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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광 May 13. 2020

무월광(無月光)

무월광


이른 새벽, 집 앞에 나서 고개를 든다

너 없는 세상은 칠흑뿐이다


듬성듬성 켜진 가로등만이 거리를 비춘다

영혼 없는 불빛은 적적함만 더한다


눈앞에서 빛을 내는 그들에 가려

네 따스함을 잠시 잊고 지냈다


오늘 난 

네가 떠나고서야 소중함을 느낀다


                               - 이광준



-

서울은 낮과 밤이 참 다른 도시다. 낮엔 일하는 사람들로 넘쳐나지만 밤이 되면 흥이 넘친다. 덕분에 서울은 24시간 밝은 도시다. 좀처럼 어두운 분위기를 상상하기 어렵다.


그런데 요즘은 바이러스로 분위기가 달라졌다. 아무래도 모이는 사람들이 줄고, 그렇다 보니 가게들도 일찍 문을 닫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밤거리가 조금은 한산해졌다. 특히 내가 사는 쪽은 밤에 주로 회식하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인데, 그래서 더 조용한 상태다. 


얼마 전 너무 일찍 잠든 나머지 새벽 4시에 눈을 떴다. 머리를 깨울 겸 밖으로 나갔다. 그날따라 유독 거리가 어두웠다. 가게들이 일찍 문을 닫고 간판에 불을 끈 이유도 있었지만, 더 큰 이유도 있었다. 


그날은 달이 뜨지 않았다. 한 달에 한 번씩 있는 무월광 때였다. 하늘에도 빛이 없고 간판들까지 불을 끄니 그야말로 칠흑이 따로 없었다. 인도를 밝히는 가로등만이 빛날 뿐이었다. ‘서울 살면서 이렇게 어두웠던 때가 있었나’싶을 정도였다. 


도심에 살면 ‘달빛의 소중함’을 모를 때가 많다. 달빛보다 밝은 것들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가로등, 가게 안 불빛, 건물을 빼곡하게 수놓은 간판들. 굳이 고개를 하늘까지 들지 않아도 눈부신 것들 천지다.


그렇지만 달빛만큼 따뜻한 게 없다. 은은하면서 질리지 않는 그 빛. 인공적인 전깃불이 만들 수 없는 느낌이다. 아무리 바라봐도 눈부심 하나 없다. 둥글게 몸을 말아 암만 힘줘 빛을 내도 쳐다보는 데에는 무리가 없다. 몸을 얇게 접어 내보내는 은근한 빛도 매력적이다. 모양도 다양하고 그에 따라 빛의 성격도 다 제각각이다. 예부터 많은 사람들이 달을 지긋이 바라보며 이것저것 추억했던 것도 그런 이유 아니었을까.


나는 달의 고마움을 군대에서 많이 느꼈다. 훈련소 시절엔 하늘에 뜬 달을 보며 가족과 친구, 연인을 그리워했다. 자대는 민간인통제선 위에 있는 부대였기 때문에 야간 전술훈련을 하거나 경계근무를 설 때면 달이 참 고마웠다. 정말 아무런 불빛도 없는 곳에서 달빛은 마치 조명을 띄워둔 것처럼 환하다.


그렇게 소중한 달의 고마움을 무월광이 되어서야 느꼈다. 사람은 없어봐야 소중함을 느낀다더니 스스로 참 간사하다고 느꼈다. 그러면서 주위에 있는 것들을 하나둘 떠올리며 감사함을 되새겼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교훈을 주는 달에게 다시금 고마웠다.


입하를 지났지만 새벽은 여전히 쌀쌀하고 추웠다. 그렇지만 머리를 스치는 여러 생각들을 좀 더 이어가고 싶었다. 행선지를 집 앞 편의점에서 더 멀리 떨어진 편의점으로 바꾸고 천천히 한 걸음씩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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