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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호 Jul 13. 2020

모닝 사려다가  페라리를 살 뻔했다

조금 더는 어디에서 멈출 것인가.

조금만 더 보태면
한 등급 높은 차를 살 수 있겠는데?


 자동차를 처음 구입하려고 여기저기에 조언을 구하다 보면 자주 듣게 되는 말이다. 조그마한 경차를 보러 갔다가 소형차를 보게 되고 소형차 살 돈이면 중고 준중형차를 살 수 있을 것만 같고 거기에 쪼끔만 더 보태면 중형차도 무리가 없을 것 같은데... 이런 식이라면 롤스로이스도 구입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조금 더, 조금 더 하다 보면 어느새 내 주머니 사정은 자세히 살펴볼 겨를도 없이, 끝없이 눈만 높아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게 잠시 백일몽을 꾸고 난 다음이면 힘차게 고개를 휘저으며 현실로 돌아와 내가 가지고 있는 예산을 고려하여 합리적인 소비를 진행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능력을 과신한 탓인지 아니면 그 정도는 질러줘야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가 생긴다거나 자기만족 등의 명분으로 백일몽을 기어코 현실화시키고야 마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사례가 비단 자동차에 국한되어 있지만은 않다. 어떤 소비를 함에 있어서 우리는 항상 가격을 따져보고 조금 더 나은 선택을 하려고 노력한다. 한데 가성비보다 소비에서 오는 우월감 때문에 일단 저지르고 마는 소비 행위는 조심해야 하지 않을까?


 약간의 무리가 되는 선에서 감행하는 선택이라면 만족도도 높고 그로 인해 파생되는 다양한 장점이 그 약간의 무리를 충분히 상쇄시켜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무리'로 다가오는 지점이 약간이 아니라 엄청난 부담으로 나를 압도해버릴 정도가 되어버린다면 그것은 오래 지나지 않아 반드시 나의 삶에 큰 타격을 주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이 분명하다.


 나는 이런 무리한 선택을 감행하는 이유가

얇은 귀와 자기 파악 부족, 허영심의 환장적인 콜라보레이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귀가 얇다는 것은 언제든지 타인의 관점으로 자신의 인생을 색칠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과 같다. 나의 인생을 살지 못하고 이리저리 휘둘려 다니며 산다는 것은 결코 나에게 행복을 주고 싶지 않다는 것을 몸소 실천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메타인지, 자기 파악 능력이 중요하다는 것은 학습 이론을 공부할 때 반드시 나오는 요소 중 하나이다. 이 자기 파악 능력은 공부할 때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삶을 살아가고 돈을 쓸 때에도 반드시 필요한 능력이다. 메타인지가 부족한 사람은 자신이 감당할 수 없고 책임질 수 없는 결정을 내려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게 한다. 허영심에 대해서는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무리한 선택은 밸런스를 무너뜨린다. 마치 드래곤볼에서 셀이라는 막강한 적과 대적할 때, 트랭크스가 근육만 무리하게 키워 잠시 파워를 올린 후 흥분 상태로 셀을 곧장 바닥에 패대기칠 것처럼 몰아붙여보지만, 한 순간의 무리한 파워업으로 인해 밸런스가 깨져버려 셀에게 손가락 하나 못 대보고 비참하게 패배하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삶에 있어서 밸런스는 매우 중요하다. 무리하게 한쪽으로 쏠려있는 삶은 그것을 오래도록 지속시킬 지구력을 갖추기가 힘들다. 투자와 소비 같은 경제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아이를 양육할 때에도, 독서습관을 기를 때에도 우리는 삶의 전방위에 걸쳐 균형을 잃지 않도록 유념해야 한다.


 남들의 이목을 최우선의 선택 기준으로 두고 내리게 되는 결정은 결과적으로 공허함을 가져온다. 우리의 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나다. 남들에게 보이는 시간은 아주 잠깐이지만 나와 함께하는 시간은 길다. 인생의 거의 대부분을 우리는 나와 함께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인생은 나와 함께하는 여정이다.

나는 친구이기도, 극복해야 할 대상이기도. 함께 가야 할 동반자이기도 하다. 나를 납득시키고 나에게 인정받고 나를 응원해줘야 한다. 그래야 어떤 일을 도모할 수 있고, 지치지 않을 수 있고, 오랜 시간을 투입할 수 있는 장기적인 프로젝트에 나를 온전히 던질 수 있다.


 적당한 수준에서 '조금 더'라는 유혹을 뿌리치고 밸런스를 유지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삶이라는 땅 위에 깊이 뿌리내리고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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