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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호 Aug 15. 2020

글을 쓰며 달라진 점

관찰, 발산, 초연, 고독

2008년 무르팍 도사라는 예능프로그램에 황정민이 나와서 자신이 군대에 있을 때 친구가 교통사고로 죽은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절친한 친구였기에 어렵사리 휴가를 받아 나와서 친구의 유골을 산에 뿌렸다는 이야기였다.
정신없이 울다가 어느 순간 내가 지금 어떻게 울고 있는지, 어떤 호흡을 하고 있는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스스로를 관찰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한다. 절친한 친구가 죽었을 때조차 이 감정과 모습을 잊어버리지 않고 연기할 때 써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배우라는 직업이 그런 슬픈 직업이라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일상을 더 이상 일상으로 여기지 않고 매 순간을 기억하려는 그의 태도는 그의 직업 때문에 발현된 습관임에 분명하다. 한 개인으로 본다면 매우 슬프고 어려운 일이겠지만 이런 습관 덕에 그는 2020년 현재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하며 흥행과 연기력 모두 인정받는 대배우가 되었다.  


감히 그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글을 쓰다 보니 나 역시도 일상을 주의 깊게 바라보는 버릇이 생겼다.

일상을 놓치지 않고 바라보려는 노력 끝에 감사하게도 가끔 글감을 하나씩 얻곤 한다. TV를 보다가,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가, 음악을 듣다가, 목욕탕에 갔다가, 비 오는 것을 보다가, 계절이 바뀌는 것을 보다가, 책을 읽다가, 빵을 먹다가, 새로운 방법으로 라면을 끓여보다가, 공감되는 무언가를 마주하였을 때, 반대되는 생각과 마주하였을 때, 옛 생각이 문득 떠올랐을 때, 어디 글감 좀 없나 생각하며 지내다 보니 나의 일상의 구석구석에 글감이 숨어 있었다. 이렇게 지내다 보니 이전에는 분명히 두 눈으로 보고 있었음에도 눈을 감고 생활했던 것처럼 모든 것이 새롭게 다가왔다. 새로운 즐거움이 생겼고 새로운 말할 거리들이 생겼다. 이것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 마주했을 때 또 다른 즐거움과 행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또 다른 좋은 점은 받아들이는 것이 익숙했던 삶에서 내뿜는 것이 조금은 편안해졌다는 점이다. 글을 쓰다 보면 필연적으로 자신의 생각이 정교해지고 가지런히 정돈되는 듯한 느낌을 받는데, 타인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가 글을 썼던 주제가 대화의 화제로 올라올 때가 있다. 그때에는 예전과 비교해서 조금 더 나의 생각을 말하는 편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일단 글을 쓰면서 내 생각을 적절하게 배열해봤기 때문에 나의 생각이 나의 머릿속에 자리를 잡았다는 것과, 그 과정에서 나의 생각에 대한 믿음이 더욱 커졌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다시 말해 생각이 정리가 되었고 그 생각에 대해 자신감이 생겼다는 말로 대신할 수 있겠다.


또 하나의 장점은 비난에 초연해졌다는 점이다.

누군가는 글을 쓰는 것을 보고 유형의 것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말로만 떠드는 사람이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그런데 정말로 그러한가? 이것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구시대적 발언이라고 생각해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그렇게 비난하는 사람에게 묻고 싶다. 그렇다면 무형의 예술품들은 모두 가치가 없는 것이란 말인가? 음악은? 그림은? 영화는? 글도 마찬가지이다. 누군가가 글을 통해 위로를 얻고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었다고 한다면, 동기를 부여받고 새로운 생각을 해볼 기회가 되었다면, 그것이 무형의 가치를 생산하는 사람들이 얻는 보람이자 생산물의 가치일 것이다. 세상엔 좋은 글이 많고 나의 글이 보잘것없다고 한들 자책하지 않기로 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세상 좋은 글을 다 읽을 수 있는 것도 아니기에 나의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다면 그것으로 나와, 나의 글은 충분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기로 말이다. 글쓰기는 나와 내 주변을 먼저 변화시키는 과정이다. 이런 생각들을 하며 글을 쓰다 보니 타인의 비난에 조금은 초연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글을 쓰다 보니 깨닫게 된 것이 하나 있다. 글은 혼자 있을 때 잘 써진다는 것이다. 여기서 혼자란 물리적으로 혼자 있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정신적, 심적으로도 약간 외부와 단절되어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래서 글을 쓰는 사람들이 카페에 가고 산속에 들어가고 혼자서 칩거하는 생활을 했던 모양이다. 그런 의미에서 위대한 작품을 남긴 작가들은 얼마나 많은 철저히 외로운 날들을 보내왔을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의 외로운 날들이 있었기에 인류는 인생과 세월을 관통하는 위대한 고전을 만날 수 있었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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