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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과장 Mar 30. 2021

(책리뷰)정의란 무엇인가-마이클샌델

2018.01.14


2010년 늦은 봄, 나는 취업 관련 공부를 하느라 정신없을 때 학교에서 오랜만에 만난 철학과 선배와 술 한잔했다. 술안주가 나오고 술이 들어가기 전 이 책을 선배가 꺼내 들었다. 아마도 출간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고 이 책에서 읽고 느낀 것들을 책 속에 메모해둔 부분을 보여주며 이야기한 기억이 난다. 그 이후로 이 책이 언론에서 많이 거론되었고 사람들도 정의라는 주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며 지금까지 스테디셀러가 될 정도로 유명해 졌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정의롭지 못한 상황을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이 책을 통해 정의로운 세상이 되기를 바라는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고 본다. 


사실 이 책을 많은 사람이 구매했지만, 끝까지 완독하거나 완독하더라도 완전히 이해 한 사람들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각 파트마다 나오는 철학자들의 내용이 쉽게 이해되지 못하는 부분이 더 많다. 사례를 들어 설명하는 부분들은 쉬울 수 있지만, 책의 뒤편으로 갈수록 철학자들이 주장하는 글을 읽어도 와 닿지 않으며 미국의 책을 우리나라 말로 번역했기에 두세 번 문장을 읽고 곱씹어야 겨우 이해가 되는 부분도 많다.


원래 철학책이 그렇다. 더구나 외국 저서를 번역한 책은 더더욱 우리말로 옮기면서 어려운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예전에 철학 수업시간에 칸트의 윤리형이상학의 정초라는 책을 읽고 발표하는 수업이 있었다. 열 명 남짓밖에 안 되는 강의실에 학생들에게 위의 책을 파트별로 나누어서 자신의 맡은 부분을 학생들에게 설명하는 수업으로 진행되었다. 이런 숙제는 긴장과 부담으로 꺼려지긴 했지만, 그 수업을 통해 칸트의 선의지의 개념과 동기 그리고 과정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내 것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한 기억이 있다. 책의 적은 분량을 할당받았지만 여러 번 읽음으로써 내가 이해되고 상대방을 이해시키는 과정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기분 좋은 기억이다. 그때 그 수업 시간강사 선생님은 중년이 넘은 나이였고 여러 대학을 다니며 시간 강의를 해야 했으며 경제적으로도 어렵다고 말씀하셨다. 


선생님에게 질문한 기억이 있다. 칸트가 그렇게 후대에 강조한 선의지와 동기 등의 사상들을 정작 칸트 본인은 엄격하게 지키며 그렇게 살았느냐고, 만약 그렇게 살지 않았으면서 책으로 또는 강의에서 강조한 사상들이 앞뒤가 맞지 않는 위선이 아니었냐고, 이 질문에 교수가 뭐라고 답변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자신의 처지와 일상을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본인의 딸이 자립형 사립고에 입학하게 됐는데 입학금이 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그 후 몇 년이 지나서 MBC 2580 방송에서 시민들을 대상으로 철학 수업을 하시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비록 정교수는 아니었지만, 자신의 삶에서 고군분투하며 소신껏 사시는 모습을 간접적으로 보면서 내가 살아가면서 또는 앞으로 살아갈 날에 대한 자화상을 생각하게 되었다.


다시 이 책으로 돌아가면 완독하는데 쉽지가 않았다. 책의 차례에 열거된 각각의 파트마다 나누어서 주말마다 조금씩 읽느라 한 달 정도 걸렸다. 지적 허영심 때문에 이해도 되지 않은 내용을 꾸역꾸역 참으며 읽고 싶지 않았다. 지루하고 어려우면 포스트잇으로 표시하고 책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다시 펼쳐 들었다. 


이 책은 도덕적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위한 가상의 예나 실제 있었던 사례들의 내용을 읽으면서 불편하고 불쾌하게 한다. 1명 죽는 것이 정당한가 5명이 죽는 것이 정당한가 이런 예는 사람의 목숨을 경시하는 풍조를 가질 수 있고, 정답이 없는 질문에 생각을 정하지 않고 다음 장으로 넘어가 버렸다. 그리고 이 책의 이해를 돕기 위해 10대를 위한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과 tvn어쩌다어른의 최진기 강사의 강연을 보았다. 


이 책의 주요 내용의 일부를 열거하며 아래와 같다.


