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진짜! 진짜다
단편마다 각기 다른 형태의 여운이 남는다. 어떤 이야기는 생각해 본 적 없어서, 어떤 이야기는 꼭 내 이야기 같아서, 어떤 이야기는 충격적이고 어떤 이야기는 서글프고 어떤 이야기는 무섭기도 해서, 그렇게 성해나 작가는 여러 이야기로 독자를 그 자리에 잠시 멈춰 서게 만든다. 소설 <혼모노>는 진짜란 무엇인지, 진짜에 도달할 수 있는지, 진짜였던 시절과 가짜로 살아가는 시절, 스스로 진짜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가짜가 아닐까, 진실과 거짓의 오묘한 경계를 다룬다.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대부분 자신이 "진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소설을 읽다 보면 그들이 정말 진짜인지, 진짜이고 싶어 하는 가짜인지, 한때 진짜였던 사람인지, 진짜가 되어가고 있는 사람인지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 생각은 곧바로 독자에게 옮겨 붙어 나는 진짜로 살아가고 있는지 흉내만 내며 살고 있는 사람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소설 혼모노에는 총 7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그중 첫 번째 이야기 <길티클럽: 호랑이 만지기>는 마지막 페이지에서 주제 의식을 명료하게 드러낸다. 치앙마이에서 이빨과 발톱이 빠진 채 사람들과 사진을 찍기 위해 널브러져 있는 벵골 호랑이를 쓰다듬으며 주인공은 어쩐지 죄를 저지르는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흥분한다. 그것은 죄의식을 동반한 저릿한 쾌감, 지독하고 뜨겁고 불온하며 허무한 그런 감정상태, 그것은 언젠가 느껴본 적 있는 감정이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감독을 추앙해 마지않았던 자신의 과거가 겹치며 불쾌한 희열을 느낀다. 그것은 떨쳐내고 싶은 감정이지만 그럴 수 없다. 이미 일어난 일은 없던 일이 될 수 없으니까. 길티 클럽은 전형적인 3막 구조를 따른다. 1막에서는 주인공(인물)을 설명하고 길티클럽(배경)을 소개한다. 2막에서는 현학적인 대화와 씨네필이 아닌 주인공을 소외시키는 기존 회원들의 은근한 경멸이 분위기를 고조시키다가 미지 선생님이 갈등을 정점으로 이끈다. 그리고 마침내 인물들이 추앙하는 김곤의 GV행사장에서 김곤이 대중에게 자신의 잘못에 대해 사과를 하며 이야기의 핵심을 건드린다. 3막에서 치앙마이로 배경을 옮기며 주인공의 감정상태를 설명하고 마무리한다. 1막의 관전 포인트는 길티 클럽에서 주인공이 느끼는 묘한 불편함과 기존 회원들과 동일시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다. 이는 김애란의 소설 <안녕이라 그랬어>의 단편 <홈파티>에서 느꼈던 것과 비슷한 결의 감각을 되살아나게 한다. "진짜"라고 생각하는 "그들"사이로 섞여 들어가고 싶은 마음, 하지만 나는 "진짜"가 아닌 것 같아 그들과 나 사이에 보이지 않지만 확실히 세워진 어떤 벽이 있는 것 같은 감각. <길티클럽>은 그렇게 자신을 영화광이자 김곤이라는 영화감독(사회적 물의를 일으킨)의 진실된 팬이라 생각했던 자신이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는 과정을 그린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길티 플레져를 느끼는 인간의 모순에 대해 다룬다. 최근 읽었던 소설 작법 책에서 "가짜를 진짜처럼 느끼게 만들라"라고 했던 부분이 생각난다. <길티클럽>은 이게 소설인지 현실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인지 모호한 감각을 느끼도록 여러 장치를 마련한다. GV시사회라던지 치앙마이 같은 구체적인 장소를 빌려오는 것이 그렇고 인불갤, 듀체스 드 부르고뉴 같은 실존하는 소재들을 끌어온 것이 그렇다. <길티클럽>은 제목에서 대놓고 드러내고 있듯 길티(죄책감)를 다룬다. 그 죄책감은 작품의 주인공을 통해 선연히 드러난다. 일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다며 영화판에서 그 정도는 흔하게 벌어지는 일이라며 죄를 지은 감독을 두둔하는 길티클럽 회원들, 그들과 동일시되고 싶어 뭔가 꺼림칙한 감정을 느끼면서도 그들의 생각을 받아들이는 주인공, 양자 모두 결국 GV 행사장에서 영화감독 김곤이 물의에 대해 사죄하자 허망하게 무너지고 만다. 우상이 무너지지 않길 바라는 추종자들은 우상이 스스로 죄를 인정하자 더 이상 그의 죄를 옹호할 수 없게 된다. 그것은 추종자들에게 죄책감을 유발한다. 단편 <길티클럽>은 집착, 허영, 가식을 고발하고 소속감의 허무를 드러낸다. 소설의 첫 장면에서 영화감독 김곤은 인스타그램에 치앙마이에서 벵골 호랑이를 쓰다듬는 영상을 업로드한다. 그 게시물에 달린 수많은 댓글 가운데 '역시 호랑이도 썩은 고기는 안 먹고 가린다'는 댓글이 주인공의 눈에 띄는 이유는 죄를 지은 사람이 과연 진짜 감독으로 추앙받을 가치가 있느냐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죄를 지은 감독은 진짜 감독인가 가짜 감독인가, 그런 감독을 존경해 마지않는 씨네필들은 과연 진짜 영화광인가 감독의 명성을 뒷배 삼아 자신의 이득을 도모하려는 모사꾼인가, 그들 사이에 조려 앉아 자신을 김곤의 찐 팬이라고 인정받고 싶어 하는 주인공은 과연 어떤 "진짜"가 되고 싶은 것인가.
