은 선택의 기로에서 나침반 역할을 해주기도 하고 세상 이치에 대한 어떤 통찰을 주기도 합니다. 고난을 헤쳐 나올 용기를 주기도 하고 바닥 없이 가라앉을 것만 같은 우울함을 느낄 때에 따듯하게 도닥여줄 친구가 되어주기도 하지요. 스승을 찾기 힘든 시대라고 하는데 책은 가끔 스승의 역할을 해주기도 합니다.

 

 보다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 책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들은 이렇게도 무궁무진합니다. 세계 역사상 위대한 발명품 순위 best 10 안에도 실릴 정도로 대단한 인류의 발명품이 타인의 부족함을 공격하기 위한 무기로 사용되는 장면을 지켜볼 때 나는 너무도 슬프고 화가 나서 정말이지 무엇이라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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