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by 이면

첫 번째 미팅에서 D 교수님은 내게 독일에 언제쯤 올 수 있는지 물었다. 최대한 빨리 준비해도 최소 6개월은 필요했다. 나는 9월에나 갈 수 있다고 답했다.


9월에는 독일에 갈 수 있어요.


곧이어 박사과정 신청서, 교수–학생 계약, 장학금 신청서 같은 서류들이 줄지어 도착했다. ‘서류의 나라’ 독일에 입성하는 기분은 제대로 났다. 그러나 설렘은 오래가지 않았다. 설렘이 머물렀던 자리에서부터 불안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서명해야 하는 서류 한 장, 한 장 들여다 보고 서명을 할 때마다 부담은 가중 되었다. 그것은 종이가 아닌 고층 건물처럼 느껴졌다. D 교수님에게조차 메일 하나 보내는 것조차 두려워 메일을 보내기 전 수십 번씩 고치고 또 고쳤다. 자칫하다가는 내 무능이 드러나 박사 합격이 취소될지도 모른다는 상상이 꼬리를 무는 상상 때문이었다. 학계에 오랜 시간 몸 담고 있었지만 애석하게도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교수님'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것이 참 두렵다. 웃긴 것은 이처럼 평가를 받을 만한 상황에서 조차 평가에 대해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그런 내게 D 교수님과 메일을 주고받고, 서류를 처리하는 것보다 더 큰 산이 있었다. 근 3년 만에 석사 지도교수님께 연락해 무려 추천서를 부탁드려야 한다는 점이었다. 석사 시절, 나는 실패를 다루는 훈련이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실패 자체에 압도되어 허우적거리기 바빴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미성숙함 그 자체였다. 그런데 그 시간을 바로 옆에서 지켜본 지도교수님께 연락을 해야 한다니. 심지어 추천서를 써달라고 해야 한다니!

'거절이라도 당하면? 추천서에 ‘이 학생은 적합하지 않다’라고 쓰신다면? 그런 고역이 따로 없었다. 그 사이 불안이 나는 휘감기 시작했다. 불안 회오리가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불안 회오리가 나를 감싸하다 결국 나를 집어삼킬 것만 같은 이 익숙한 느낌.


그리고 이때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행동해야 할 때이다.


문득 돌아보니 지금 삶도 나쁘지 않았다. 안정적인 수입. 적당한 여가시간, 가족과 소소한 일상이 있는 지금 삶도 꽤나 만족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그래서 지금 내가 해야 할 행동은 둘 중 하나였다. 석사 지도교수님께 메일을 보내 추천서를 부탁하거나, 다른 하나는 D 교수님께 메일을 보내 박사과정을 포기하겠다고 전하는 것이었다.


며칠 뒤, 나는 메일함을 열어 지도교수님께 메일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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