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토스, 파토스, 로고스, 그중 제일은 에토스라
설득의 수단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 첫 번째는 화자의 인품에 있고, 둘째는 청중에게 올바른 (목적한) 태도를 만들어 내는 데 있으며, 셋째는 논거 자체가 그럴듯한 실제 사례를 들어 증명되는 한에 있어서 논거 그 자체와 관련을 맺는다. -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에 따르면 설득에는 세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에토스, 파토스, 로고스가 바로 그것인데 에토스는 말하는 사람의 인품(삶 전체, 또는 아우라), 파토스는 듣는 사람의 욕구나 열망, 로고스는 논리적 근거다. 즉, 말하는 이가 신뢰할만해야 하고, 듣는 사람이 준비되어 있어야 하며, 설득의 논리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이들 가운데 가장 강력한 설득의 조건은 에토스다. 논리적인 근거가 충분해도, 설득 대상의 욕구와 열망을 충족할 수 있어도 설득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주장하려는 바를 자신의 삶으로 증명해 낸 사람의 말에는 강렬한 기운이 깃든다. 그것은 바로 오랜 시간 실천으로 쌓아온 아우라(에토스)가 있기 때문이다. 말한 대로 살고, 살아온 대로 말하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말의 힘이 에토스인 셈이다. 우리는 에토스가 결여된 사람들 때문에 실망하거나 분노한다.
직장에서, 뉴스에서,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가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은 각자 자신이 생각하는 올바름에 대해 말한다.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어려운 이유는 에토스가 없는 탓이다. 민주적이지 않으면서 민주적인 것처럼 보이고 싶어 하는 리더들, 평등을 외치면서 누구보다 권력을 탐하는 무리들, 부의 이미지를 팔아 부자가 되려는 모사꾼들, 올바르지 않은 삶을 살면서 올바름을 입에 담는 교육자와 성직자들,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보면 어지러워진다.
그래서 갈등을 멈출 수 없다.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삶으로 증명하는 사람이 흔치 않기 때문이다. 이는 무리에 섞여 살아야 하는 인간이 가진 태생적 한계다. 무리 속에 머물기 때문에 빚어지는 위선과, 모순과, 오해와, 이해관계의 뒤섞임은 인간이 올곧게 살아가기 힘들게 만든다. 그럼에도 그 어려운 삶을 살아내는 이들이 있다. 뱉은 말을 지켜내 삶으로 증명하는 사람들, 삶이 곧 말이 되는 사람들. 그들은 많은 것을 가지 쳐낼 수밖에 없다. 그런 삶은 그런 방식으로만 도달할 수 있는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