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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호 Aug 03. 2020

남의 손에 나의 몸을 맡기는 일

세신사와 함께하는 이만 원의 행복

 대학시절 친구들과 술 한잔을 하고 난 다음날이면 친구들의 자취방에서 부스럭거리며 일어난 다음 사우나를 하러 목욕탕에 가곤 했다. 하지만 취업  친구들과 함께 다음날 아침을 맞이할 때까지 이어지는 술자리를 더 이상 갖지 못하게 됨과 동시에 나의 목욕탕 방문은 멈추고 말았다.


그리하여 현재까지 거의 7~8년 동안 목욕탕을  일이 없게 되었다. 몸의 때는 본디 밀지 않아도 일정기간이 지나면 쌓이지 않는다거나, 원래 어느 정도 피부 위의 각질이 존재하는 것이 피부를 보호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등의 이야기에 힘입어 목욕탕에 가서 친구들과 서로 등을 밀어주지 않아도 더 이상 죄책감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가 최근 친구의 고향 방문과 함께 목욕탕에 가자는 이야기가  카카오톡 대화방의 주제로 떠올랐다.


 평소에 안 하던 것도 시험기간만 되면 왜 그렇게 재미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내가 처음 웹툰을 알게 된 시기가 임용고시를 준비하던 대학 4학년 때라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보면 수긍이 전혀 안 되는 일은 아니다.

그리하여 요일별로 웹툰을 섭렵하던 중, 목욕의 신이라는 웹툰을 만나게 되었다. 그 웹툰을 보며 어젠가 나도 한번 이런 프로페셔널한 세신사에게 나의 몸을 맡겨 내 몸의 피로와 찌꺼기들을 나의 몸에서 완전히 분리해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오랜만에 고향에 방문한 친구와의 대화는 오래전 생각만 하고 잊어버렸던 그날의 생각을 이루어줄 방아쇠를 당겨 주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어느 주말 늦은 오후쯤 만나 목욕탕에 가기로 하였다.


 목욕탕에 방문한 지 얼마나 오래되었던지 옷을 갈아입고 탕으로 들어가는 일조차 어색할 지경이었다. 주춤거리며 신발을 신발장에 넣고 옷을 벗은 뒤 탕에 들어갔다. 오랜만에 뜨끈한 탕에 몸을 담그고 가만히 눈을 감아보니 빠르게 흐르던 시간이 잠시나마 멈춘듯한 기분이 들었다. 눈을 감고 그 짧은 순간 동안 과거와 만나며 찰나와도 같은 휴식과 해방의 여유를 느끼던 순간을 깨뜨린 것은 다름 아닌 친구의 한마디 외침이었다.


너 때 민다며
저기로 가봐라 2만 원이면 될 거야


 친구의 안내와 함께 목욕탕 한 곳에 마련된 때를 밀어주는 곳, 세신사라는 한 번도 마주해 본 적 없는 낯선 이름을 가지고 있는 남자와 생애 첫 대면을 하게 되었다.


때를 좀 밀려고요.
누우시죠.


 간결한 대화와 함께 나는 스르륵 나의 몸을 뉘었다. 내가 평생 동안 목욕을 하며 한 번도 닿을 수 없었던 내 몸 구석구석까지 세신사의 손에 의해서 씻겨졌다. 때를 미는 것만으로는 본인의 직업윤리에 부합하지 못했는지 몸의 피로를 풀어주는 마사지와 마무리로 샤워를 하기 전 거품을 낸 타올로 온몸에 세재를 도포해 주는 것까지가 를 민다는 것의 전체 행위였다.

때를 다 밀고 난 다음 친구는 나에게 물어왔다.


"어땠어?"


"최고다!"


내가 요 근래 지출한 소비 중 가장 아깝지 않은 돈이었다. 그렇다. 이만 원으로 나는 행복을 맛보았다. 돈을 벌고 있지만 나를 위해 쓰는 것은 무엇이 있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자니 그다지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공과금과 대출금, 적금과 생활비를 쓰고 나면 남는 것이 별로 없는 생활 속에 한 푼이라도 더 모으기 위해, 혹은 나의 취향과 소비의 행복을 아직 깨닫지 못했기 때문일까? 나의 행복을 위해 돈을 쓴 것이 무엇이었는지 떠올려보려 애써 보았지만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친구들을 만나서였을까? 우리는 행복이란 무엇인가 이야기를 나누다가 다시금 소소한 것들이 주는 행복감에 대해 서로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이렇게 함께하며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것, 함께 목욕을 하며 개운함을 느낄 수 있는 것, 각자가 꿈꾸는 미래를 응원해 주고 혼자서 마주하고 있는 두려움을 조금이나마 덜어내 주는 것. 이런 게 행복이 아니겠느냐며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만끽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오늘의 이만 원은 나에게 깨달음을 주었고 행복을 선사해 주었다. 또한 피로를 풀어주고 몸을 깨끗하게 만들어주는 세신사라는 직업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것은 정녕 숭고한 직업이 아닌가, 타인에게 행복을 선사해 주고 활기와 빛나는 눈을 선물해 주어 하루를 산뜻하게 시작, 혹은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니 이것은 분명 대단한 직업임에 틀림이 없다고 말이다.


 그리하여 나는 마음먹었다. 삶의 소소한 행복과 작은 변주를 위해서 가끔은 세신사의 도움을 받겠노라고. 이렇게 서로 의지하고 도와가며 살아가는 것이 사회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며 내가 타인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다시금 고민해 볼 기회가 되었다. 1cm 다이빙이라는 책에는 미루다 보면 잊는 법이라는 말이 나온다. 나에게 행복을 주는 것이 무엇인지 지금 당장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꼭 내 삶 안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내가 무엇을 좋아했는지, 언제 행복했는지 잊어버리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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