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업에 진지한 사람들
도서 <배우와 배우가>는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으로 대중에게 얼굴을 알린 김신록 배우가 다른 배우들과 연기에 대해 나눈 깊은 밀도의 대화를 정리한 인터뷰집이다. 김신록 배우는 이것이 인터뷰집이기도 하지만 자신에겐 연기 이론서이자 실천서라며 동료들과의 대화가 자신의 연기와 삶에 새로운 하늘을 열어준다고 말한다. 그 사유와 영감이 독자들에게도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서두에 밝힌다. 그녀의 바람대로 이 책은 연기나 배우와 관련 없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충분한 사유의 기회를 제공한다.
수많은 몸의 가능성 안에서 무언가가 결정되기까지 느껴지는 긴장감, 잠재태와 현실태 사이에서 머물러 있는 힘. 어디로든 갈 수 있는 선택의 순간에 경험되는 역동적인 가능성의 상태를 '사츠'라고 명명합니다. -29p
덴마크의 연출가 바르바다는 행동에 앞서 모든 힘이 응축되어 보류되어 있는 상태를 '사츠'라고 명명했다. 이 사츠는 근육적, 정신적, 신경학적 사츠로 세분화되는데 공통점은 극도의 각성 상태로 응축된 에너지가 어딘가로 튀어나가기 직전에 배우에게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연극 이론을 모르는 일반인으로서 불현듯 100미터 달리기 출발선에 서 있을 때의 상태, 강연이나 공연을 시작하기 전 무대 뒤편에서 대기하고 있을 때의 상태 그런 것들이 떠오른다. 이 '사츠'상태는 사실 배우들에게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연극 용어이긴 하나 삶의 전반을 펼쳐놓고 보면 어떤 큰 결정을 앞두었을 때, 혹은 순간적으로 기민하게 반응해야 할 때, 배우가 아닌 사람들도 '사츠'상태를 경험하게 된다.
지금 내가 눈동자를 오른쪽 끝까지 보냈더니 내 오른쪽에 있는 커피 컵이 눈에 들어온다. 곧이어 저 커피가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온다. 커피의 맛, 향기도 느껴진다. 그런데 여기서 턱을 반대쪽으로 살짝 당기면, 그 반대 방형이 주는 에너지로 인해서 커피는 마시고 싶지만 마실 수 없는 상황이라거나 마시면 안 된다는 해석이 내게 생겨난다. 여기에 다른 신체 부위 활동을 계속 추가할 수도 있다. -중략- 이처럼 조형은 의식을 불러오고 의식의 흐름은 다시 몸을 불러온다. 이렇게 조형과 의식의 흐름을 계속 따라가면서 훈련하는 것을 '플라스티크 리버'라고 한다. -70p
형태가 의식을 불러오고 의식이 새로운 형태를 이끌어내는 작용, 연극에서는 이를 조형훈련(플라스티크 리버)이라는 개념으로 정의하는 모양이다. 연극배우들의 심도 있는 대화를 따라 읽다 보면 이것이 연기에 관해 나누는 대화인지 철학에 관한 대화인지 헷갈릴 정도로 깊이가 남다르다. 모든 배우들이 이렇게 깊고 체계적인 훈련을 하는 것은 아닐 테지만 이런 식으로 자기 분야에 대해 깊은 공부를 이어가는 사람들은 언제나 존경스럽다.
잘하는 배우들은 절대 틀리지 않아요. 흐트러지지 않아요. 그런데 훈련이나 추구하는 것들이 완벽하게 갖춰진 채로 무대에 오를 때 느껴지는 즐거움도 있겠지만, 배우가 무대에서 틀리거나 무너지는 지점을 관객들이 재미있어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 웃음이 상업극에서 보여주는 웃음과는 다른 방향의 즐거움이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중략- 창작자도 관객도 웃음에 대한 취향, 코미디의 영역을 확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확장할 수 있는 방식을 찾아야죠. -84p
1인 극장 매머드머메이드를 운영하는 김은한이라는 인물은 기존의 정형적인 연기, 합의된 앙상블보다는 비정형적이고 즉흥적인 연기, 상황, 혹은 그 외의 새로운 연기와 웃음을 개척하고자 한다. 그에 대해 김신록 배우는 "합의된 미감이 아닌 새로운 미감을 발견하는 일은 중요하다"라고 응한다. 하지만 그것이 어설픔에 머물지 않고 퀄리티를 확보할 수 있으려면 무엇이 담보되어야 하느냐는 질문에 "관객이 즐거워야 된다"라고 대답하는 김은한 배우는 자신의 철학을 정립하기 위해 일본의 만담과 라쿠코라는 전통에서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맥락을 알 수 없는 웃음인 '슈르'라는 개념을 언급한다. 김은한 배우는 자신은 기본적으로 스승을 두지 않는 것이 모토라며 성공을 위한, 혹은 잘 다듬어져 보이는 기존의 정형화되고 제련된 배우와 연출가의 길 이외의 새로운 방향을 찾아가겠다고 말한다. 이는 사실 자신이 기존의 위대한 배우들에 가 닿지 못할 것을 깨달은 뒤 살아남기 위해 찾아낸 방식이라고 말하지만 이런 다양성 덕분에 새로운 미감이 세상에 드러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늘 보아오던 사물이나 사람이 갑자기 생경하게 들어오는 순간이 있다. 그 이미지에 사로잡힌다. 그런 순간을 만나면 사진이나 글로 기록해 놓는다. 그것을 인서트로 사용한다. 이후 시간을 들여 내가 왜 그것을 생경하게 느꼈는지 생각해 본다. 그러면 이전에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을 알게 되는 순간이 온다. 그때 공연을 만든다. -중략- 인서트는 단순히 비주얼이라기보다 복합적인 감각이다. 총체적인 경험으로서의 이미지, 삶에서 이런 연극적인 순간을 계속 발견하려는 취향이 내게 있는 것 같다. - 150p
