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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천만 코드

스토리텔링 분석서

by 정 호

25년간 현장에서 영화제작에 참여하고 10년을 대학에서 강연한 저자 길종철은 가히 영화 산업과 학계 양측에서 인정받을만한 베테랑이다. 그런 그가 상업적, 대중적으로 성공한 국내 천만영화 8편을 분석하여 소위 잘 팔리는 이야기가 갖고 있는 스토리텔링의 8가지 특징을 집어낸다.


잘 팔리는 이야기의 첫 번째 특징. 주인공이 선명해야 한다. 단독 주인공, 집단 주인공, 복수 주인공 가운데 단독 주인공인 경우가 관객이 가장 몰입하기 쉽고 감정선을 따라가다 결말에 이르러 충만한 감흥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대중적으로 성공한 영화 가운데 단독 주인공 영화로는 <광해>, <명량>, <국제시장>, <변호인> 등이 있고 집단 주인공 영화는 <극한직업>, <신과 함께>, <괴물>, <7번 방의 선물>, <왕의 남자>, <기생충>, <실미도>, <파묘>, <청년경찰>, <어벤저스>, <국가대표>, <1987>이 있다. 다중 주인공 영화로는 <해운대>, <러브 액츄얼리>, <완벽한 타인>이 있다. 주인공 설정이 중요하고 그에 맞는 플롯을 명확히 짜야한다. 반적으로 예술영화는 다중주인공 전략을 많이 쓰고 대중영화는 단독주인공 또는 집단주인공 전략을 많이 쓴다.


<도둑들>은 다중주인공으로 시작했다가 중간에 단독주인공으로 플롯이 바뀌는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처럼 중간점에 플롯이 바뀌는 구조는 여러 장점이 있다. 반전의 묘미가 있고, 장르의 변경이 가능하며, 극적 긴장감이 높아진다. 특히 관객으로 하여금 지루할 틈 없이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과 히치콕 감독의 <싸이코> 역시 중간점에 플롯 전환으로 긴장감을 연출한다. 다중주인공과 플롯전환은 자칫 산만해질 수 있다는 단점이 있지만 확실한 '장르의 선언'과 '모티프'를 통해 관객이 혼란 속에서도 중심을 잡고 따라갈 수 있도록 이야기를 설계할 수 있다. <도둑들>은 범죄영화다. 범죄영화는 형사물, 조폭물, 스릴러, 케이퍼 무비 등으로 세분화되는데 도둑들은 그중 케이퍼 무비에 속한다. 범죄물에는 근본적 문제가 있는데 주인공이 범죄자라는 점이다. 범죄자는 나쁜 놈이기 때문에 관객이 감정이입을 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케이퍼무비에서 주인공을 설정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주인공이 그나마 가장 덜 나쁜 놈이고 더 나쁜 놈들과 싸워야 하며 범죄행위에 명분과 정당성이 있어야 한다. '모티프'란 서사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요소로서 특정한 감정이나 상황을 유발하는 장치를 뜻하는데 주로 소품이나 상징물로 표현된다. <도둑들>에서는 태양의 눈물이라는 보석이 모티프로 사용되며 <어벤져스>에서는 인피니티 스톤이, <기생충>에서는 냄새가 <7번 방의 선물>에서는 세일러문이 모티프로 사용된다. 이처럼 장르적 속성을 명확히 하고 모티프를 적절히 사용함으로써 다중 플롯, 백 스토리, 다중주인공 같은 어지러운 상황을 헤쳐나갈 수 있다. 인공은 가장 매력적이어야 하며 그 매력은 자신의 한계와 고난을 온몸으로 껴안을 때 그걸 지켜보는 관객이 자연스레 느끼게 된다.