벤담의 공리주의 -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요즘에는 격투기라는 스포츠를 사람들이 많이 좋아한다. 작은 링에서 사람이 싸움하는 모습을 보면 남녀노소 불문하고 쾌락을 얻는다. 벤담의 공리주의에 의하면 격투를 하는 두 명의 선수의 아픔보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쾌락을 얻는 사람들이 훨씬 많기 때문에 그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본다. 코피를 흘리고 피멍이 들고 넘어져서 고통스러운 장면을 통해 폭력의 위험성에 무감각해진다. 이 끔찍한 가벼움은 쾌락이라는 명분으로 정당화하고 합리화한다. 아마도 이런 장면을 공공재의 방송으로 전 세계 사람들에게 전파함으로써 돈을 버는 사람들도 벤담의 공리주의를 통해 자신을 정당화할 것이다. 


칸트의 동기, 과정의 중요성


내가 근무하는 곳에 허리가 약간 굽을 정도로 연세가 지긋한 할아버지가 오셨다.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에 우산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 돌려받을 수 있을지 확신은 들지 않았지만 내가 가진 우산을 할아버지에게 빌려드렸다. 내가 한 행동이 타인의 불행과 아픔과 곤경에 남을 도와야 한다는 이타적 삶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으로 우산을 빌려 드렸다면 선한 행위다. 하지만 남에게 칭찬받기 위한 목적의식과 일정한 의도로 무언가 바라는 게 있어서 우산을 빌려드렸다면 그건 잘못된 것이다. 결과는 할아버지에게 우산을 빌려주어서 비를 안 맞게 했지만, 동기가 어떠했는가에 따라 옳고 그름이 나누어진다.


존 롤스의 정의론, 마이클 조던의 천문학적 수입, 워런 버핏의 주식부자


마이클 조던이 미국의 NBA농구선수로 활약하면서 벌어들인 수입이 오로지 본인의 능력이 탁월해서 얻은 수입인가? 그 수입에 세금을 남들보다 더 많이 부과하는 것이 정당한가? 미국에는 NBA라는 프로농구가 발달한 나라다. 미국의 사회적, 문화적 배경이 마이클 조던이 돈을 잘 벌 수 있는 체제가 갖추어진 나라다. 그리고 마이클 조던이 자라온 성장 환경이 지금의 마이클 조던을 만들게 된 요인일 것이다. 이런 우연적이고 임의적 요소가 있기 때문에 전적으로 본인의 노력으로 부를 얻은 것은 아니다. 내가 포항시시설관리공단의 정규직으로 입사한 것이 내 노력으로 된 것인가? 물론 내가 남들보다 오래 공부했고 그 노력의 대가로 입사를 한 것은 맞지만 그것보다 우연적이고 임의적 요소가 더 많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살아가면서 이 사회에 눈에 보이지 않는 부채의식을 잊지 않으려 한다. 워런 버핏도 주식을 통해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었지만, 주식 제도로 투자자를 모집할 수 없었던 과거에는 워러 버핏도 부자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존 롤스의 정의론에 따르면 많은 돈을 벌어들인 그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해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게 나눠주는 수직적 형평은 정당하다.


육상경기 중 400미터 달리기의 출발선이 다르다. 안쪽에서 출발하는 선수와 바깥쪽에서 출발하는 선수의 출발선이 달라야 공정하고 정의롭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달리기는 그렇게 정의롭게 정해졌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 판단적인 요소에서는 쉽게 출발선을 정하지 못한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달라지며 그 사회에 오너나 리더가 누구이냐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 바꿔버린다. 눈앞에 보이는 단기적 이익에 양심을 팔아버리고 보고도 못 본 척 듣고도 못 들은 척 쉽게 마음을 닫아 버린다. 


이 외에서도 낙태, 고문, 대리모 등 정답이 없는 주제들과 여러 가지 실례를 통해 어려운 질문들을 던진다. 냉소적 비판의식으로 받아들여 그래서 어쩌란 말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어려운 질문에는 마음이 불편하면서 책장을 덮어 버리고 싶었다. 그리고 쉽게 쓰인 책도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면 자기성찰,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분별력, 지식이 아니라 지혜, 자신의 세계관, 사고방식, 비판적 사고능력과 태도에서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날이 더 많은 시간 앞에서 어떤 일을 결정해야 할 때 후회 없는 선택으로 행복해지는 데 의의가 있을 것이다. 아마도 행복까지도 바라지 않는다. 불편하고 인상 찌푸리며 후회할 행동을 최소화하는 디딤돌이 되는 과정이며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는 기회를 얻는 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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