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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호 Oct 16. 2020

바람과 음악과 노을

내가 운전을 좋아하는 이유

음악을 좋아한다.


음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하여 음악을 좋아한다는 말을 하기가 지구는 둥글다는 말처럼 당연한 소리로 들릴까 싶어 굳이 글로 적어 내려가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어, 이런 하나마나한 소리를 해서 무엇하나 싶다가도 이내 마음을 고쳐먹고 스스로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살펴보는 것도 기나긴 인생에 한 번쯤은 둘러봐야 될 지점은 아닌가 하여 음악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남을 웃기려고 하면 웃기기가 어렵고 감동을 주려고 쥐어 내면 짜낼수록 감동이 달아나는 것처럼 세상은 의도 없이 무언가와 맞닿을 때 오히려 의도를 가지고 있을 때보다 더욱 그 의도에 가까이 다가갈 때가 많다.


즐겨 듣게 되는 음악도 그렇다. 아는 음악만 듣는 것이 지겨울 때가 있다. 얼마간의 새로움은 신선한 공기처럼 우리의 삶을 상쾌하게 씻어낸다. 그런 이유로 새로운 음악이 듣고 싶어서 어디 좋은 음악 없나 찾아서 들어보고, 지인 추천이나 인터넷 검색을 통해 좋다는 음악들을 연이어 들어봐도 내 귀를 끌어당기는 음악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러다가 문득 주변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아무 생각 없던 나의 정신과 두 귀를 빼앗고 음악에 집중시킬 때가 있다. 서른네 해 째 살아오며 나는 이제 알았다. 그 순간이 그 음악과 인연을 맺게 되는 순간이라는 사실을.

 

벌써 이주 가량 출퇴근 길에 한곡 반복으로 설정해두고 계속해서 반복하여 듣고 있는 곡이 생겼다. 한 곡에 꽂히면 밤낮없이 이렇게 그 음악의 멜로디와 가사 그리고 창작자에 빠져 허우적대곤 한다. 오랜만에 또 반가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며칠 전 "   블루"보았다. 우울함으로 점철되어 결국 비극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자신의 삶을 비극의 방향으로 끌고 가기로 결정해버리고 마는 예술가의 삶을 다룬 영화. 쳇 베이커를 모르지만 영화를 통해 예술가의 삶과 고뇌를 조금이나마 들여다볼 수 있었다. 우울함과 흥겨움은 공존할 수 있는 것일까. 공존의 가능성까지는 모르겠으나 우울함에서 비롯되는 아름다움이 분명 존재한다고 믿는다. 


이런 의미에서 Dance monkey라는 곡이 나의 마음을 훔쳐버렸다. Tones and i라는 가수의 삶은 모르지만 그녀가 작곡했다는 곡 하나로 그녀의 세계를 짐작해본다. 펑키하면서도 힙하고 신나면서도 우울한듯한 느낌이랄까? 내가 말해놓고도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지만 음악적 지식이 미천하여 무어라 표현할 수 없음이 답답할 뿐이다.


우리는 자신과 비슷하거나 혹은 자신이 추구하는 방향을 제시하거나, 혹은 자신과 다른 무언가에 끌린다. 말해놓고 보니 그렇다면 거의 모든 것에 끌린다는 말처럼 들려 우습기도 하다. 게다가 완전히 역치되는 문장, 즉 자신과 비슷해서 끌리지 않고 자신과 달라서 끌리지 않는다는 식으로 말을 바꿔도 기가 막히게 성립된다는 것 또한 희안한 일이다. 이 곡의 어떤 점이 나를 끌어당겼을까. 비슷했을까? 비슷해지고 싶었을까? 전혀 달랐기 때문일까? 내가 나를 모르니 스스로 던진 질문에도 답을 못할때가 많다.


영화나 음악, 그리고 책과 사랑에 빠질 때가 있다. 긴긴 인생을 살아가며 새로이 사귄 이 친구와 앞으로 가끔 만날 것을 생각하면 신이 난 어린아이처럼 기뻐서 손뼉이라도 치고 싶을 지경이다. 한 번 좋아져서 나의 마음속 서랍 깊숙한 곳에 꽂아둔 음악은 일주일이고 한 달이고 주야장천 듣게 된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자연스레 질리는 시기도 오게 되지만, 그때는 이미 나의 삶의 일부가 되어 살아가다 가끔씩 찾게 될 것임을 알고 있다.

 

좋아하는 음악과 함께하는 드라이브는 차를 소유하게 된 이후 사랑하게 된, 삶의 조각 가운데 하나이다. 음악은 삶의 순간들을 영화로 만들어준다는 영화 원스의 대사처럼 좋아하는 음악에 취해 혼자만의 세계에 흠뻑 빠지는 그 순간만큼은 눈을 뜬 채로 잠시 꿈을 꾸는 듯한 착각이 들기까지 한다. 꿈속에서 나는 얼마든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마이클 잭슨이 되기도, 나훈아가 되기도, 방탄소년단이 되기도 한다.


차 안에서 음악을 함께 듣기에 가장 좋은 벗은 다름 아닌 바람이다. 때로는 잔잔하고 포근하게 나의 두 팔과 두 볼을 감싸주기도 하고, 흥에 겨운 나머지 남들이 들을까 부끄러울 정도의 고성방가를 외칠 때면 세찬 바람소리로 부끄러운 소음을 가려주기도 한다. 창문을 지나 스치듯이 넘어오는 시원한 바람은 내가 원할 때면 언제든 옆에 와서 함께 머물다가도 내가 원하지 않을 때면 언제 곁에 있었냐는 듯 조용히 고요에게 자리를 내어준다.


혼자 감상에 젖어 운전을 하다 보면 때때로 황홀한 순간과 마주한다. 일렁이는 초록의 논밭과 코를 파고드는 흙내음, 노을이 반사되어 물비늘이 반짝이는 하천을 그중 으뜸으로 꼽을 수 있겠다. 우연히 다리 위를 지나다가 이 모든 것과 동시에 조우하게 되는 순간이면 흡사 그 다리가 세상을 넘어가는 경계에 위치한 차원의 문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그 순간 나 자신이 세계를 넘어가는 이방인이 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한 때 배우 장근석이 싸이월드에 음악은 국가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이라는 글을 올려 놀림을 받기도 했었지만 그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가 되기도 한다. 그것은 음악에 대한 순수한 예찬이었을 것이다. 사람이 무언가에 흠뻑 빠져서 온 마음을 다 내어주는 행위는 결코 비난이나 놀림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나를 눈물 나게 행복하게 만드는 것. 누구나 그런 존재를 한 두 가지쯤 마음에 품고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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