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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호 Sep 09. 2020

내 것이 최고라는 믿음 속에 숨어있는 착각

객관성을 잃게 만드는 보유효과

<보유효과>
일단 보유(소유)하게 되면 그 보유물에 대한 애착이 생겨 일반적으로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가치를 넘어선 가치를 스스로 부여하게 되는 현상.


"100% 환불 보장. 일단 사용해보세요."


"30일 무료체험을 하신 후 결정하세요."


위와 같은 광고를 보며 의아하게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저렇게 비즈니스를 하게 되면 손상되어 반품되는 제품이 많이 나올 텐데 그 손해를 어떻게 메꾸려고 저러지?


그렇다.
인간에 대한 통찰이 부족했던 것이다.


인간은 생각보다 비합리적인 선택을 할 때가 많다는 것을 일찍이 깨달은 마케터들은 이 보유효과를 이용해 결코 손해보지 않는 캐치프라이즈를 떠올렸던 것이다. 역시 아는 것이 힘이며 그것은 곧 돈이 된다. 영업하는 사람들이 가장 똑똑한 사람들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해본다.


보유효과란 쉽게 말해 내가 소유하게 되면 객관적 가치, 즉 시세보다 높게 평가하는 오류를 범하게 되는 것을 뜻한다.


법륜스님의 특강에서 배우자 때문에 이혼을 고민하는 내담자의 상담 내용을 우연히 듣게 되었다. 돈도 안 벌어오고 자녀 양육에도 무관심했으며 바람까지 피우고 자신을 무시한다는 이 내담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법륜스님은 묻는다. 이미 답이 나와있는데 상담을 하러 온 이유가 무엇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혼을 망설이는 이유는 무엇인지.


쉽사리 대답하지 못하는 내담자에게 법륜스님은 다시 질문을 던진다. "배우자의 장점이 무엇입니까? 장점이 있으니까 참고 살 것 아니오." 잘생겼기 때문이라는 예상치 못한 대답이 나왔다. 얼마나 잘생겼기에 저런 무시무시한 결점들을 커버할 수 있었던 것일까. 장동건이나 정우성 정도 되는 외모를 가져서였을까?


아마도 이것은 보유효과에서 비롯된 잘못된 수식의 오류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다. 1점의 플러스 요인과 100점의 감점 요인을 산술적으로 계산해내지 못하고 1점의 요인을 1000점쯤으로 잘못 판단하는 오류. 비합리성이 빚어내는 비극이 아닐 수 없었다. 한 사람의 인생을 세밀하게 알 수는 없는 일이지만 적어도 내담자의 태도와 객관적 자료를 두고 보았을 때에는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생각을 완전히 지워낼 수 없었다.


위 사례의 내담자를 어리석다고 손가락질할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살다 보면 우리 또한 이 보유효과에서 자유롭기가 힘들다는 것을 느낄 때가 많다. 보유효과는 인간의 심리 깊은 곳에 박혀있는 손실을 두려워하는 본능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100원의 이득보다 100원의 손실을 더욱 두려워하는 존재이기에 같은 확률로 100원을 얻을 것인지 100원을 잃지 않을 것인지 물어보면 100원을 잃지 않는 선택을 한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일상에서 잃어버리는 것이 두려워, 가지고 있는 것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방어기제를 우리도 모르는 사이 작동시키며 살아간다.


비전 없이 흘러내리며 손실 중인 주식 종목을 과감하게 손절하고 유망한 종목으로 갈아타지 못하는 것, 내 자식 내 형제자매가 최고인 것 같아 어떤 배우자감을 데리고 와도 성에 차지 않는 것, 남들이 보았을 땐 멀리하는 게 좋을 것 같은 친구나 애인을 멀리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곁에 두는 것,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판매자와 구매자 간의 가격 절충이 어려운 이유 등이 모두 보유효과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우리는 조금은 객관적인 시선으로 내가 가지고 있는, 나와 가까이 있는 것들에 대해 바라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이것은 일면 장점도 있다. 내가 가진 것을 소중히 여기는 태도는 철저히 주관적인 세계에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비록 그 정도의 가치를 실제로 지니고 있지 않다고 한들, 나에게 있어서만큼은 최고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 때로는 평화와 사랑을 구축하는 뼈대가 되어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나 이것은 분명히 객관성과는 거리가 있다. 인간은 스스로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지만 심리학 용어를 조금만 살펴보면 인간의 비합리성을 정의하는 용어가 그토록 많다는 것에 대해 깜짝 놀라게 된다.


적당히 손해 보듯 살라는 옛 말이 있다. 그리하면 결과적으로 더 많은 것을 얻게 될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보유효과는 이것을 어렵게 한다. 내가 가진 것이 최고라는 생각을 갖는 것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분명 중요한 일이지만 그것이 나의 눈을 완전히 가리게 될 때, 우리는 정당한 거래를 성사시키기 어렵게 될지도 모른다. 감성을 남겨두되 이성을 마비시켜서는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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