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찬히 마음을 들여다볼 새 없이
나는 그에게 계속해서 연락을 하고 있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
어떤 동기가 스캔들이 났더라,
아침은 먹었는지,
배치될 부서는 어떤 부서인지 들었냐는지,
우리가 기획한 프로그램이 진짜로 만들어질까 내기를 걸기도 하고.
정말 나도 내 감정을 자각하지 못한 채
계속 닿아있고 싶었다.
더 특별해지는 관계가 되고 싶었다.
아침을 먹었는지,
이른 아침에 연락을 한 나에게
그가 답해왔다.
일어나있다고, 아침 같이 먹겠느냐고.
순간 긴장이 되었다.
그렇게 동기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자리를 가졌는데,
둘이 함께 하는 아침이라니.
정말 특별해진 기분.
아침을 먹으러 1층으로 내려가며 아침인데도
초췌해보이진 않을까,
같이 아침을 먹자고 흔쾌히 얘기한 것은 무슨 의미일까. 많이 곱씹었다.
그렇게 시덥지 않은 얘기를 하며 아침을 먹고,
산책을 하자고 제안했다.
꽃피는 봄, 산책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그냥 친한 동기 사이어도 산책은 할 수 있으니까.
산책을 하던 도중 담장 위로 나무가 삐져나와있고,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무슨 색인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꽃을 보며 행복했고, 그가 내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했다.
사진을 찍히면서, 꽃을 바라보면서,
그와 함께 걸으면서.
툭 튀어나왔다.
“나 오빠 좋아하는 것 같아”
내가 그를 좋아했나?
그랬던 것 같다. 그날 밤 이후로 계속 그와 특별한 관계이고 싶어했던 이 마음이,
그랬나보다. 그날 부터였나보다.
말을 하고나서야 깨달았다. 나의 마음을.
그리고 말을 내뱉은 후 얼어붙었다.
나 조차도 준비되지 않은 말이었고, 그가 어떤 반응을 할지 아무런 생각조차 않았으니까.
그 또한 얼어붙었고, 한참을 있다가 대답했다.
“아, 아닐거야.”
아닐거라고? 뭐가? 내 마음이?
이 감정이 아닐거라고?
그걸 왜 그가 단정하지? 그는 내 마음까지 다 아는건가?
진짜 아니라고?
또 오기가 발동했다.
“뭐가 아니야?”
“아닐거라고, 나 좋아하는거”
“그걸 어떻게 알아?”
“아닐거야. 우리 알게 된지도 얼마 안됐고, 너 말처럼 우리 맞는 구석이 하나도 없는데, 그냥 오늘 날씨가 좋고 꽃이 이뻐서 설렌거 아닐까”
이게 무슨 해괴망측한 소리인가.
날씨가 좋고 꽃이 이뻐서 그냥 옆에 있는 사람에게 고백한다고?
정말 그게 가능한가?
그리고 그는 나를 그런 사람 정도로만 생각했던건가.
“내 감정이야, 그걸 오빠가 어떻게 안다고 아닐거라고 생각해”
“나는 그거 그냥 사람 대 사람으로 호감이라고 생각해. 우리 많이 싸웠지만 많이 편해졌고, 그래서 그냥 편한 사이어서 그런걸거야“
“편한 사이라고 생각해서 내가 좋아한다고 말했다고? 나도 그 정도는 구분해”
나의 말을 듣던 그가 잠시 생각하더니 다시 말을 꺼냈다.
“근데 생각해봐도, 우리 안지 얼마 안됐잖아. 삼주 됐나? 너 나에 대해서 얼마나 알아?
너 나를 다 안다고 생각해? 아직 서로 보여주지 않은 모습도 많은데 어떻게 좋아하고 말고를 판단할 수가 있어?“
“꼭 그 사람을 다 알아야 좋아한다고 할 수 있어? 상대방의 어떤 면모만 보고도 좋아할 수 있지“
“난 그거, 섣부르다고 생각해. 그래도 좀 더 지켜보고 여러 면모를 본 후에야 그 사람을 좋아하는걸 확신한다고 생각해.
너 확신해? 니 마음?“
이런 식이다. 매일 이렇게 싸워댔는데, 내 마음까지 갖고 이렇게 서로 싸워댈 줄은 몰랐다.
또 오기가 생긴다.
“응, 나는 가능하다고 생각해. 왜 안돼? 첫 눈에 반한다는 말도 있는데, 내가 오빠를 좋아하는게 왜 말이 안돼?”
“아냐. 넌 아직 나에 대해 다 몰라. 그러고도 좋아한다는건.. 사실 이해가 잘 안가는 것 같아”
와, 꼴통.
근데 이젠 저런 굽히지 않는 자기 소신마저도
그에게 눈을 뗄 수 없는 지점이 되어버렸다. 큰일이다.
“그래, 그럼 계속 그렇게 자기 생각에 갇혀 살아. 그렇게 평생 살아”
더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말빨이 다 떨어졌다.
그래라 그럼.
그의 말대로 좋은 날씨의 아침부터, 내가 고백했다는 사실마저 까먹을 정도로
분에 차서 그를 남겨두고 다시 집으로 왔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의 말은 여전히 어이가 없었다.
내 마음을 내가 알지, 그가 뭐라고?
그가 내 확신에 찬 마음을 알 때까지 괴롭혀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