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즈음의 생각)
언제나 진동으로 살아가는 전화기가 부르르 떤다. 전화기를 열까 말까 망설이다 전화기를 열었다. 순간 들려오는 기계음 소리, 저명하다(?)는 정치인이 추석을 잘 보내라는 전화다. 내 전화를 어떻게 알았을까? 내 전화번호는 만인이 알고 있는 전화번호인가?
다시 부르르 떠는 전화기, 이번에는 문자가 왔다는 표시다. 여지없이 추석을 잘 보내라는 알 수 없는 사람이다. 머지않아 한 자리를 노리고 있는 사람인가? 수도 없이 오는 문자나 전화는, 위대하신 국회의원과 이 자리를 노리는 사람 그리고 지방의원과 자리를 노리는 인간들이다.
가끔은 교육을 책임지겠다는 사람 또는 차기를 노리는 이름 없는 위인들이다. 무지한 무지렁이는 생각을 한다. 저 사람들은 어떤 생각으로 이런 짓거리를 하고 있을까? 전화나 문자뿐이 아니다. 수도 없이 오가는 전화와 문자 그리고 오가는 길에는 어김없이 나붙는 현수막이다.
언제부터 서민들의 삶에 관심을 가졌다고 염려를 할까? 평소엔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인간들, 이름이나 알리려고 하는 짓일까? 서민들이 느끼는 것을 얼마나 알고 이런 짓을 할까? 또 궁금해지는 명절즈음의 생각이다.
나라를 다스리고, 우리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정치인들이다. 모든 사람들이 고민하며 뽑아야 하고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일이다. 우리의 삶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각은 어떠할까? 언제부턴가 그들의 삶에 관심이 없어져갔다. 그들은 그들의 삶이고, 나는 나의 삶이 되었다. 매우 어리석은 생각을 하게 됨은 왜 그랬을까?
언제나 그들의 삶은 그랬고 또 그랬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지 않았다. 누가 앉아도 그렇고 또 그랬다. 관심이 없을 수밖에 없고, 관심을 갖게 되면 너무 피곤하다. 온갖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그런데 그들의 삶이 자꾸 보인다. 쓸데없는 문자가 오고, 전화가 오며 현수막이 보인다. 왜 저런 짓을 할까? 무심한 듯 바라보는 서민들의 삶을 생각은 해 보았을까? 아니면 남이 하니까 나도 해야 된다는 생각일까?
묵묵히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도 있다. 그들에게 주어진 몫을 소리 없이 해 나감에 우리의 삶이 이어진다. 아무 흔적이 없어도 알고, 알려주지 않아도 전해진다. 명절마다 쏟아지는 문자와 전화 그리고 내 걸리는 현수막, 이번 명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조용한 명절에 보이지 않는 손길, 여기에 진정한 나랏일을 하는 그들의 삶이 보이게 되어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명절 즈음마다 만나게 되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