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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호 Sep 30. 2020

세상 모든 말은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다.

완벽히 대치되는 언어 사이에서

완벽한 대척점에 서서
서로를 겨누고 있는 언어들이 존재한다.


격언이나 속담, 혹은 관용구라 불리는 짧은 한두 마디의 문장들은 인생을 관통하는 진리를 통해 수많은 깨달음을 우리에게 전해주며 오랜 세월 그 권위를 인정받고 명맥을 유지해오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타인에게 조언을 하거나 나의 생각을 간결하게 전달하기 위한 효과적인 방편으로 격언과 속담을 자주 활용하곤 한다.


한데 가만 보면 이놈에 격언이라는 식구들은 아주 일관성이 없으면서 세상에 혼란을 가중시키는 무자비한 놈들이다.  


수십 년간 몸에 붙은 살덩어리를 제거하고자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여 헬스클럽에 등록하러 온 회원에게 헬스클럽 관장님은 아마도 "시작이 반입니다." 이미 성공하신 거나 다름없어요 라며 응원의 말을 건넬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일주일정도 지나 그간 자신이 살아온 생활의 관성을 되돌아보지 못하고, 왜 살이 빠지지 않지요?라고 묻는 회원에게 그 관장님은 아마도 "첫 술에 배부르려고 하십니까?"라며 나무랄지도 모른다.


여기 자녀교육에 한창 열정을 쏟아붓고 있는 한 부모가 있다. 그들은 자녀에게 "아는 것이 힘"이라며 지식 습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몰랐어요'라는 말은 냉혹한 세상에 통용되지 않는다며 가능한 많은 것들을 알고 있어야 험한 세상에서 손해보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며 자식의 등을 두드리며 최선의 지원을 다하고자 마음먹는다. 세상의 지식을 습득해 나가던 아이는 문득 궁금해져 부모에게 묻는다. "엄마 그런데 아이는 어떻게 생기나요?" 당황한 부모는 뭘 그런 걸 물어보냐며 그런 건 크면 알게 되어 있다면서 "모르는 게 약인 경우도 있어"라고 답한다.


좋아하는 이성에게 고백을 할지 말지 고민하는 절친한 친구가 있다면 우리는 어떤 조언을 할 것인가. 누군가는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는 없다"라며 자신감을 불어넣어주며 선택을 돕기 위한 선의를 표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친구가 상처받을 것을 염려하여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는 말을 건네며 예방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친구도 있을 것이다. 완벽히 대치되는 이런 말을 주고받으며 우리는 고민에 빠진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 vs 빛 좋은 개살구

부자는 망해도 삼대 간다 vs 달도 차면 기운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vs 쇠뿔도 단김에 빼라

세 살 버릇 여든 vs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가까운 이웃이 먼 친척보다 낫다 vs 피는 물보다 진하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vs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


아무리 상사 모든 일이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지만 이렇게나 완벽히 대치되는 언어들 사이에서 휘청거리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이렇게 완벽하게 모순되는 언어 사이에서 무엇에 귀를 기울이며 살아야 하는 것일까. 세상 모든 말들은 때에 따라 맞는 말이 되기도, 틀린 말이 되기도 하니 말이다.  

 

그 누구도 답을 알려줄 수 없다는 것이 이 비극의 시작이다. 언제나 그랬듯 모든 선택은 스스로 해야만 하고 결과에 대한 책임 역시 본인의 몫이다. 내가 A를 선택하든 B를 선택하든 결과에 따라 그것은 맞는 말이 되기도 하고 틀린 말이 되기도 한다. 결국 내가 결정한 나의 선택을 정답으로 만드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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