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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호 Jul 05. 2020

멍 때리기는 영감을 준다.

비워야만 채워진다.

머릿속에 무언가를 끊임없이
집어넣고 있었고, 집어넣고 싶었다.


 누군가는 이것을 불안한 현대인이 겪는 강박증세. 배움 중독이라고도 말한다. 하여 시간이 허락할 때면  활자 중독에라도 빠진 사람처럼 끊임없이 무언가를 읽어치웠다. 출퇴근 시간도 예외는 아니었다.  출근 30분, 퇴근 30분 동안의 시간을 허투루 보내면 안 될 것만 같아서 유튜브를 듣기 시작했다. 그렇게 계속해서 집어넣다 보니 어느 순간, 보잘것없는 생각이라고 하더라도 나의 것을 만들어 내어 보이고 싶어 졌다. 아웃풋의 욕구가 생긴 것이다.

 그런 생각이 처음 들었던 때는 공익 시절이다.

운이 좋게도 도서관에서 공익 근무를 할 수 있었덕분에 많은 책을 을 수 있었다. 아마 평생 읽은 책 보다 그 당시에 읽은 책이 더 많았던 것 같다. 2년 동안 쉼 없이 읽다 보니 어느 순간, 좋은 책과 나쁜 책을 대충 구별할 되었다. 그렇게 된 후로 나쁜 책을 읽게 되는 순간이면 근거 없는 자신감과 욕심이 생겼다. 이런 책이라면 나도 쓰겠는데? 소집 해제와 동시에 나의 아름다운 이 열망은 사라지는 듯하였으나 최근 브런치를 알게 되면서 다시금 잊고 있던 욕망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책을 통해 배우고 느끼던 것에서 더 나아가 새로운 정보 습득의  길을 찾았으니. 그것은 바로 새 시대의 스승이라고까지 불리는 유 선생님이시다. 한데 유튜브의 세계에 빠져 얼마간을 허우적대다 보니 마구잡이로 책을 읽을 때와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양질의 정보를 전달하는 유튜버도 셀 수 없이 많지만 남의 것을 대충 포장해서 자기 것인 양 송출해버리는 유튜버들 또한 그에 못지않게 많다는 생각이었다. 금광이 발견되면 채굴 도구를 판매하는 상인이 돈을 벌고 가짜 금광 소문이 파다해지듯, 주식으로 돈 못 버는 애널리스트, 유튜브를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는 유튜브 강사처럼 가짜 정보 유통상들이 득세하는 것이다.


 이제는 마구잡이로 들을 것이 아니었다. 걸러내야 했다. 게다가 나의 것을 써내려면 온전히 생각에 몰두할 시간 또한 필요했다. 공백이 필요했다. 아침 출근 시간에는 정신이 비교적 맑다. 이때에는 정보를 쉽게 쉽게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으니 유튜브든 팟캐스트든 음악이든 무엇이 되었건 많이 듣자. 기왕이면 좋은 내용으로, 그리고 퇴근길에는 지친 뇌에게 쉴 시간을 주며 멍을 좀 때리기로. 멍을 때릴 때 창의성이 발현된다고 하니 말이다.


 사실 유튜브를 비롯한 다양한 플랫폼에서 각종 자기 계발 컨탠츠가 난무하는 요즘은 어느 정도 정보의 상향 평준화가 이루어진 것 같다. 조금이라도 이런 콘텐츠에 관심이 있고 꾸준히 소비하는 사람이라면 내가 어떤 말을 하더라도 전혀 새롭게 들리지 않을 것 같아 걱정이 된다. 그래서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은 때로는 '어차피 새로울 것도 없으니 남들 하는 말을 나도 한 번 해보지 뭐'라는 생각과 함께 용기를 주기도 하지만 반대로 '나만의 무언가를 만들어 내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에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선택된 소수의 천재들에게만 가능한 일인가 싶어 도무지 불가능한 일에 도전하는 것처럼 느껴져 괴로움을 주기도 한다.

 다시 돌아와서. 멍을 좀 때리다 보면 정말로 신기한 일이 벌어진다. 고민하던 일의 해결책이 떠오르거나 전혀 생각해본 적 없던 소재가 떠오르며 글감을 제공해준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아무것도 듣지 않고 운전을 하다 보니 혼자 노래를 흥얼거리거나 지나가는 경치에 집중하게 되는데 그러다가 문득 드는 생각.

내가 흥얼거리던 이 노래를 부른 가수가
무슨 죄를 지었던 것 같은데?

맞아 그런 범죄를 저질렀던 나쁜 놈이었지.

에잇 이 노래는 안 불러야겠다.

나는 왜 범법자의 노래를 안 부르겠다고 생각하는 거지?

죄의식? 배 아파서?

그래 이것에 관해 글을 한 번 써봐야겠다.


유레카


 세상 모든 명언이나 격언들은 나의 삶 안으로 들어올 때 비로소 살아 숨 쉰다. 멍 때리는 것의 중요성 역시 아르키메데스의 유레카로부터 시작해서 멍 때리기 대회에 이르기까지, 고대로부터 현대를 관통하며 수도 없이 많이 다뤄지던 주제였지만 그것을 실제로 실행하기 전까진 내 주변을 흘러 다니고 있지만 잡아낸 적 없던 듣기 좋은 말들 가운데 하나였을 뿐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 말이 내 삶으로 들어왔다. 나는 멍 때릴 것이고 그것은 반드시 나에게 영감을 가져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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