잘 팔리는 이야기의 두 번째 특징. 주변 인물로 주인공을 빛나게 하라. 토리는 주변 환경과 맞서는 외면 이야기와 주인공 내부에서 벌어지는 자신과의 갈등 같은 내면 이야기로 혼합된다. 예술 영화에서는 내면 이야기의 비중을 높이고 대중 영화에서는 외면 이야기의 비중을 높인다. 그래서 대중영화는 표면적이고 직관적이고 쾌락적이어서 관객을 뜨겁게 만드는 데 반해 예술영화는 이면적이고 추론적이고 사유적이라 관객을 차갑게 만든다. 외면 이야기가 커진 경우 플롯 중심 영화라고 부르고 내면 이야기가 커진 경우를 캐릭터 중심 영화라고 한다. 상업영화에서는 외면 이야기를 메인 플롯으로, 내면 이야기를 서브플롯으로 표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광해>는 상업적으로 성공한 영화지만 외면적 이야기보다 내면 이야기에 집중한 영화다. 그런데 캐릭터의 내면을 영상으로 드러내기는 어렵다. 마음을 찍을 수도 없고 내레이션으로 계속 설명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인공의 내면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주변 인물을 활용해야 한다. 주인공 하선 주변의 다양한 인물과의 관계성을 통해 내면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든다. 도승지 허균은 하선(광대)을 발탁하며 멘토이자 친구의 역할을 한다. 조내관은 하선을 보좌하고 걱정한다. 하선에게 도승지는 아버지요 조내관은 어머니다. 기미나인 사월은 자신의 처지를 털어놓는 동생과도 같다. 하선은 사월을 통해 서민의 애환을 알게 된다. 호위무사 도 부장은 원칙주의자이며 목숨 바쳐 하선을 지킨다. 이런 상황과 관계성 안에서 하선의 리더십이 드러난다. 중전은 하선에게 욕망을 심어주는 인물이며 중전과의 약속을 지키는 모습을 통해 주인공의 따듯한 성품이 드러나게 한다. <광해>는 이렇게 액션 없이 이야기만으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하지 말고 보여주라는 격언에 따라 주변 인물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주인공을 최대한 보여줘야 한다.


잘 팔리는 이야기의 세 번째 특징. 진짜 같은 거짓말을 믿게 만들어라. 제로 일어난 일은 진실이 아니라 사실이다. 진실이란 사실에 대한 우리의 생각 그 자체다. <명량>의 흥행은 단순히 국민적 영웅을 다루어서라거나 국뽕에 호소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거짓말 같은 실화에 진짜 같은 거짓말이 절묘하게 버무려져 매력적인 이야기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기록으로는 알 수 없는 등장인물의 마음속을 탐험하여 이야기에 살을 붙인 것이다. 비슷한 예로 이준익 감독의 <사도>가 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사실에 대해 설득력 있는 토리텔링을 입힌 것이다. 토리텔링의 목적은 설득력과 신빙성의 획득에 있다. 특히 실화 소재의 경우 실제 사건을 충실하게 재현하는 것만으로는 능사가 아니다. 관객들에게 그것이 실제로 일어날 수밖에 없었음을 납득시켜야 한다. 그것이 서사적 진실이고 흥행 성공에 가까워질 수 있는 비결이다. 랑은 '두려움'을 핵심 테마로 잡아 이순신이 두려움을 느끼는 상황과 극복하는 과정을 아들과의 대화를 통해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또한 두려움으로 가득 찬 인물들의 얼굴 표정을 자주 클로즈업 하는데 여러 인물의 두려움을 반복적으로 관객에게 보여줌으로써 두려움 서사의 힘을 단단하게 고정시킨다. 토리텔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갈등 설정이다. 갈등이 설정되어야 캐릭터와 스토리가 나오기 때문이다. 등은 내면적 갈등, 개인적 갈등, 사회적 갈등, 환경적 갈등으로 세분화된다. 명량은 전쟁이라는 환경적 갈등을 맞닥뜨리고 있다. 거기에 장수들과 병사들 조정과 임금과의 충돌인 사회적 갈등이 더해지고, 아들과 심복 장수마저 출정을 만류하는 등 개인적 갈등이 추가된다. 이처럼 켜켜이 쌓인 외적 갈등은 내면적 갈등을 증폭, 부각한다. 명량은 모든 차원의 갈등을 담고 있다. 흥미롭게도 후속작인 <한산>에서는 오직 환경적 갈등에만 집중하는 이야기다. <명량>이 휴먼 드라마였다면 <한산>은 정통 전쟁영화인 셈이다. <인터스텔라>와 <마션>을 비슷한 대조군으로 뽑을 수 있다. <인터스텔라>가 내면에 초점을 맞췄다면 <마션>은 생존투쟁이라는 환경적 갈등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다.


