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 갈 수 있었다.

by 이면

처음 이 연재를 시작했던 이유를 떠올려 보았다. 교수님께 연구 제안을 받고, 대학교 등록 절차가 시작되었다. 그 과정에서 독일 유학에 영향을 준 관계와 사건들이 잇따랐다. 의지하던 친구와의 관계가 정리되었고, 사랑하던 반려견이 세상을 떠났다. 한 발 내디디면 금세 무너질 것 같은 유리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나는 늘 무언가가 진행될 때 불안을 느꼈다. 무언가를 진행시키다가 불안에 못이겨 늘 포기했었다. 그 리고 끝내 불안을 놓아 버리며 느낀 카타르시스, 난 그걸 직면이라 믿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심리학이 대중화되어 있던 어느 날, 나는 회피형 인간이라는 단어를 만났다. 적잖은 충격이었다. 내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내가 어떤 상태인지 알게 되어 속시원했다. 불안을 던져버리며 얻는 카타르시스가 인공조미료라면, 내 상태를 정확히 알고 나서 느낀 카타르시스는 자연조미료 같았다. 자극은 덜했지만 훨씬 깊고 깔끔했다.


불안을 던져버리며 얻는 카타르시스가 인공조미료라면,
내 상태를 정확히 알고 나서 느낀 카타르시스는 자연조미료 같았다.


그날 이후, 나는 ‘직면’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 불안을 이해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나 자신을 조금씩 믿을 수 있었다. 내면은 늘 낯선 동굴 같았다. 안이 보이지 않아 두렵지만, 동굴을 둘러싼 공기의 결은 분명 다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괴물> 속 동굴이 주는 분위기와, 공수창 감독의 영화 <알포인트> 속 동굴이 주는 느낌이 전혀 다른 것처럼 말이다. ‘나’라는 동굴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환경 속에 있는 나인지 알게 되자, 나는 조금씩 그 안으로 들어가 불안, 회피, 주도성을 관찰할 수 있었다.


큰 변화를 앞두고, 나는 다시 흔들렸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불안을 하나씩 적어보기로 했다. 훗날 독일에 갈 수 있을까 두려워하던 나를 떠올리며, “그때의 너 참 기특했다”라고 말하고 싶었다. 불안은 언제나 있다. 아마 평생 함께하지 않을까. 하지만 이제 나는 내가 언제, 왜 불안한지 안다. 어떤 불안은 통제할 수 있고, 어떤 불안은 그저 지나가도록 내버려 둘 수 있다. 그렇게 용기가 조금씩 생겼다.


이 글을 쓰며 나는,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을 바로 알고 선택해야 하는 이유와 방법’을 배웠다. 어떤 사람은 원하는 걸 단번에 알고, 그 길을 곧장 간다. 또 어떤 사람은 나처럼 오래 망설이고, 그 과정을 들여다봐야만 마음이 놓인다. 나는 후자다. 그리고 그런 이들을 위해 글을 쓴다. 두려움, 위화감, 부러움, 불안 같은 감정들은 우리를 막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진짜 원하는 것을 향할 때 가장 먼저 마주치는 문이다. 물론 그 문 앞에서 오래 머물 수도 있다. 그 시간은 나쁘지 않다. 폭신한 구름 위에 누워 쉬는 시간 같으니까. 다만, 언젠가는 그 구름 위에서 일어나 두 발을 땅에 디뎌야 한다는 것만은 잊지 말자.


나는 부정정서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이라서 나와 안 맞거나
내게 부정적인 정서를 옮기는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차단하는데 탁월하다.
내 주위를 좋아하는 것들로 채우는 데 몰두하는 것은 나를 지키기 위함이기도 하다.
전미경 작가, <당신은 생각보다 강하다.>


다행히 나는 독일에 올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확인한 사실이 하나 있다. 더디더라도 내가 원하는 것이 하나씩 명확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난 수많은 감정과 상황의 이면을 마주하며 깨달은 것은 많다. 그 과정에서 받아 들어야 하는 변화, 내게 맞는 변화를 선택하는 방식도 배웠다. 무엇보다 그 선택을 책임져야 하는 이유도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 "독일에 갈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이렇게 답할 수 있어 감사하다. "넌 이미 와 있어."


어쩌면 '나, 독일에 갈 수 있을까'라는 물음은 내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갈 준비가 되었는지 묻는 질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과정에서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 내 삶을 주도적으로 사는 것은 준비가 되어서 시작하는 게 아니라, 주도적으로 선택했기 때문에 나아갈 수 있었다. 앞으로 독일에서 어떤 경험을 하게 되더라도 내 선택으로 인한 결과라는 것을 받아들이며, 언제나 나를 위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지내야지. Tschüss!

keyword
이전 09화불안은 생각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