두 번째 이야기 <스무드>는 경계인에 대한 이야기다. 미술가 제프의 매니저로 일하는 듀이는 교포다. 한국인이지만 미국에서 나고 자란 듀이는 한국에서는 이방인 그 자체다. 한국말을 정확히 알아듣지 못하고 지리적, 문화적 배경지식이 전무하다. 그저 외형만 한국인의 모습을 하고 있을 뿐이다. 제프의 3번째 한국 방문 스케줄을 위해 먼저 한국에 입국해 일정을 확인하고 조율하는 듀이는 남는 시간 산책을 하다가 우연히 어느 집단과 행동을 함께하게 된다. 외국인인 듀이의 눈에 그들은 그저 친절하고 애국심이 강한 이들로 비친다. 다만 이상한 것은 젊은 사람이 거의 없고 노인들로만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입에 안 맞는 음식, 소속집단과 태생집단이 달라 느껴지는 미묘한 이질감과 불편감, 동류라고 생각했던 이에게 느끼는 이질성 등으로 작품 전반에 긴장감을 부여한다. 듀이는 미국인인가 한국인인가. 듀이는 사우나보다 일광욕을 좋아하고 젓가락보다 나이프와 포크에 능숙하며 타이극기보다 성조기가 더 반가운 사람이다. 그는 분명한 미국인이다. 듀이를 바라보며 제프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군요, 나보다도 더 미국인 같다"라고 말할 정도로 듀이는 한국에 무지하다.
소설 <스무드>는 제목과 제프의 작품세계를 통해 한국인의 특징을 짚어낸다. 유독 한국인들이 제프의 작품을 좋아한다는 큐레이터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제프의 작품세계는 매끈하다. 결핍도, 불안도, 비판도 없다. 그저 그렇게 스무드하게 매끄러운 제프의 작품이 유독 한국에서 인기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좋은 게 좋은 것, 튀지 않고 분란을 일으키지 않는 것을 중요시 여기는 사회분위기 때문은 아닐까.
"제프의 작품에는 의도도 동기도 비밀도 없었다."(71p) 그러니까 제프는 그저 마음 가는 대로 작품을 제작했을 뿐이다. 그렇게 스무드하게 만들어진 창조물에 사람들은 여러 의미를 갖다 붙였고 특히 한국인들이 그 매끈함에 열광했다. 게스트룸에 묵으며 스스로를 적응이 빠른 사람이라 정의했던 듀이는 어색했던 집회장소에서는 도무지 적응이 안 된다며 정체성의 충돌을 느낀다. 그럼에도 시간이 흐르며 듀이는 점차 타이극기 부대 집회 노인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알 수 없는 뻐근한 소속감을 느낀다. 그리고 종국에 가서는 알 수는 없지만 좋은 하루였다고 그날의 기억을 매듭짓는다. 소설 <스무드>는 럭셔리 아파트, 한국 고유 식재료, 태극기부대, 대구 등을 통해 한국의 일면을 드러내며 의외의 장소에서 의외의 어우러짐이 발생하는 장면을 재미있게 그려낸다. 종로라는 친숙한 공간과 그곳에서 벌어지는 집회라는 일상적 사건을 소재로 이방인이 느끼는 소속감에 대한 혼란, 경계인으로서 느끼는 정신적 충돌 등을 재치 있게 표현하며 그와 동시에 우리 스스로 들여다볼 수 있는, 들여다봐야 하는 한국적 사태를 따듯하게 그린다.