잘 팔리는 이야기의 네 번째 특징. 주인공의 욕망을 찾아라. 다수의 영화에서는 한 인물의 탄생에서 죽음까지를 다루지 않는다. 야기에 힘이 빠지기 때문이다. 특정한 사건으로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보통인데 <국제시장>은 예외적으로 한 인물의 일대기를 그린다. 그것은 주인공의 한결같은 욕망을 찾아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자칫 다큐멘터리가 될 가능성이 있다. 국제시장에서 주인공 덕수의 한결같은 욕망은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려는 마음이다. 족을 지켜야 한다는 아버지와의 약속이 메인 플롯이 되어 10년 단위의 4가지 개별 사건은 통일된 이야기로 엮인다.


잘 팔리는 이야기의 다섯 번째 특징. 이야기 속에 변화를 담아라. 인공과 립하는 세력을 세분화하라. 영화 <변호인>에서 주인공 우석은 3단계의 갈등 상황과 마주한다. <변호인>의 핵심 주제는 정의인데 이 정의를 방해하는 불법 세력이 나온다. 주인공의 정의를 방해하는 첫 번째 부정의 세력은 동료집단이다. 주변 변호사들에게 멸시를 당하고 부동산 등기 업무 때문에 사법 서사들의 항의를 받는다. 이때 주인공과 대립하는 가치는 부당함이다. 이후 영화 중반 국밥집 아들의 변호를 맡으며 보다 더 큰 갈등인 불법과 마주하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승리하는가 싶었지만 불법보다 더 강력한 권력의 전횡과 마주하며 주인공은 좌절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은 인권변호사로 진화를 거듭하며 끝까지 정의를 위해 싸우겠다는 모습을 보이며 영화가 끝난다. 완수하지 못해도 계속해서 나아가겠다는 의지를 감독은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이처럼 다층적인 갈등상황과 변해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이야기는 생동감을 갖는다. 스토리텔링의 핵심은 우여곡절 끝에 발생하는 변화를 담는 일이다. 주인공의 상황, 상태, 존재의 조건 등이 변화해야 한다. 예를 들어 <베테랑>에서는 영화 초반 범죄로 가득한 불법적인 세상이 영화가 끝나며 정의로운 세상으로 변한다. 이러한 메시지 전달은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전한다. 릭터의 변화를 중점으로 둔 이야기를 쓰려면 단계를 잘 나누어 단계별로 변화하는 모습을 충분히 보여줘야 한다.


잘 팔리는 이야기의 여섯 번째 특징. 관객의 카타르시스를 끝까지 파고들어라. 7번 방의 선물은 대중에게도 평론가에게도 천만 영화 중 가장 박한 평가를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타 배우 없이, 화려한 볼거리 없이 오직 이야기의 힘으로 천만 관객을 불러들였으며 튀르키예, 필리핀, 인도네시아에서 각각 리메이크되어 모두 흥행에 성공했다. 이는 이 영화가 어떤 보편성이 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7번 방의 선물은 몇 가지 장치를 활용하여 관객의 집중도를 높인다. 주인공이 누명을 쓰고 벗어난다는 원형적인 이야기를 비틀고 정의가 이긴다는 권선징악 서사를 거부한다. 또한 부녀 사이라는 키워드를 집어넣어 관객의 몰입을 유도한다. 여기에 딜레마 상황을 추가로 제시해 관객의 몰입도를 심화시킨다. <광해>에서 주인공 하선이 왕이 될 것인지 광대로 남을 것인지 선택하게 하는 장면이나 <명량>에서 탈영병 오상구가 잡혀와 이순신에게 살려달라고 애걸할 때 이순신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고뇌하게 하는 장면 <매트릭스>에서 네오가 빨간 약과 파란 약을 두고 고뇌하는 장면 등은 모두 딜레마적 상황에 놓인 주인공의 모습을 그린다. <다크 나이트>를 통해 딜레마 상황 설정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7번 방의 선물> 역시 주인공 용구는 법정에서 최후변론을 앞두고 자신의 생존과 딸의 안전 사이에서 고민하게 된다. 결국 딸을 위해 자신의 혐의를 인정하는 것으로 아버지의 희생과 부성애가 관객에게 전해진다. 지만 여기서 끝났다면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긴 힘들다. 그래서 <7번 방의 선물>은 시간이 흘러 장성한 딸 예승이 아버지의 무죄를 입증하는 이야기를 추가한다. 이는 <변호인>의 결말구조와 비슷하다. 시점이 다른 두 이야기를 결합할 수 있는 액자구조를 활용한다.


