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스럽다고까지는 생각해본 적 없으나 고마움과 감사함은 어느 정도 표현하며 사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어느 날 저 말이 왜 그렇게도 시리게 다가왔던 것일까. 나는 단지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며 따듯한 세상을 만드는 선순환 구조에 일조하고 있었을 뿐이었는데 "그런 것 가지고"라는 당신의 말 한마디는 내가 고마움을 느끼며 살아왔던 그간의 모든 행위들이 마치 방금 무효를 확인한 복권처럼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느껴지게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당신은 별 의미 없이 건넨 한마디 말이었겠지만 그 순간 나의 세상에 또 한 번의 변화가 찾아왔음을 직감했습니다.
'남들보다 조금 민감하고 예민하여 별 것 아닌 일에도 감사함을 느끼며 살아갈 줄 아는 복을 타고 난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에서, '그렇구나 나는 당연한 것에 필요 이상으로 감사하며 살아왔었구나 당연한 것은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살아가야겠구나'라는 생각으로 말입니다.
대단한 것을 당연하게 느끼는 것은 삶의 많은 부분에 있어서 재미를 반감시키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는 측면에서 조심해야 될 삶의 자세이겠지만 당연한 것은 당연하게 느끼며 살았어야 했는데 당연한 것조차도 매우 귀한 호의인것 마냥 철저하게 을의 입장에서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면서 왠지 모르게 서글프고 비참한 마음이 가슴을 지그시 누르는 듯 답답한 느낌이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당연한 것들을 누리지 못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내 인생의 순간순간에 찾아온 그 당연한 것들이 너무도 감사했던 것일까요? 제가 어린 시절 교회에 다니시던 외할머니는 항상 "감사하는 삶을 살아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한 문장의 말이 제 무의식 속에 슬그머니 자리 잡고 인생의 방향키를 휘두르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외할머니를 탓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굳이 외할머니의 말씀이 아니었어도 살면서 감사할 줄 알라는 말은 무척이나 흔하게 들려왔으니까요.
가진 것에 만족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라는 안분지족이라는 사자성어조차도 이제는 달갑게 들리질 않았습니다. 그렇구나 이것은 승자의 논리로구나! 욕망을 거세당한 삶이라는 것이 바로 나의 삶이었구나!라는 생각이 제 머릿속을 지배하는 순간 참을 수 없는 분노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욕망이 솟구쳐 오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과연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아는 것이 값진 인생의 자세이자 세상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태도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인생에 정답은 없기에 이러한 삶의 자세가 때로는 정답이 되어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른 방향으로도 눈을 돌려봐야겠습니다. 때때로 절제를 위해 저런 삶의 자세가 필요할지도 모르겠지만 이제는 만족보다는 열망에 손을 뻗어봐야겠습니다.
이러한 감정을 갖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아무래도 유년기의 성장배경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무언가를 하나씩 포기하며 살아왔던 삶. 그 삶의 태도가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나를 놓아주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소스라치게 놀랍고도 두려웠습니다.
고로 결심했습니다. 나는 우리 가족들에게 이러한 삶의 태도가 스며들지 않게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어야겠다. 당연한 것은 당연하게 누릴 수 있을 정도의 삶은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에 노력을 더해야겠다. 그 울타리의 역할을 돈이 해줄 수도, 부모의 사회적 지위가 해줄 수도, 인맥이나 덕망이 해줄 수도 있겠지요. 그것이 무엇이 되었건 필요하다면 모든 것을 갖추어 나와 나의 가족들의 삶 안에서 당연한 것은 당연하게 존재할 수 있기를 소망하고 다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