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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과장 Mar 30. 2021

(생각)좋아함과 책임

2017.02.19

누군가를 좋아한다. 생각한다. 내 마음의 의지와 상관없이 생각하다가 아니라 생각된다. 저절로 발생하는 비자발적인 마음으로 나 자신을 흔들어 놓는 것이 사랑이다. 사랑은 달콤하며 설레며 삶의 원동력이 되는 무언가의 힘이 있다. 그 사랑에 노예가 될 정도 말이다.


‘책임질 자신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누구를 좋아하고 안 하고는 내 의지대로 되는 것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게 됐을 때 책임질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 무거운 책임을 생각하지 않고는 함부로 좋아하지 말아야 한다. 


순간의 감정에 충실하고 앞뒤 보지 말고 있는 그대로를 생각하라지만 이 또한 무책임을 전제로 하고 있다. 요즘에는 반려동물을 너도나도 키우고 싶다고 한다. 막상 키우다 보니 이만저만 귀찮은 게 아니다. 자신의 주인에게 사랑을 듬뿍 받지만 결국에 거리의 유기견으로 버려지는 인간의 천박한 야만 주의에 동물들이 희생양이 된다. 사람이 사람에게도, 사람이 동물에게도 무책임한 사랑 앞에 우리는 그럴 수밖에 없다고, 또는 몰랐다면 정당하지 못한 핑계를 대면 자신을 합리화는 뻔뻔한 사람이 되어간다. 그래,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다. 저럴 수도 있다. 완벽할 수도 없으니까.


하지만 조그만 깊이 생각하고 고민하고 신중해져야 한다.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했다면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 떳떳함을 가질 때 나와 상대방은 덜 상처받고 아파한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라는 일본영화가 있다. 그 영화 남자 주인공은 하반신 마비인 여자와 썸을 탄다. 장애라는 벽 앞에 남자 주인공은 여자를 좋아하게 되지만 결국에는 헤어진다. 이 남자를 욕할 것인가 아닌가는 의견이 분분하겠지만 처음 좋아함을 시작할 때와 헤어질 때 그 마음은 너무나도 공감이 갔다. 더 가슴이 아프고 여운이 많이 남았다. 헤어진 후에 남자가 펑펑 우는 장면은 하늘이 원망스러울 만큼 뭐라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눈을 떼지 못할 정도였다.


‘ho!’라는 웹툰이 있다. 청각장애를 가지 여학생이 대학생인 선생님을 좋아한다. 시간이 흘러 청각장애를 가지 여학생은 대학생이 되고 그 선생님을 여전히 좋아한다. 그러나 그 선생님은 그녀를 좋아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그 선생님 마음에는 책임감이라는 무거운 무게가 자신에게 엄습했을 것이다. 이성과 감정 간 혼돈의 연속 속에서 순간의 감정에 이끌러 선택한 결정이 서로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만 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상처 후 밀려오는 공허함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또 다른 좋아함을 찾아다니거나 찾아온다. 그 선택의 결정에 이르기까지 비록 아픈 상처만 남겼지만 그 만큼 성숙해진다. 반복된 실수로 아파할 수 있는 경우는 덜 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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