세 번째 이야기이자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혼모노>는 신을 모시던 박수무당이 자기가 모시던 신을 빼앗기게 되면서 자신의 존재를 위해 투쟁하는 이야기다. 문수는 비록 모시던 신을 빼앗겼지만 이야기의 절정에 이르기까지 단념하지 않고 무당으로서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남을 위해 기도하고 살을 풀었던 자신의 과거는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오로지 무당으로서 자신이 지켜왔던 어떤 신념, 삶의 자세를 끝까지 밀고 나가고자 하는 문수의 두 눈에는 안광 이상의 것이 뿜어져 나오는 듯하다. 성해나 작가는 어느 인터뷰를 통해 작품 혼모노에서 진짜인지 가짜인지 본질 다툼에서 벗어난 사람을 그리고자 했다고 말한다. 문수라는 캐릭터를 통해 진짜가 아니어도 진짜처럼 살 수 있는, 진짜처럼 살고자 하는 사람의 모습을 그려낸다. 문수의 그것은 목숨을 건 일생일대의 사투처럼 보인다. 진짜처럼 산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목숨을 걸고 피를 흘릴 각오를 해야 하는 것. 나를 가짜라고 욕했던 사람들이 놀라 나뒹굴도록 만드는 것. 그것은 보통의 각오로는 도달하기 힘든 영역이다.
네 번째 이야기 <구의 집:갈월동 98번지>는 남영동 대공분실을 모티프 삼아 사유하지 않는 인간의 유해함을 그린다. 우리 시대의 비극적 장소인 남영동 대공분실을 통해 두 건축가를 내세워 인간의 추악한 면모를 그린다. 교수 여재화는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인식할 수 있지만 행동하지 않는 인간이다. 한마디로 기회주의자다. 제자 구보승은 극단적으로 합리적인 인간이지만 사유하지 않는 탓에 그 합리성이 극도의 비인간성을 발현시킨다. <구의 집>은 공간이 인간의 존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사유를 미루면 어떠한 방식으로 폭력에 동의하게 되는지를 적나라하게 그린다.
다섯 번째 이야기 <우호적 감정>은 겉과 속이 다른 공동체라는 주제를 경기도 외곽 시골마을과 스타트업 회사 직원들 간의 분위기를 통해 잘 표현해 낸다. 겉으로는 우호적으로 보이는 공동체가 뒤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작동되는지, 인간의 탐욕과 문제해결 방식에 대한 가치관 차이가 어떤 불협화음을 빚어내는지, 탁월한 관찰력과 현장을 찍어 보여주는 듯한 묘사로 색다른 배경을 익숙한 배경으로 치환하는 데 성공한다. "가게 안은 지나치게 따듯했고 맥주는 이가 시릴 만큼 차가웠다"는 마지막 장면의 비유는 우호적 감정이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기막히게 표현해 낸다. 단편 <우호적 감정>의 멋진 비유, 재치 있는 소재, 상황과 기가 막히게 얽히는 대사와 장면은 잘 준비된 재료를 적재적소에 사용한 듯한 느낌을 받게 한다. 특히 마지막 장면의 건배사는 평등과 공존의 가치가 위계와 자본의 가치에 압도당하고 마는 기막힌 장면을 탁월하게 들춰낸다.
여섯 번째 이야기 <잉태기>는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손녀이자 딸인 서진을 사이에 두고 벌이는 갈등과 과보호에 대한 이야기다. 마사지숍, 원정출산, 사립초, 한약, 성명학 등 현실적인 소재를 끌어와 이야기의 몰입도를 높인다. 두 사람이 손자이자 자식인 서진을 위하는 마음을 사랑일 테지만 그 방식이 너무 기괴해서 읽으면 읽을수록 끔찍함을 느끼게 된다. 소설 <혼모노>에 수록된 단편들은 모두 강력한 클라이맥스를 향해 달려가는데 <잉태기> 역시 마지막 공항에서의 대결씬은 가히 엄청난 파열음을 내며 감정을 폭발시킨다.
마지막 일곱 번째 단편 <메탈>은 어쩌면 모두가 가장 편하게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다. 밴드부에서 만난 남고생 셋이 꿈을 좇다가 현실을 맞이하며 서로 멀어지는 이야기다. 세 친구는 밴드부에서 헤비메탈을 공유하며 청춘의 시절 함께 꿈을 나눈다. 하지만 그들 중 한 친구가 수능준비를 시작하며 관계에 묘한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한다.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한때 같은 꿈을 꿨던 친구들은 세월이 지나 각자의 길을 간다. 조현은 인서울 전기공학과에 진학하고 시우는 재수 실패 후 아버지의 사업을 돕는다. 우림은 부모의 펜션일을 도우며 근근이 음악에 대한 열정을 이어가지만 다른 두 친구는 그런 것 따위는 잊어버린 지 오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불과 2년의 세월이 지났을 뿐이지만 세 사람의 거리는 이미 좁힐 수 없을 만큼 멀어져 있다. 스물두 살 홍대 라이브 클럽에서 옛 추억에 젖어 메탈 공연을 함께 감상하며 세 사람은 동시에 무언가를 느낀다. 청춘을 지나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어봤음직한 친구들 간의 이야기는 잔잔하게 마음을 적신다.
이야기들이 하나하나 너무 재미있어 가장 재미있는 단편을 꼽기가 어렵다. 이건 확실히 두 번 읽어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넷플릭스 왜 보냐는 박정민의 말이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