잘 팔리는 이야기의 일곱 번째 특징. 삶의 아이러니에 주목하라. <서울의 봄>을 통해 아이러니 사용법을 배워보자. 유신체제가 붕괴되고 민주화 시대가 열릴 것이라 기대한 국민의 열망이 담긴 상징적 용어를 비극적 내용의 영화 제목으로 사용함으로써 그 비극의 파장은 더욱 커진다. 비슷한 예로 <화려한 휴가>, <인생은 아름다워>가 있다. 또한 구조적으로 선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우지 않고 악인이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형식을 취함으로써 일반적인 주인공 서사를 뒤트는 아이러니로 몰입감을 높인다. 말 역시 선인이 패배함으로써 일반적인 형식에서 벗어난다. 이태신에게 이순신을 입히는 여러 장면이 나온다. 사즉생이라 쓰인 액자와 연병장 앞에서의 연설, 광화문으로 향하며 이순신 동상을 바라보는 행위, 인물의 이름 이태신 역시 이순신을 떠올리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태신은 이순신과 달리 패배한다. 이런 아이러니가 관객의 마음을 울린다. 영화의 결말부 악한 승자는 파티를 벌이고 선한 패자는 고통받는 아이러니한 장면을 대조시켜 보여줌으로써 감정을 고조시킨다. 엔딩 테마곡 군가 <전선을 간다>는 군가와 어울리지 않게 감성적이다. 이런 아이러니가 관객에게 깊은 여운을 남긴다. 극적 아이러니 또한 압권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관객은 이미 결과를 알고 있다. 그래서 선인들의 불굴의 의지를 바라보며 두렵고 불안한 마음이 증폭된다. 관객이 결말을 알고 시작하는 극적 아이러니는 관람객의 감정을 증폭시킨다.


잘 팔리는 이야기의 여덟 번째 특징. 지킬 것과 새롭게 할 것을 명확하게 하라. 여기서는 속편 제작 시의 유의할 점에 대해 다루고 있다. 지켜야 할 것은 주인공의 캐릭터, 같은 배우를 유지할 것, 일정한 플롯 패턴, 시리즈의 세계관 등이다. 바뀌어야 할 것은 빌런.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감이다. 어떻게 관객으로 하여금 공감대를 끌어낼 것이냐 하는 고민을 작품 구성하는 내내 끌고 가며 앞서 이야기한 여덟 가지 특징을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것이 대중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늘 의식해야 할 지점이다. 시나리오를 완성하기 위해 로그라인, 시놉시스, 트리트먼트 등을 순차적으로 구조화하여 이야기를 만들 준비를 해보자. 특히 시놉시스 단계에서 스토리 DNA(주동인물, 초목표, 반동인물, 동기)를 점검해야 한다. 스토리 DNA를 엮어낼 때 고민해야 할 것이 바로 캐릭터와 플롯이다. 캐릭터와 플롯을 전면에 내세우고 그 이면에 주제가 드러나도록 직조한다. 관객을 집중시키기 위해서는 갈등, 딜레마, 아이러니를 순환반복으로 사용해야 한다. 결말에 이르러서 만족스러운 정서적 경험으로 정리되도록 하기 위해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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