나는 자신을 '너무나 미약한 하나의 점'이라고 생각한다. 이 점을 애써 찍지 않으면 사회와 세상과의 관계에서 내가 자꾸 사라져 버리는 것 같다. 내가 인서트를 모으고 그것의 정체를 추적하고, 그것들을 무대에 올리는 이유는 나와 세상을 연결 지으려는 노력의 발로인 것 같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적인 순간의 발견이 가장 보편적인 것이 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미약하게나마 점을 찍는 것, 이 점을 찍음으로써 다른 점들과 연결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점을 찍는 펜대를 놓지 않는 것에 모든 마음을 다 쓰고 있다. - 153p
익숙한 것이 생경하게 느껴지는 순간을 포착하고 이미지에 대해 생각하고, 그것으로 글을 쓰고 연극을 만드는 배선희 배우의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야기를 먼저 짜고 장면을 삽입하는 방식이 아니라 장면을 먼저 포착하고 그 형태에서 영감을 떠올리는 방식은 내가 글을 쓰는 방식과 비슷하다. 인서트의 정체를 추적하다 보면 내 삶의 작은 순간이 사회, 세계와 연결되며 이해되는 시간이 온다는 말에 공감이 된다. 내가 사라지는 것 같아 두렵다는 말, 나와 세상을 연결 지으려 노력한다는 말, 사적인 순간이 보편적인 것이 될 수 있다는 믿음, 점을 찍는 펜대를 놓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말, 나의 생각과 완벽히 합치되는 문장을 발견할 때의 희열이 있다. 배선희 배우의 인터뷰가 그랬다.
능청이라니 너무 부럽다. 나는 요새 그럭저럭 나이 들고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말하고 글 쓰고 했더니 너무 엄숙해졌다. 망했다. -168p
판소리 창작자이자 소리꾼인 이자람 배우와 인터뷰 도중 김신록 배우가 되뇐 말에 웃음이 터졌다. 글을 쓰고 공식적인 자리에서 발화 기회가 늘어나자 너무 엄숙해져버리고 말았다며, 그것을 망했다고 표현하는 것에 공감한다. 말에는 힘이 있다. 글은 정제된 탓에 더욱 그렇다. 글 쓰는 사람들이 진중한 매력은 있지만 능청스럽고 유머러스함이 부족한 이유는 글쓰기라는 행위가 갖고 있는 본질적 무게감 때문이다. 내가 글쓰기를 그만둬야 될까 고민했던 지점도 바로 이쯤이다.
단순히 '어떻게 연기를 잘할 것인가'만을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과 인식 사이의 연결성, 무대 위에서의 현존, 등 깊이 사유하는 연극인들의 대화를 읽다 보니 어느 분야건 깊숙이 파고드는 사람들은 반드시 어느 시점에서 철학적 사유와 마주하게 된다는 것을 새삼 떠올리게 된다. 우리가 삶을 단순하게 사회적인 방식으로만 이해하는 것 같다며 규격화된 경험에서 벗어나는 순간이 오히려 진짜 삶이라고 생각한다는 김진영 연출가의 말은 농밀한 삶을 감각하고자 하는 이들의 생각을 대변한다.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뚜렷한 결과물이 나오지 않아도, 스스로 만족하지 못해도, 자신만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며 치열하게 삶을 살아내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서 살고 있다. 정답처럼 여겨지는 길이 아니고, 사람들의 동의를 얻기 힘든 길일 때도 있지만 그들은 고요하게 자신의 신념을 만들어내고, 그 신념을 단단하게 만들기 위한 수련의 시간을 보내며 살아간다. 그런 사람들의 삶은 절반쯤은 순교자의 삶과 닮아있다. 고되고 팍팍하고 평범하지 않고, 무엇보다 외롭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의 생을 온전히 느끼기 위해 자신의 영혼과 육체를 끊임없이 들여다보고 매만진다. 그렇게 부서졌다 다시 세우는 과정을 반복하며 집중도 높은 생, 주체적인 삶 속에서 온 시간을 보낸다. 이 책처럼 그런 이들의 삶을 세상에 조명하는 작업물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런 작업물을 접하는 사람이 비록 소수라고 할지라도 그것은 분명 또 다른 곳에서 외로운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에게 충분한 위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